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1. 장막이 들이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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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에 시작한 공연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비 밖은 이미 인파로 가득했고, 포토월에는 공연 전보다 더 많은 관객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교복 차림의 관람객이 유난히 많았다. 아까 3호선 지하철에서 내 앞을 바삐 지나가던 학생과 같은 교복이었다. 잔머리 하나 없이 단정하게 정리된 뒷모습, 발레리나 같은 얇은 선이 스쳐 보여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다. ‘그 아이는 어떻게 봤을까?’ 하는 궁금증이 머리 위로 둥둥— 떠올랐다.


일찍 나온 본래 목적을 달성하려고 매표소 옆 데스크로 향했다. 프로그램북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보통 프로그램북을 언제, 그리고 왜 사는가? 나는 리뷰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사는 편이지만, 최애 공연이 아닌 이상 굳이 모아 두지는 않는다.


어차피 집에 가져가면 소품숍의 키링 같은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아무리 즐겁게 봤어도 내 방에 들어오면 일개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침대 옆에 둘 수 없는 곳에서 기다랗게 방명록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은 이 ‘소금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벌떡— 일어나 계좌이체를 했다. 이 공연의 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곡을 썼는지, 이 무대를 꾸민 사람들은 내가 반드시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무용은 어떤 존재일까. 클래식만큼이나 때 묻지 않은 예술이었다. 그 자체로 끝없이 궁금해지는 세계였다. 무용수들은 악보 대신 몸으로, 말 대신 동작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대사 한마디 없이도 많은 걸 전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도 바로 이 장르를 통해서였다.


뒤돌아보자. 요근래 무엇에 그토록 몰입하고 있었던가?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클래식’이겠다. 그렇다면 대상을 바꿔보자. ‘발레’는 어떤가? 이전 같았으면 분명 “어, 나 본 적 없어서 잘 몰라…” 했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특히 9월 7일의 〈소금길〉을 거닐어온 지금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겠다.


내 머릿속을 완전히 헤집어, 나를 ‘이해’해 주는 예술이다.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가. 아마 시작은 올해 관람했던 〈백조의 호수〉였을 것이다. 준발레인 수준으로 이 분야를 사랑하는 취미인을 통해 오페라극장에서 관람했는데, 그때의 나는 이리 공명받았다.

 

 

무용수가 다 응해 주었다. 그것도 춤으로, 동작으로, 다 펼쳐내준다. 연주가가 악기 위에 손을 떼도 소리가 뚝— 하고 바로 사라지지 않는 걸 아시는가? 잔향의 첫머리에 꼭 무용수들의 손가락 끝이 놓여 있었다(기절).


보통 내 글은 감정이나 눈앞에 그려진 것을 수직으로 내리꽂는 일이 잦았는데, 여긴 수평으로 금빛이 흩뜨려져 있으니 그걸 내가 펼쳐놓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황홀할 수가 없다.


내가 오데트에 빙의해서 지그프리드와 백조의 춤사위를 펼칠 것도 아니니까, 맘 편히 그들의 손끝과 기교와 군무를 음미만 하면 된다.


감정선을 굳이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시각적 아름다움을 흠뻑 누리면 그만이었다. 이미 명화가 둥둥 떠다니고 있는데,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나 있겠나? 얌전히 손을 모으고, 가이드라인 뒤에 멀찍이 서서 흐뭇한 미소로 예절을 지키며 구경만 하면 된다.


아, 행복하다. 작곡가가 여기저기 흩뿌려놓은 문제지를 주섬주섬 주워 담아, 답도 없는 해설지의 빈칸을 채우는 기분을 아시는가? 그런 수고스러움 없이 완벽한 답안지가 눈앞에 2시간짜리 길이로 촥— 펼쳐져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뭔가 추상적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있었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말로 꺼내려 하면 자꾸 웅얼거리게 되는데, 예술 작품 안에서는 응당 존재하는 그 아름다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미묘한 공기,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선들. 

