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영 1집 청춘의 포말 중 ‘나의 바다에게’
지난 30일, 강릉에 재난 사태가 선포되었다. 강릉은 오봉저수지를 통해 물을 공급받는데, 그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저수지도 바닥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주말, 친구들과 강릉에 다녀왔다. 서울에는 며칠 동안 폭우가 쏟아졌지만, 강릉은 물기 하나 없이 맑은 날씨였다. 오늘 오후에 잠깐 빗방울이 떨어졌으나, 우산을 펼 필요도 없는 정도였다. 서울에서 지겹도록 봤던 비구름도 하나 없었다.
강릉시는 이미 제한급수를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뭄을 해결할 뚜렷한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또 물부족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도시는 활기찼다.
해수욕장에는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시장과 카페거리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의 풍경은 재난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와 친구들 또한 그 속에 섞여 강릉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는 묘한 기시감이 따라 붙었다. 휴대폰을 켜면 보이는 뉴스 기사 속 강릉의 현 상황과 눈 앞의 모습이 너무도 다르게 느껴졌다. 그 기시감은 아르떼뮤지엄을 보고 나왔을 때 더욱 짙게 다가왔다.
영원한 자연
아르떼뮤지엄은 제주도, 여수에 이어 강릉에 세 번째로 개관한 미디어아트 전시관이다. 주제는 ‘영원한 자연’으로 ‘바다', '해', '정원' 등 여러가지 테마의 작품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눈을 뗄 수 없는 웅장한 영상과 청각, 후각적 요소가 더해진 전시는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하며 무한한 상상력의 영역에 빠져들 수 있게끔 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실제 자연을 반영한 '바다', '번개’, ‘폭포’가 특히 인상깊게 남았다.
‘바다’ 전시관에서는 커다란 고래가 뛰어 놀며 파도를 일으키고, 일렁이는 물결이 관람객의 발걸음을 따라 퍼져나가는 듯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실제 바닷 속에 들어선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평소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큰 고래나 다양한 바다 생물을 구현한 것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해주는 좋은 오브제가 되었다.
‘폭포’ 전시관에서는 수직의 공간을 따라 일정 시간마다 거대한 폭포가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맞닥뜨린 광경은 실제 자연의 장엄함을 닮아 있었다.
맞은편 거울로 폭포 이미지와 물소리를 감상하며 실제로 큰 폭포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경이로움을 체험할 수 있었다.
‘번개’ 전시관에서는 강렬한 번개와 천둥이 어두운 공간을 가르며 순간적으로 풀숲이나 대지를 비췄다.
갈라지는 번갯불은 마치 지각판이 쪼개지는 듯한 이미지로 포착되어, 인간의 의식 속에 포착할 수 없는 하늘의 지각판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하늘과 땅이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일으켰다.
실제 자연과 가상의 자연
아르떼뮤지엄의 전시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실제 자연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감각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관람을 마치고 전시관을 나서자 경포호수가 보이자 또 다시 괴리감이 느껴졌다. 호수 표면에 햇빛이 반사되어 물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순간 아르떼뮤지엄의 ‘바다’가 떠올랐다. 구현된 미디어아트 속의 물결도 분명 예뻤지만, 그걸로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강릉의 가뭄이 다시 생각났다. 실제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떼뮤지엄에서 경험한 가상의 자연과, 눈 앞에 있는 실제 자연이 겹쳐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까지 이 풍경을 누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전시의 역할은 자연을 정확히 구현하는 것은 아닐 것임에도, 미래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전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점의 예술은 어쩌면 창의적인 발상으로 미지의 세계를 다루기보다,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을 되살려내는 것에 집중하게 될수도 있지 않을까.
아르떼뮤지엄이 장엄하고 몽환적인 바다가 아니라 눈 앞의 경포호수를 구현하고, 우리는 스크린 속의 경포호수를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
자연이 계속 무너지고 결핍되는 과정 속에서, 기술로 구현된 자연을 떠올리는 것은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전시 체험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기분 속에서 우리가 앞으로 접할 상황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앞으로 예술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강릉의 제한급수와 동시에 펼쳐진 관광지의 평화로움, 그리고 아르떼뮤지엄의 화려한 가상 자연과 경포호수의 현실적인 아름다움. 이번 여행은 이 모든 상반된 풍경이 겹쳐진 묘한 아이러니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