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씨너스>에는 색소폰 연주자 '슬림'이 신참내기 블루스 가수인 '새미'에게 인종차별로 비참하게 죽은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있다.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슬림은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돌연 블루스 한 소절을 부른다. 그 순간 관객은 아무런 설명 없이도 1930년대 미국 흑인 사회의 슬픔과 분노, 체념의 정서까지 한꺼번에 알아차린다.
음악은 오랫동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고통을 전하는 매개체였다. 일제강점기에 불렸던 우리나라의 '아리랑'에는 한이 서려 있고, 영국의 식민 지배를 겪었던 아일랜드의 여러 민요에는 저항 정신이 담겨 있듯이.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가슴으로 먼저 느끼게 하는 것이 음악이다.
지난 8월 31일 열렸던 아트그룹 '화음'의 <공존의 시간 II – 사라져간 것들, 그리고 남은 것들>은 이러한 음악의 역할에 충실한 공연이었다. 2024년 <공존의 시간 I – 꺼지지 않는 불꽃 제암리 학살사건>에서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제암리 학살사건'을 음악으로 들려줬던 '화음'이 이번에는 화성시 매향리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매향리는 한국전쟁 때부터 미군의 사격장으로 사용되었다. 그후 이곳 주민들과 자연환경은 50년 넘는 시간 동안 소음과 오폭 사고로 고통받아 왔다. 주민들과 여러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사격장은 2005년 폐쇄되고 매일 포탄이 떨어지던 자리에는 이제 평화생태공원과 기념관이 들어섰다. 하지만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되었을 거라는 믿음과 달리 주민들의 트라우마는 현재진행형인 경우가 많고, 평화생태공원과 기념관도 매향리의 역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트그룹 '화음'은 피해자들을 애도하고 이곳의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무대에 섰다.
공연의 문을 연 것은 '적설'. 조용한 가운데 울려퍼지는 가야금 소리는 적설이라는 제목처럼 눈이 고요하게 쌓여 있는 겨울을 연상시켰다. 겨울은 지난 시간을 포함해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는 계절이다. 음악은 계절을 다시 흐르게 만든다. 매향리라는 동네 자체를 낯설어하는 관객에게 천천히 말을 걸며 몇 줄의 텍스트에 갇혀 있던 매향리의 이야기를 현재로 불러와 들려줄 채비를 한다. 이어지는 '기억의 바다', '달빛 아래 피어난', '지금 바로 이 곳에서', '밤비', '항해'는 매향리의 지난 50여 년을 1시간으로 압축해 관객에게 전해주었다.
셋리스트 중 가장 매향리의 풍경이 잘 그려졌던 곡은 '기억의 바다'다. 행정구역상 화성시에 속해 있어 상상하기 어렵지만, 사실 매향리는 바다와 접해 있는 동네다.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매향리에서 일어난 일을 묵묵히 지켜봐 왔다. '기억의 바다는 '이번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위촉 초연곡으로, 그 바다에서 영감을 받았다. 곡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차례 바뀌는 박자는 매향리의 파란만장했던 지난 50여 년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러는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대금 선율은 한결같은 바다의 존재를 드러냈다. 잔잔하기도, 거칠기도 하지만 절대 멈추지만은 않는 파도 소리가 대금과 피리 소리로 전해졌다.
끝에서 두 번째 순서로 공연된 '밤비'는 매우 역동적인 곡으로, 특이하게 일렉기타 연주자가 객원으로 등장했다. 어둡고 조용한 분위기로 시작된 곡은 중간 중간 북과 장구 같은 타악기 소리가 들어가며 포탄 떨어지는 소리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강렬한 일렉기타 소리가 그 위에 더해질 때, 타악기 소리는 포탄 소리를 넘어서 매향리 주민들의 세찬 심장 박동 소리로도 들려왔다. 생의 의지를 다지고, 포탄 소리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현실을 바꾸고자 싸운 끝에 사격장 폐쇄를 이끌어낸 매향리의 강인한 모습이 전해지는 듯했다.
음악은 정서와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만, 매향리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하기란 어렵다. 부족한 설명을 매꾸기 위해 곡과 곡 사이에 사회자가 등장해 매향리의 간략한 역사와 함께 각 곡의 창작 배경과 연주되는 주요 악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무대 뒤 스크린도 매향리 주민들의 인터뷰 영상과 매향리를 소재로 한 시를 보여주며 큰 역할을 했다. 곡이 시작되기 전 스크린에 나왔던 자료들은 매향리를 더 깊게 이해하고 곡에 몰입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공연을 보며 '공존의 시간'이라는 제목에 관해 생각했다. 과거는 현재와 공존하며 자연스레 영향을 미친다. 매향리 앞바다와 갯벌에는 여전히 많은 포탄이 박혀 있고, 매향리 주민들의 기억 속에는 오폭 사고로 죽었던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듯이. 고통과 슬픔은 과거에 봉인되지 못하고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그 고통과 슬픔이다. 그러니 <공존의 시간 II – 사라져간 것들, 그리고 남은 것들>로 한 사람이라도 매향리를 알게 되고 그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면 이 공연은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고통과 슬픔이 선명하게 드러나긴 했어도 그것이 매향리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야금과 아쟁, 대금, 장구 등의 악기가 전해준 매향리의 이야기는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그 안에는 삶과 희망에 대한 의지도 있었다. 공연을 보는 동안 타악기 소리가 포탄 소리에서 심장 박동 소리로, 아쟁 선율이 애달픈 곡조에서 매화를 다시 피우는 희망 어린 곡조로 바뀌던 순간을 기억한다. 우리는 고통만큼이나 희망과 투쟁이 지금의 매향리가 있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 왔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스크린에 나온 인터뷰 중 한 매향리 주민은 더 이상 어디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음악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고, 매향리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수 있게끔 확장함으로써 그 주민과 뜻을 같이한다. 공연장을 나서며 매향리의 이야기가 음악을 타고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비슷한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