 

한글로 꾹꾹— 눌러 적어 내려간 가사가 품고 있는 이면의 이야기. 언어로는 형용하기 어렵지만, 특정 대상 뒤로 둥둥— 떠다니는 아득하고 어여쁜 선 같은 것 말이다. 나는 그걸 주로 음악에서 많이 발견했다.


그래서 멋도 모르던 시절, 위로 포물선을 그리듯 고음을 자주 내는 가수를 좋아했었다. 이를테면 팝페라 가수나 합창단 같은 목소리들. 음색이 영롱하면 더할 나위 없었고, 깨끗할수록 그 선은 더 높게 날아올랐다. 그런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을 빼앗기는 건 늘 한순간이었다.


그러다 한참 뒤에서야 — 바로 요즘에서야 —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가 결국 이 악기들의 ‘기본 목소리’였다는 걸. 특히나 ‘바이올린 세계’ 안에 가득했다.


왜 ‘세계’라고까지 덧붙였던가. 이 악기,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 예민하다.


예민하다는 건 무엇일까. 거울처럼 옆사람을 고스란히 비춰 버린다는 뜻이다. 그 옆사람은 누구인가. 연주가들이다. 바이올린은 그 악기를 들어 올린 ‘개인’의 본질적인 개성을 놀라울 만큼 그대로 담아낸다. 여러 공연을 다니며 귀로 직접 그 차이를 인식하고 나니, 내 클래식 세상이 훨씬 더 재밌어졌다.


사람이 흥미를 느끼면 어떻게 되나. 두 발을 방방 뛰며 신나 하고, 매일 이것만 보고 싶고, 조금이라도 관련 소식이 뜨면 눈이 번뜩인다. 일전에는 좋아하는 연주가가 지방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전날 알게 되어, 하루 온종일 슬펐다.


그거 하나 못 갔다고 서러워하는 스스로가 이해가 안 돼, 한참을 생각해 봤다. 공연 하나 가지고 그렇게까지 슬퍼하냐 싶은데… 그냥— 나 없는 곳에서 또 좋은 소리로 기가 막히게 연주할 걸 상상하면, 엄청 속상했다! 영상이 남는 것도 아니고, 재방송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분명 내가 거기 있었다면, 그때 발현된 ‘소리’를 어떻게든 ‘추억’으로 붙잡아 두었을 텐데.


또 공연이 있다고 알게 되면, 그 전까지 얼마나 설레는지 다들 아시지 않은가. 굳이 디데이까지 설정해 하루하루— 넘기는 재미가 있는데… (중얼중얼)


이거 봐라, 이만큼 내가 욕심이 많다. 지나간 공연에도 아쉬움이 많은데, 현재 마주한 것들은 오죽하겠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늘은 누구와, 어떤 것과 인사를 하게 될까,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한가득 짐 보따리를 안고 팔걸이 좌석에 앉아 있다.


스스로 깨닫고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은 무척이나 ‘재미’가 있지만, 어느 정도 준비가 된—이를테면 체력이나 지식—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매번 ‘새로움’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이전의 내가 몰랐던 무언가를 하나 툭— 건네받게 되는 것이다. 몰랐던 문장, 몰랐던 생각, 몰랐던 감정.


그걸 또 매번 당장 쥐어주는 것도 아니다. 생각하든지, 글을 쓰든지, 악보라도 되짚어 보든지 해야만 “아, 이걸 보았구나!”라고 구체화된다.


참으로 기다란 여정이다. 그만큼 길게 행복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상하게 눈꺼풀이 자꾸 꾸벅— 꾸벅 무거워진다. 글 하나를 손 밖으로 떠나보내고 나면 머리가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다. 그냥 뭔가 숙— 하고 빠져나간 느낌.


