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나이를 말할 때 순간적으로 망설이게 된다. 재작년에 ‘만 나이’ 법제화가 시행되면서 오히려 나이 제도가 더 헷갈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족보 브레이커라 불리는 ‘빠른’년생이다. 병원에 가니 내 이름 옆에는 28이라는 숫자가 있었다. 내 동창들처럼 30살도, 대부분의 97년생들처럼 29살도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왜 만 나이를 아직도 편하게 말하는 사람이 없을까. 한국에서는 나이가 인생의 많은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직 나이가 깡패인 나라가 한국이다. 사람들은 만 나이는 만 나이대로, 한국 나이는 한국 나이대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 “저 올해 서른이요”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만 서른? 한국 나이 서른?” 하고 다시 확인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사실 내가 20살이라면 이런 고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부턴 나이를 극구 양보하고 싶다. 아무리 봐도 30이라기엔 내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여서 그런 듯싶다. 나이를 말하는 순간, 내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동시에 말하게 되는데, 그 순간 나는 내 정체성을 설명할 언어를 잃어버린다. 나이라는 기준이 흔들리자 나 스스로도 불분명해졌다.
몇 주 전 병원에서 나는 우울증 의심 대상자로 진단받았다. 옆에는 보호자를 상시 두라는 권고까지 적혀 있었다. 진단이 틀린 것 같다고 하기엔, 다 나한테 해당되는 말들이라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매사에 흥미나 즐거움이 없고, 기분이 가라앉거나 희망이 없으며, 늘 피곤하고 기운이 없고, 나는 실패자라는 감각이 마음을 짓눌렀다. 첫 직장에서 나를 불태운 후 번아웃이 왔던 재작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연기가 나는 듯한 열감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물에 잠긴 듯, 차갑고 싸늘했다. 번아웃이 불타 꺼지는 것이라면, 우울은 호수에 가라앉아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 가깝다. 내가 이 책에 끌렸던 건, 그 호수에서 뭍으로 가기 위해 헤엄치는 나에게 잠시 몸을 기대 쉴 수 있는 튜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냥 예쁜 글귀를 모아놓은 에세이가 아니다. 표지의 그림마저 작가가 직접 한 땀 한 땀 그린 이 책은 지금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편지이다. 그 용기는 ‘지금 있는 그대로도 괜찮을 용기’이다. 나처럼 흔들리는 사람에게 지금 여기서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좋은 점은 이름 석자 휘날리고 있는 이들의 자기 계발서보다도 훨씬 내 삶에 적용하기 쉬운 팁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도 앞으로 내 삶에 입혀보면 좋을 옷을 발견했다.
1. "잘 지내?" 대신 "생각나서"라고 말해보기
(p.127) 잘 지내냐는 무난한 말 한마디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작전을 바꿔보기로 했다. ‘잘 지내?’라는 물음표로 답을 고민하게 만드는 대신, ‘그냥 생각나서’라고 보냈다. 부담은 덜고 낭만을 담았다.
맞다. 오랜만에 연락할 때 ‘잘 지내?’라는 말은 가식적으로 들리거나, 상대를 캐묻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그냥 생각나서’라는 말에는 사소하지만 따뜻한 진심이 있다. 앞으로는 나도 이렇게 말해보려 한다. 누군가 나를 그냥 생각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니까.
2. 카이로스적인 삶을 지향하기
(p.176)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개념으로 구분했다. 하루에 책을 몇 권 읽었느냐가 크로노스적 시간이라면, 그 책이 내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느냐가 카이로스적 시간이다. 나는 최대한 많은 책을 읽으려고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지만, 정작 책 내용이 무엇인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요즘은 카이로스적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24시간을 얼마나 생산적으로 살았나 셈해보기보다는 오늘 하루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의미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나 역시 하루를 돌아볼 때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를 먼저 세어 왔다. 하지만 결국 나를 지탱해 주는 건 성과의 숫자가 아니라 그날의 의미였다. ‘오늘 하루가 내게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를 묻는 습관이 조금은 나를 살게 한다.
3. 내 불완전함을 잘못이라 착각하지 않기
(p.207) 죄책감은 원래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뒤 책임을 느끼는 감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도 죄책감을 느낀다. 잘못이 아니라 불완전함일 뿐인데, 그것조차 죄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친구가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너는 꼭 복역 기간 남은 사람 같다"라고. 나는 늘 나 자신을 벌주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잘못이 아니라, 그냥 부족할 뿐이었다.
4. 도망치는 대신 배우기
(p.156) 배우려는 마음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이길 때 우리는 어른이 된다.
직장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도망치고 싶다. 다른 동료가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아 초조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이 문장을 되새기려 한다. ‘지금은 도망칠 때가 아니라 배울 때다.’ 누군가의 성장을 부러워하는 대신, 그로부터 배우려는 태도. 남이 이기는 걸 좋아해 보라는 말처럼, 배움의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조금은 단단해질 수 있겠다. 유명한 <라이언킹>의 대사처럼 말이다. You can either run from it, or, learn from it.
5. 지금을 살아내는 용기 갖기
(p.271) 꿈은 언젠가 이루어지는 결말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과정인듯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나가는 것.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현실 속 어른들에겐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그 작지만 단단한 용기가 가져오는 변화를 너무나 크게 체감하고 있기에, 당신의 용기를 간절히 응원하게 된다.
결국 꿈도 행복도, 모두 ‘용기’와 닮아 있다. 퇴사를 고민하는 것도, 새로운 길을 상상하는 것도, 다 지금을 살아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책은 김유미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하는 그녀의 유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처음엔 판다가 마냥 귀여워 보였지만,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행복에 집중하는 판다가 새삼 대견하다.
“N년차에 내가 이룬 것들”이라는, 요즘 유행하는 밈이 있다. 직장 1년 차, 데뷔 7년 차, 창업 5년 차… 누구나 쓸 수 있다. 중요한 건 성과가 아닌 내가 남긴 흔적이라는 것을 되새겨주는 밈이라서 꽤나 좋아한다. 이제 내 나이 자체를 이렇게 생각해보려 한다. 인생 약 30년 차 - 엄마한테 귀여움으로 효도했음, 동료들한테 밀크티 주기적으로 쏨, 글도 간간히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