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의 6개월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멈춘 것 같은 박물관은 사실 살아있다
길다면 길었고 짧았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늘 외부인의 눈으로 ‘감상’만 했던 박물관이라는 공간에 내부자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짜릿했던 몇 주가 지났고, 특별전 준비라는 명목으로 끝없이 노동했던 한 달이, 사람들을 상대하며 지쳤던 두 달과 전시 해설에 본격적인 재미를 붙였던 두 달이 때로는 느리게, 종종 빠르게 지나갔다.
박물관은 참 신기한 공간인데, 특히 대학 박물관은 더욱 그렇다. 학교의 역사와 동시에 그 학교가 뿌리내리고 있는 국가의 역사 또한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재학생들은 우리 대학에 박물관이 있는 것도, 교사(敎史) 외 국사(國史)를 다루고 있는 것도 잘 모른다. 그래서 대학 박물관은 대학교에 있으면서도 학생, 교직원보다는 외부인의 방문이 훨씬 잦은 공간이다.
우리 학교의 박물관은 1934년에 처음 만들어졌는데, 그때도 도서관 자료실의 한구석에서 시작했다고 하니 학생들의 발걸음이 잦았을 것 같지 않다. 어쩌면 대학 박물관이란 재학생 모르게 그들을 대표하는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박물관에서 일했던 시기는 때마침 우리 학교의 120주년으로, 상설전보다 훨씬 큰 규모의 ‘120주년 기념 특별전’을 설치하고 개관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박물관뿐 아니라 도서관도 참여한 전시이기에 국보도 한 점, 보물과 국가 등록 문화유산은 더더욱 많아진 전시는 120이라는 숫자에 걸맞게 120점의 유물을 다루고 있다. 수천 점이 자리 잡은 수장고에서 120점을 골라내기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학예사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무려 네 층을 사용하는 큰 전시이기에 준비하는 과정이 녹록지는 않았지만, 평소였으면 박물관 곳곳으로 흩어져 전시실을 지켰을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료집을 만들고 전시실을 정비하며 친해질 수 있어 즐겁기도 했다. 커다란 진열장 안을 청소하고 전시실을 쓸고 닦으며 늘 지나쳤던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향한 애정을 키우기도 했다. 텅 비어 있던 기획전시실이 유물들로, 사람들로 채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이게 바로 [박물관이 살아있다]지!’ 생각했다.
특별전의 도슨트를 담당한다는 건 각계각층, 남녀노소를 넘나드는 관람객들을 응대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간판 유물만 2시간 내내 보는 열정적인 사람부터 천문 지도의 별자리를 물어보는 사람, 나에게 학교 역사를 설명하는 사람, 아직 해설의 반도 안 끝났는데 벌써 지루해진 사람. 6개월 내내 한 공간에 붙박이로 존재하며 깨달은 것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공간을 스쳐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동궐도]가 어디 있냐며 1층에서부터 보고 싶은 유물을 찾기 바쁜 관람객들이 부담스러웠다. 모르는 것을 물어볼지 겁이 나서 그랬다. 그러나 차츰 적응하다 보니 이제 그런 관람객들이 반갑고, 고맙고 또 그렇다. ‘내(?)’ 박물관을 이렇게 사랑해 주다니! 험난한 준비 기간과 몇 번의 전시 해설이 끝난 8월쯤엔 주인 의식이 잔뜩 부풀어 올라 관람객들이 하나하나 새롭고 또 소중하게 느껴졌다. 박물관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몰랐을 감정들이다.
시간이 멈춘 박물관에서도 '나'는 자라난다
시간을 멈추어둔 공간인 전시실에서 나 자신의 시간도 멈춘 것만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얼렁뚱땅 이직을 준비하다 보니 내가 새삼 많이 자랐구나, 깨달았다.
이제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떨지 않는다. 면접 때 체감해 봤다. 여전히 낯선 사람 앞에서 나를 이야기하는 건 무섭고 또 때로는 아주 많이 떨리지만, 반년 전의 나와 비교해서 훨씬 부드럽게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면접이 끝나고 같은 팀 면접자에게 ‘닮고 싶은 내용 전달이었다’라는 코멘트를 듣기도 했다.
말할 때의 발성이 정돈된 느낌도 받는다. 차분한 분위기의 전시실에서 너무 시끄럽지 않게, 그러나 너무 작지도 않게 말하는 것이 생각보다 말하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만두고 나니 금세 예전의 괄괄한 목소리로 돌아오는 것 같아 다시 의식적으로 연습하는 중이다.
9시 기상은 생각했던 대로 전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의 7시 기상을 위한 준비 과정임과 동시에 아침의 학교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아침을 여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달까. 나보다 훨씬 먼저 출근해 박물관을 지키고 또 유지해 온 선생님들을 향한 제대로 된 존경심도 생겼다. 학교를 만드는 사람들, 교직원들과 가까워진 것도 참 좋았다.
이제는 바깥으로, 새로운 새상으로
새 직장으로의 첫 출근일이자 도슨트 송별회 날이었던 이번 주 월요일, 마지막을 기념하며 찍었던 사진 한 장이 기억에 깊게 남을 것 같다. 제각기 다른 관심사와 전공이지만 박물관을 향한 애정만큼은 같았던 우리였기에, 문득 미래의 우리가 궁금해졌다. 반년 후의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일 년, 오 년 뒤 내 친구들은 어떤 모습일까. 언젠가는 다시 박물관에서 모일 수 있을 테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보아야지! 벌써 그때가 기다려진다.
박물관에서의 마지막 근무일, 전시를 마감하는 통제실 선생님과 인사하며 “자주 놀러 올게요!” 다짐했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아니더라고, 불쑥 생각이 날 때면 박물관으로 갈 것이다. 출입 권한이 취소된 학생증을 들고, 어딘가 서운하고 달콤쌉쌀할 기분을 안고서 다시 박물관을 찾아야지. 비어 있던 전시실을 모르는 사람인 양 한 바퀴 휭 둘러보고, ‘그래, 변한 게 없구먼!’ 크게 생각한 다음 조용히 밖으로, 이제 내가 속하는 ‘바깥’으로 향해야겠다.
그리울 거야.
그래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