물론 한 번 잠에 들거나 산책을 하면 절반 정도는 풀리겠지만, 당장 그 밤은 아주 기력이 나달나달하다. 9월 7일도 그랬다. 당장 글을 쓴 건 아니지만, ‘어제도 간 (아주 먼) 옆동네 전당을 오늘도 간다!’는 사실 자체가 벌써 졸렸다. 언젠가부터 친구들에게 집순이 타이틀을 빼앗긴 지 좀 되었지만, 일단은 일주일에 하루이틀 정도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아 하는 내 신체로선, 이 또 한 번의 외출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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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처음 예매를 위해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당황했던가. 피부색과 비슷한 달라붙는 의상을 입은 무용수가 머리에 탐지기 같은 장치를 착용하고, 흰 바탕 위에서 독특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거 현대무용인가?” 싶었는데, 프로그램 노트를 보니 발레와 베토벤이 논해지고 있었다. 뭐지? 어떤 공연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물론 좋은 공연이겠거니 싶었지만—포스터가 너무 독특해서 ‘이거 좀 특이한 춤들을 많이 보겠다’는 선입견 두 줄 정도를 은연중에 깔고 극장에 들어섰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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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오랜만에 오페라극장이었다. 일전에는 3층이었는데, 이번엔 1층 왼편 사이드에 자리를 잡았다. 생각보다 무대가 훨씬 잘 보여서 기대감이 올랐다. 공연 시작 전이라 고급스러운 자주색 장막이 무대를 가리고 있었는데, 중앙부에 오늘의 공연 제목이 영문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폰트 옆으로 반짝—반짝—무언가 움직이고 있어서 ‘뭐야—재밌겠다’ 싶어 사진을 찍었는데, 주변을 보니 다른 분들도 이미 핸드폰을 들어 올리고 계셨다.


어떤 공연일까. 정말—하나도 감이 오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딱—보고서만 쓴 뒤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프로그램북이 있는 줄도 모르고 좌석에 앉지 않았던가.


그래도 궁금해서 핸드폰으로 작품 소개를 훑기 시작했다.


2025년 9월 7일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Salt Path(소금길)는 서울특별시와 서울문화재단,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의 후원을 받은 2025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로, 안무가 고현정이 연출한 작품이다. 발레의 언어를 창의적으로 탐구하며 우리 삶의 ‘소금길’을 만드는 과정을 춤으로 그려냈고, 공연은 프롤로그와 세 개의 막으로 구성되었다.


프롤로그에서는 소금을 캐는 ‘소금 컬렉터(Salt Collector)’가 무대에 등장해 여정을 열었고, 1막 ‘과거’에서는 베토벤의 발레 음악을 바탕으로 18세기 발레 동작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2막 ‘현재’에서는 현대적인 의상과 집단 군무를 통해 변화한 움직임을 보여주었으며, 3막 ‘미래’에서는 무용수의 뇌파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해 춤과 생각을 연결하는 장면으로 공연을 마쳤다.


그들은 관객에게 ‘소금길’을 주제로 과거, 현재, 미래를 지나오며 춤을 사유의 언어로 확장하여 잇달아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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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왜 우리는 ‘소금’으로 시작했을까? 

우리는 춤을 ‘본 것’일까?

몸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인가?

당신은 지금 어떤 '소금길' 위에 서 있는가?

 

 

‘소금길’? 소금길… 소금이 뭐더라? 문득 궁금해졌다. 사전을 찾아보니 짠맛이 나는 백색의 결정체, 인체의 혈액이나 세포 안에 약 0.71% 들어 있으며, 어른의 하루 소요량은 10~20그램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 우리 안에도 소금이 있다. 늘 지니고 다니면서, 심장이 콩콩—뛸 때, 무더운 날 시원—해지기 위해 소금을 내뱉지 않던가. 생각해보면 7일에도 아주 많은 백색의 것들이 있었다. 잊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걸 어떻게 증명하느냐고? 이런, 방법이 다 있다.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어디, 어떤 길 위였는지 살펴보실 텐가. 결정 몇 개가 예쁘길래 길게도 챙겨왔다.

 

 

 

2. Salt Path


 

PROLOGUE — 여정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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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무대는 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시작되었다. 살짝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여섯 개의 오렌지빛 태양이 동— 떠 있었다. 두 번밖에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이 극장에서 만들어내는 시작의 ‘어둠’은 늘 압도적으로 까맣다. 마치 딱 어디론가 ‘이동’하는 듯한 느낌을 준달까.


