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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컬렉션을 가져다 놓은 전시이다. 이 전시는 17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한 번에 가져다 놓은 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특별한 주제를 두고 전시가 진행되기보다는 서양 미술의 흐름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관찰하는 것에 중심을 맞추고 있다.

 

이 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를 설립한 필립스 부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플로렌스 필립스 부인은 런던에 있던 시절, 자주 갔던 미술관을 생각하며 자신의 고국인 남아공에도 이와 유사한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를 설립했다. 필립스 부인은 자기 동포들에게도 예술이 전해지고, 그들도 예술을 향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는 1910년에 문을 열었고, 이제는 어느덧 100년이 넘은 미술관이 되었다. 이 전시는 마치 그녀를 기리는 듯한 마음으로 필립스 부부의 초상과 함께 시작된다. 이런 부분은 이 전시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서양미술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이 글도 그 흐름을 따라서 쓸 수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시중의 책이나 유튜브의 짧은 강의로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인상 깊었던 몇 가지의 작품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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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에드가 드가의 그림이다. [두 명의 무희들]이라는 작품은 드가가 시력을 거의 잃었을 때 그린 작품이다. 드가는 인상파 화가들과 같은 시기에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그들처럼 야외와 빛에 시선을 돌리기보다 실내의 모습에 집중했던 화가이다. 그는 실내 풍경을 주로 그렸고, 그중에서도 실내에 있는 발레리나를 자주 그렸다고 한다. 그는 발레리나의 몸짓과 선을 살려 화면에 담으려고 노력했고,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특별히 이 작품은 파스텔로 그려졌는데, 드가의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한 30대 중반부터 유화로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부드럽고, 비교적 그리기 쉬운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자신만의 색감을 찾아나갔다. 이 작품은 60대 중반이 된 드가가 그동안의 노력으로 구축한 아름다운 파스텔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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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의 그림에서 볼 수 없었던 인상주의의 정석은 모네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그림은 모네의 [봄]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모네가 인상파로 불리게 된 초기 시점에 그려진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그릴 때 팔레트에 색을 섞지 않고 캔버스 위에 바로 펴 바르는 방식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만큼 생동감 넘치는 야외 풍경을 묘사하려고 했던 그의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인상파 작품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의 차이가 매우 크다. 봄의 연약한 가지와 색감들, 여름과 달리 무겁지 않은 듯한 하늘의 모습은 그림을 실제로 볼 때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많은 사람이 인상주의의 그림을 선호하듯이, 나도 인상주의 그림이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찰나의 순간을 영원처럼 보여주는 그들의 그림은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빛이라는 존재가 어디까지 아름다울 수 있을지 보여준다. 하지만 나에게 울림을 주는 그림은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에서 그치지 않는 것 같다. 그림은 결국 표현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선호하는 대상, 아름다운 풍경을 뛰어넘어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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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남자의 초상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된다. 20세기 미술로 넘어온 만큼 사람들은 전쟁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그림도 마찬가지인데, 베이컨은 인간의 얼굴이 알 수 없는 압박으로 인해 무너지고, 밀리는 형태를 그리면서 폭력성에 대해 시사한다. 이러한 폭력성은 화사한 분홍색 배경과 굉장히 대비되어 나타나는데, 이 자체로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제 그림은 풍경이나 사람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특정한 주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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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전시는 어떤 주제를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가? 서문에서 말했듯, 이 전시는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읊는 전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이 있었다. 바로 남아공에서 시작한 전시라는 것이다. 전시는 마지막 세션을 남아공 예술가들에게 바친다. 이 작품은 남아공 백인 가문 출신 현대 미술 작가인 윌리엄 켄트리지의 [물에 잠긴 소호]이다. 그는 흑인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인권변호사였던 아버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 시각에서 보면 보이는 것이 많은 그림이다. 실내 한 가운데 ‘소호’라는 인물이 서 있다. 소호는 그가 만든 가상의 인물인데, 전형적인 백인 자본가로 등장한다. 그는 쏟아지는 물을 무기력하게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이 물은 백인 한 사람이 서 있기 위해 수많은 유색인종이 흘려야 하는 눈물이자 폭력과 차별의 상징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백인들이 직면해야 할 고통과 죄의식을 보여주며, 작가 자신도 이 그림을 통해 반성하고 직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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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세계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펠릭스’라는 인물도 나온다. 소호가 양복을 입은 냉정한 백인 자본가로 그려진 것과 달리 펠릭스는 벌거벗거나 간소한 차림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소호’는 인종 차별 체제에서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쥐고 특권을 누린 백인을 나타내지만 펠릭스는 그의 간소한 차림에서 연민과 회한, 인간적 취약함을 드러낸다. 펠릭스는 사회적 갑옷을 벗어 던진 백인의 내면적 자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는 소호가 억누르려 했던 죄책감, 회한, 연민의 감정이 표면화된 모습을 가시화한다. 켄트리지는 이 두 인물을 통해 외적 권위와 내적 도덕성을 가진 인물이 본질적으로는 같은 인물임을 드러낸다. 결국 켄트리지는 백인들이 소호처럼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 불의함을 알고 있는 상태를 시각화하여 두 인물로 표현한 것이다. 백인 사회의 집단적 양가감정을 보여주면서 백인들이 인종 차별 체제를 만든 가해자이자 도덕적, 정서적 파열을 겪은 사람임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전시가 남아공 작가들의 작품으로 마무리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왜 우리는 여태껏 이런 작품들을 몰랐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린 ‘서양’이라는 세계에 갇혀 너무 많은 사람을 흐리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종종 서양 미술을 유럽과 북미의 역사로만 한정해 바라보지만, 사실 그 속에는 식민 지배, 인종차별, 자본과 권력의 불평등 같은 복합적인 세계사가 함께 얽혀 있다. 모네의 빛과 색, 드가의 섬세한 선, 베이컨의 불안한 인물 모두 중요하지만, 켄트리지가 던진 질문은 이 미술사의 화려한 아름다움이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직면하게 만든다. 예술은 아름다움만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그 시대가 외면하거나 억눌렀던 목소리를 꺼내는 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전시를 단순히 ‘서양 미술사의 흐름’으로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이 전시는 미술이 가진 사회적 역할과 책임,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묻는 곳이었다. 예술을 통해 타인의 역사와 고통을 이해하려는 시도 없이, 우리는 절반의 세계만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켄트리지의 물에 잠긴 소호는 단지 남아공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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