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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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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많은 메타 영화, 다시 말해 ‘영화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애정하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1963년 작 〈8과 1/2〉이다. 영화감독인 ‘구이도’는 다음 작품의 촬영을 앞두고 있지만, 머리가 영 복잡하다. 그는 실험적인 우주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매일 일과 사람에 치이는 한편, 아내와 애인과의 관계에서도 난항을 겪으며 환상적인 꿈과 지옥 같은 현실을 오가는 혼란스러운 생활을 지속한다.

 

이러한 정신없는 일상의 경험은 구이도가 자신의 꿈과 기억의 내용이 무의식적이고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는 영화를 기획하는 데로 이어진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남아 있는 무거운 짐을 덜어내기 위해 그동안의 삶에서 충분히 사랑해 주지 못했던 사람들을 전부 자기 영화 속에 소환한다.

 

특히 한 여배우와 몰래 바람을 피우면서 아내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그는 누가 봐도 자기 아내의 부정적인 모습을 똑 닮은 캐릭터를 만들어 영화에 등장시킨다. 현실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용기도 없을뿐더러 이에 대해 아내와 솔직하게 대화를 나눈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때 남편의 영화 제작 현장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오디션 영상을 보게 된 아내는 결국 그에게 관계의 끝을 선언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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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라면 분명 누구나 한 번쯤은 구이도처럼 자기 이야기를 할 것이다. 자기 가족이나 친구, 혹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봤던 인상적인 누군가의 모습을 자기 영화 속 캐릭터에 투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라는 표현 수단을 지닌 감독들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어떠한 경험을, 잊히지 않고 머릿속에 계속 떠다니는 기억을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감독 스스로 넘어야 하는 산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한 타인과의 문제를 영화라는 픽션 세계 안에서 제멋대로 결론짓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그렇게 자기 가슴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응어리를 허위로 배설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도 없다. 영화는 삶을 담지만, 분명 삶 그 자체는 아니다. 타인과 공유하고 있는 현실을 홀로 외면하려는 구이도의 이기적인 시도는 결국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뿐이다.

 

영화에는 그런 구이도의 주변을 끝없이 맴돌며 그에게 날카로운 조언을 해주는 멘토가 한 명 등장한다. 당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어떤 관객이 삶의 교훈으로 삼으려 하겠는가, 이런 영화를 만들면 제작자는 돈만 잃지만 감독은 모든 걸 잃게 된다, 무질서에 또 다른 무질서를 더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을 창조하지 못할 땐 파괴가 창조보다 낫다.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준비하던 영화를 엎기로 한 구이도에게 그가 전하는 모든 말은 구이도의 환상 속 아름다운 여인의 메시지와 함께 구이도의 마음에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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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도가 관계의 끝을 결심한 아내에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자기가 영화 속에 멋대로 등장시켰던 모든 사람과 다 같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도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가짜 우주선은 이제 쓸 일이 없어졌지만, 그 대신 구이도는 자신의 진짜 삶을 마주하게 됐다. 생각만큼 지독하지도, 성가시지도 않은 현실이란 아름다운 세계를.

 

페데리코 펠리니는 〈8과 1/2〉을 통해 감독으로서 자기 삶의 문제를 영화 속으로 끌고 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의 말마따나 현실에서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를 영화라는 허구적인 세계에서 대신 해결하려는 것은 너무 거짓되고 게으른 삶의 태도일 테다. 진실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먼저 자기 삶에서부터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영화의 교훈은 그로부터 60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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