길게 드리워져 있던 자주빛 장막이 천천히 올라가더니 사람 무릎보다 살짝 아래에서 멈췄다. 그때 무대 왼편으로 색색의 양말을 신은 무용수들이 줄지어 나타나, 일렬로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재간스러운 스텝을 밟았다. (나는 절대 못 따라갈 박자감으로) 그러다 확— 마지막에 무릎을 모으고 발을 벌린 포즈로 우뚝 멈춰 섰다. (뭐지!)


이어 무용수들이 양팔을 앞으로 촥! 뻗더니, 그대로 천천히 들어 올렸다. 동시에 장막이 함께 올라가자 수모(수영모)를 쓰고 파스텔 톤 에어로빅 복장을 입은 무용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여운 줄무늬 모자에 옅은 파스텔 톤의 타이츠 차림이라니. ‘역시 이 공연, 특이한 거였어.’


무용수들은 제자리에서 각기 다른 수영 동작을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장난스럽게 묘사하다가, 무대 앞 왼편 끝에 모여 팔을 무대 안쪽으로 확!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아, 이 사람들이 오늘의 소금 컬렉터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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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ACT 1 — 탐구의 서고 : 숨겨진 고전, 다시 빛나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 《기사의 발레(Ritterballett), Wo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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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컬렉터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어두운 무대 위로 푸른 조명이 드리워졌다. 이 극장에서 짙푸른 조명은 늘 반칙 같다. 분위기가 단번에 조성되어버린다. 배경 중앙에는 동그란 달이 걸려 있고, 무대 오른편 안쪽에서 백색의 넓은 튀튀(발레 무용수가 입는 풍성한 스커트)를 입은 무용수들이 박자에 맞춰 딱—딱— 천천히 한 명씩 내려왔다.


머리 뒤에서 팔까지 이어지는 얇은 쉬폰 천은 팔을 올릴 때마다 움직임을 따라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머리에 달린 소금 결정 같은 작은 장식은 조명을 받아 순간 반짝였다. 그것들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무용수들은 한 줄씩 무대를 내려와 왼편으로 이동하고, 이어 내려오는 무용수들은 다시 오른편으로 향해 교차하며 선을 만들었다. 이 동작이 반복되며 무대 위에는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는 지그재그 흐름이 완성됐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간격이 정확히 정렬된 모습을 보여주며 군무를 펼쳤다.


군무가 잦아들자 발레리노가 등장했다. 그는 빠른 점프를 연달아 이어가며 무대를 크게 돌았다. 1층 객석에서 보니, 바로 눈앞에서 한 사람이 제자리에서 저만큼 솟아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너무 신기했다. 쓰고 있던 모자까지 독특해 시선이 한 번 더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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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발레리노가 무대 한편에서 잠시 멈춰서고 어두운 파란 조명 아래로 발레리나 한 명이 나타났다. 앞을 바라본 채 발끝으로 짧은 동작을 빠르게 반복하며 옆으로 우아하게 이동하는 모습이 오르골 속 백조 같았다.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발레리나가 발레리노의 품에서 잠시 멈췄다가 원을 그리며 돌고, 곧 팔을 높이 들어 올리며 다리를 길게 뻗는다. 동작들이 한 줄기 선처럼 매끄럽게 이어져 보는 나까지 숨을 고르게 했다.


클래식을 볼 때도 종종 ‘내가 뭘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싶은데, 발레도 마찬가지다. 얇은 선으로 둥근 춤을 추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자꾸 시선이 빼앗겼다. 공중부양을 한 것도 아닌데… 아마 표정 때문일지도 몰랐다. 웃지도 울지도 않은 그 알 수 없는 표정이 동작과 손끝으로 시선을 이끌었다.


