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축약판으로 그 소설을 안다고 해선 안 된다는 것만은 안다.

 

이건 작가와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어떠한 형식으로든 자신의 소설이 독자에게 닿는다면 환영이겠지만, 그것이 변질되어 다가가기를 바라는 작간 없을 것이다. 교과서에 자신의 소설을 싣지 않는 어느 작가의 고집도 궤를 같이하지 않을까. 외서는 불가피하게 번역 공정을 거쳐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거기서 한 차례 더 축약한다면 아예 다른 책이 돼버린다. (과거에는 번역에 번역을 거치기도 했다지만, 최근에는 중역본이 드무니 넘어가자.)

 

그럼에도 우리는 그 약속을 곧잘 어긴다. 원문 그대로 읽자니 버거워, 축약판 내지는 요약본이나 ‘청소년을 위한~’ 식의 편의적인 버전을 찾는다. 특히 책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이 그렇다. 난해한 내용도 친근한 설명으로 다가오니 애써 외면할 필요가 없다. 읽지 않는 것보단 나으니, 일장일단인 셈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소설을 하나둘 완독하는 재량이 발굴된다면, 혹은 책을 사랑하면서부터는 그런 습관을 멀리하기 시작할 것이다. 나에겐 그 기점이 선명하다.

 

바야흐로 고등학생일 때, 책장에 꽂혀있던 아무 책을 꺼내 읽었다. 어딘가 이상한 제목에 끌렸다. 앉은자리에서 후다닥 완독했고, 경탄했다. 아, 이런 게 소설이구나. 곧이어 관련 정보를 하나둘씩 찾아보았는데, 알고 보니 당시 읽었던 책은 전문이 아닌 축약판이었고, 온갖 리뷰도 다른 책을 가리키고 있었다. 곧바로 유명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했고, 손꼽아 기다렸다.

 

 

esaias-tan-ucVdafUeGMs-unsplash.jpg

 

 

배송을 받자마자 연두색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그 책을 읽었다. 분명 같은 제목을 공유하고 유사한 내용을 가졌지만, 두 판본 간의 편차가 컸다. 첫째 소설엔 감복하였다면, 둘째 소설에는 굴복했다. 한 예술가의 광기를 다룬 그 소설은 당시 예술관에 직격타를 날렸고, 그때부터 심미주의, 탐미주의, 유미주의 등 그럴싸한 단어에 열광했다. 그것이 예술의 전부라 믿어, 오스카 와일드, 이상, 김동인, 김영하 등의 작가를 잇달아 탐식했다. 동시에 그런 글을 쓰지 못하고, 예술가의 광기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나에게 탄식했다. 그럴 때가 있었다.

 

예술에 대한 어떤 이상향이 사라진 지금에서야 그 책을 펼친다면, 다가오는 인상은 사뭇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쉽사리 다시 펼쳐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네 사람의 이름만큼은 또렷하다. 주인공의 이름, 주인공의 모티프가 된 이름, 소설가의 이름 그리고 옮긴이의 이름까지.

 

사실 이 구구절절한 소회는, 최근 한 음악 선술집에서 그 이름 중 하나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보다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띈 것이다. 그는 ‘싱가폴 슬링’이라는 술을 ‘동양의 신비’라 가리켰고, 그의 극찬이 곧 그 술의 꼬리표가 되었다. 동경해 마지않았던 그가 명명한 것과 진배없는 그 술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우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1/3]

 

 

김동연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일상의 음악, 이상의 책, 세상의 영화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