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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이제 드디어 선선한 바람을 들이마실 수 있겠다고 기대했건만, 그게 다 우스워질 정도로 여전히 습하고 꿉꿉한 8월의 끝자락이다. 오늘도 자주 가는 카페를 찾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요즘 내 하루는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블로그 탭에 들어가 이웃의 새 글을 확인하는 일이다.


밀린 일기를 쓰기도 전에 친구들의 일상을 먼저 구경한다. 잘 모르겠다. 그냥 인스타그램보다 블로그가 더 재미있다. 친구들만의 언어로 그들의 일상을 속삭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어딘가 말랑해진다.


나는 뭐든 친구들보다 한 걸음 느리다. 내 생각엔 강한 회피 성향 또는 고집 때문인 것 같다. 친구들이 인스타그램 프로필 링크에 블로그 링크를 첨부해 놓을 때도, 블로그 '주간 일기 챌린지'를 해야 한다며 매주 글을 써 올릴 때도 솔직히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에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유독 공허하고 힘들었던 새벽에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정돈된 글로 옮기지만 않았을 뿐 내 메모장과 사진첩은 늘 일상과 생각을 기록한 흔적으로 가득했다.

 

'그걸 그렇게 방치할 바에야 블로그에 정리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이름만 블로그였지 나에겐 그냥 비밀 일기장 수준이었다. 아무한테도 보여줄 수 없는 글을 쓰고 발행 버튼을 눌렀다. 대신, 비공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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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식 삶


 

그때부터 수많은 비공개 게시물을 올렸다. 그렇게 비공개에서 서로 이웃 공개로, 서로 이웃 공개에서 전체 공개로,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아가는 중이다. 이제는 유튜브에 내 일상을 기록한 영상도 올리고 있다. 비록 구독자는 친구 두 명 포함 단 세 명뿐이지만.


블로그와 유튜브에 글과 영상을 올리며 느낀 몇 가지가 있다.


어느 정도의 허세와 보여주기식 삶은 의외로 하루를 더 다채롭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런 목표도, 재미도 없는 하루도 누군가가 보고 있다고 상상하는 순간 나는 순식간에 어느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이 된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자의식 과잉과 자아 표출도 조금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평범하고 밋밋한 일상도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양치도 하지 않고 커피를 내리고 크루아상을 입에 넣고부터 보는 상상을 해보자. 그저 별다를 것 없는 오전 10시의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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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 캡슐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추천 글을 쓰고, 크루아상은 코스트코에서 15개에 만 원밖에 안 한다고 중얼거리며 한입 베어 물어 보자. 그러다 보면 문득, <나 혼자 산다>의 출연진이 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샤워할 때 해외 투어 중인 블랙핑크 놀이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상 브이로그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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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은 유튜브에서 <사내뷰공업>과 <소정아리>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PD이자 온라인 콘텐츠 창작자다. <사내뷰공업>에서는 부캐를 연기하며 많은 공감과 웃음을 얻었고, 이제는 개인 채널을 오픈해 본캐와 부캐를 넘나드는 일상을 기록한다.


그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고 점심으로는 거의 매일 포케를 먹는다. 퇴근 후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운동이 끝나면 그녀만의 도파민 타임, 찬물 샤워의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좋아하는 애니를 보며 저녁을 먹는다. 커피는 주말에만 마시고 약속도 웬만하면 주말에 잡는다.


그녀의 일상은 이렇게 내가 외워서 쓸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비슷하고 규칙적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일상은 너무 재미있고, 영상이 기다려진다. 나와는 다른 규칙적인 일상,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그것을 공유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은은한 자극을 준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의 블로그를 구경하듯 소정아리의 유튜브를 보는 일도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기록하는 삶


 

우리 삶에서만큼은 우리가 늘 주인공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일상은 늘 특별하고 가치 있다.

 

기록한다는 건, 수집한다는 건 해볼 만한 일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도, 그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나를 설명하는 기억이 되고 나를 이해하는 언어가 된다. 감정은 휘발되어도 사진과 글은 휘발되지 않는다. 기록하지 않으면 그 순간의 감정은 영영 사라져 버린다. 기록된 기억과 감정만이 영원히 남는다.


지금부터라도 사소한 무엇이든 기록해 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기록하는 데에만 그치지 말고, 용기를 내어 공개적인 곳에 게시해 보자. 누군가는 당신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


나도 이제 내 블로그를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다시 글을 쓰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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