무용수들이 한 명씩 나와 독무를 펼치는 장면이 이어졌다. 발레의 스텝이 재간스럽고 유쾌할 줄은 몰랐다. 다들 백조처럼 고요히 떠오르거나 우아하게 수그러드는 줄만 알았는데, 기교를 부리듯 장난스럽게 발을 놀리며, 익살스러운 발재간을 보여줬다. ‘아, 발레가 이런 춤도 추는구나!'


독무가 끝나자, 앞서 등장했던 발레리노와 발레리나가 긴 흰 실크 천을 양쪽에서 들고 다시 나타났다. 두 사람은 실크 천을 이용해 서로 맞닿기도 하고, 핑그르르 돌며 멀어지기도 했다. 짱짱한 스피커로 울리는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소리도 참 좋았다. 시원한 현의 소리와 애틋한 동작이 만나 화음을 이루고, 다시 군무가 펼쳐진 뒤 장막이 내려왔다. ‘이게 천국이지 뭐야?’


엇, 처음에 수모를 쓰고 등장했던 소금 컬렉터 세 명이 장막 밖으로 나왔다. 아주 작은 장난감 삽, 도끼, 망치 같은 소품을 들고 개구쟁이처럼 ‘소금을 캐는 중’을 그려내며 총총 빠져나갔다.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겁니까?'

 

 

ACT 2 — 찰나의 반짝임과 인류세 : 영롱함의 순간, 심연의 속삭임을 기억하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 《교향곡 9번 d단조 “합창”》 2악장 Molto vivace / Presto, Op. 125,《교향곡 7번 A장조》 2악장 Allegretto, Op.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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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인터미션이 끝나자 다시 소금 컬렉터 세 명이 나타났다. 열심히 캐낸 소금이 담긴 포대자루를 짊어지고 어디론가 향하며 무대를 떠났다.


2막의 시작 신호와 함께 연꽃을 닮은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등장했다. 이 공연, 의상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조차 어려웠다.(예뻐—) 머리에는 꽃 장식을 얹고, 복숭아빛 의상과 핑크빛 치맛자락을 입은 셋이 함께 춤을 췄다.(가운데 무용수는 지팡이도 하나 들었다) 자유롭고 간드러진 춤이 베토벤의 선율을 타고 흘렀고, 몸은 한 치의 억압도 없이 움직였다.


한 번씩 몸이 꿈틀거리며 흐르는 듯한 동작이 이어졌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속 소녀들이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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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화원이 사라진 자리에는 현대적인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등장했다. 과거를 지나 현재에 닿은 것일까. 세로 줄무늬 패턴에 주름이 잡힌 롱원피스. 연핑크, 라일락, 짙은 카키, 블랙 등 차분하면서도 다양한 색감. ‘저 원피스 어디 거야—’라는 말이 목끝까지 올라왔다. 목을 감싸는 홀터넥, 허리 아래로 층층이 퍼지는 치맛단.


앞코가 딱딱한 토슈즈를 신지 않아 움직임이 한층 자유로워 보였다. ‘아, 이렇게 춤을 잘 출 수 있는 사람들이었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들은 모두 무사였다. 무용수가 아니었다. 조명 아래 드러난 잔근육이 그렇게까지 또렷할 수가 없었다. 얇게 맺힌 땀방울이 등에 반짝였다. ‘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저 사람, 소금길을 걷고 있다. 바로 지금!’


무용수 두 명이 서로 마주 보고 상체를 완전히 숙였다가, 팔을 꿈틀거리며 천천히 몸을 들어 올리는 장면. 이어 무용수들이 점점 늘어나 열 명 이상이 한 덩어리로 뭉쳐 집단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장면. 일정 간격으로 서서 조명을 온전히 받으며 어깨를 쫙 펴고, 발을 편히 내딛은 채 정면을 응시하며 시원하게 웃던 사람들. 아까 그 포대의 출처가 분명 여기였다.


소금을 캐낸 무용수들이 무대 중앙을 향해 일렬로 걸어 들어갔다. 그 길 끝에서 온전한 몸의 형태를 드러낸 무용수들이 자연스럽게 뒤따르며 무대를 메웠다. 군더더기 장식 하나 없이 드러난 어깨와 허리, 다리의 선이 노란빛 조명 아래에서 아주 선명하게 드러났다. 모두 '사람'의 형상이다.


그렇게 일렬로 선 이들은 무대 한가운데에서 자유롭게 좌우로 팔을 뻗으며 나무가 되었다. 어둠이 짙어지고 무용수 다수가 동그랗게 내려앉아 뿌리를 형상화했다. 뿌리 한 가닥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결을 그리고 있었다. 온몸이 곧 뿌리였다.

 

 

ACT 3 — 생각하는 춤 : 춤추는 뇌, 내면의 미로를 탐험하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 《피아노 협주곡 5번 E♭장조 “황제”》 2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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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이 장면이 내게는 아주— 큰 펑펑—이었다. 펑펑 내리는 게 눈만은 아니었다. 아주 고요한 순간, 베토벤의 〈황제〉 2악장이 아스라히 흘러나왔다. 힝,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동안 잊고 있던 ‘따스한 빛자락’이었다. 갑작스레 재회하고 보니 펑펑— 마음이 녹아내려 혼났다. 당신은 ‘황제’라는 이름을 들으면 위엄부터 떠오르는가? 다행히 이 악장은 그런 위계를 강요하지 않는다. 감싸주는 선율만 가득하다.


나는 펑펑— 울었다. 내가 아는 것과,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눈앞에서 ‘실연’되는 순간을 아시는가. 소리를 가까이 두고, 연주가를 눈에 담는 습관을 들이면서 늘 ‘빛은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 빛은 내가 붙잡지 않으면 볼 수 없고, 설령 말해도 그 무게만큼 대우받지 못했다. 그래서 남몰래 살짝 잡아두었다가, 이렇게 글을 쓸 때나 살짝 꺼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이 내 눈앞에 있었다. 아주 얇은 입자들이 한들—한들 흩날리며 천천히 쏟아졌다. 어둠 속에서 흰빛과 회색빛을 머금은 작은 알갱이들이 느린 호흡으로 저마다 흩어졌다. 반짝—반짝, 빛을 받은 입자들이 부유하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눈을 깜박이기도 아까워 숨죽여 울었다. 어깨가 파들거렸다. 슬퍼서 운 건 아니었다. 꼭 필요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고, 피로도 그 순간 물밀듯 쓸려 내려갔다. 지나치게 들어맞는, 늘 좋아했고 잠시 보지 못했고 오래 만나고 싶었던 것이— 내가 아는 선율 속에서 펼쳐지니, 까만 공간 안에서 숨죽여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글을 써서 좋은 점이 무엇이겠나. 치우친 마음을 한글로 타닥타닥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그 빛과 함께 뇌파 탐지기를 착용한 무용수가 있었다. 무대를 천천히 가로지르며 짧은 동작을 이어가다, 잠시 탐지기를 한편에 내려놓고 〈황제〉 2악장에 맞춰 긴 춤을 춘다. 아주 기—다랗게. 내가 마음을 가—득 담을 수 있도록.


잠시 그렇게 무대를 되뇌다, 의자에 살포시 앉아 다시 뇌파 탐지기를 착용한다. 검은 실루엣의 두 사람이 나타나 탐지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측정되는 무용수의 뇌파를 보여준다. 길게 파동치는 흰 선이 무대 위에 그려졌다.


그 선은 기다란 직사각형 구조물 위로 투사되었고, 모두가 그 모습을 지켜보다 공간은 조용히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잠겨갔다.

 

 

 

3. 내 포대자루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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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아— 끝났다, 하고 공연장을 금방 나서려 했는데, 에필로그처럼 오늘의 ‘소금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닿았는지를 담은 네모난 영상이 장막 위로 재생됐다. 영상 속에서 예술감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곧장 생각했다. “프로그램북, 반드시 사야 한다.”


하얀 프로그램북을 넘기며 이 공연의 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곡을 활용했는지, 이 무대를 꾸민 사람들을 눈에 담았다. 아— 이 사람이구나. 이 노래구나. 그들이구나.


오페라극장을 금세 빠져나와 숨을 아주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공연장 들어가기 전까지 남아 있던 피로와 두통이 어느새 확— 빠져나간 듯했다. 운동 후 시원하게 땀을 흘리고 나면 드는 그 개운함, 있지 않은가. 그래, 그거였다.


공연을 자주 보며 깨달은 건데, 좋은 공연을 보면 관자놀이에 얹힌 피로감이 확— 풀린다. 다만 감정은 조금 과해진다(엉엉!). 공연을 보다 피로해지고, 공연을 보고 피로를 해소하니 참 아이러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내게 “너는 어떤 소금길 위에 서 있느냐” 물음을 던졌지만, 그보다 먼저 이 공연이 일회성일까? 하는 의문이 스쳤다. 의상도, 음악도, 무용도, 발레도 장원급인데 이대로 사라질 ‘소금길’이라니… 조금 아쉬웠다.


녹화를 했겠지? 전속 포토그래퍼가 사진을 남겼겠지? 관계자도 아니면서 희한한 걱정을 많이 했다. 예쁜 장면이 너무나도 많았으니, 그랬겠다.


그래도 물음에 답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여러 차례 묻지 않았던가. “당신은 지금 어떤 소금길 위에 서 있는가!” 하지만 굳이 답할 필요도 못 느꼈다. 이미 충분히 짜디짠 와중이다. 실수로 라면 1인분에 스프 세 개를 넣어버려 벌컥—벌컥— 생수를 들이붓는 중...


하루가 이렇게 패턴적이고 반복적인데, 그만큼 다채롭다. 이젠 내가 글을 쓰는 건지, 키보드를 연주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만큼 오늘의 ‘소금기’에 잔뜩 당황하며 우당탕— 부딪치고,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현재’를 마주하고 있다. 오— 나쁘지 않다, 싶었다. 다 내가 바라오던 것 아니던가.


다만 심장이 두 개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글을 쓰는 오늘만 해도 몇 년 만에 에너지 드링크를 마셨다. 체력이란 정말— 왜 길러야 늘어나는 걸까. 성가신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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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나는 오늘 무엇을 느꼈던가? 그들에게 드리워졌던 긴 땀방울을 따라 나도 춤을 춰 봐야 하나? 어딜. 그들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이번 생에는 영 파이다! 파이!


나에게 춤은 사유의 영역이 아니다. ‘이해’와 ‘비춤’을 건네는 거울이다. 보고 느끼는 것이 이 무대 위에서 그대로 실존함을 그때마다 확인한다. 너는 왜 눈을 마주칠 때마다 나를 지켜내는가? 신기하다.


예쁜 사람들이 참— 많다. 눈에 빛을 한아름 안고 있다. 문화재단이 지원할 작품을 제대로 골랐음을 인정하게 됐다. 이 활동이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꽤 생각이 복잡해졌다.


내가 몰랐고, 알고자 하지 않아 스쳐 지나갔을—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만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을— 수많은 것들이 벌써 아득하다. 붙잡을 수 있는 만큼 어떻게든 붙잡고는 있는데, 여간 쉽지 않다.


뭐, 어차피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 눈에 별로 박히고 있겠지. 일단 내 세상에서는 만나지도 못하고 이별이니까. 그러니 내 반경 안에 있는 소금 결정체부터 하나씩 주워야 하지 않겠나.


오늘 만난 ‘소금길’은 결국 내 안의 소금까지 흔들어 놓았다. 내 포대자루도 지금 미어터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소금을 캘 동안, 나는 그 옆에 쪼그려 앉아 그 결정들을 주섬주섬 담고 있지 않은가. 내 복주머니가 어디까지 커질지, 몇 가지 색깔들로 나열하게 될지 아직도, 매일매일— 기대가 된다.


엇—! 바닥에 떨어져 있다. 가까이서 보면?

내 소금도 여기 하나 있다.

어디 한번 구경하실래요?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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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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