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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덕인데 오아시스를 좋아한다고 하면 따라오는 의심의 눈초리. 이 녀석, '가짜'가 아닌가. 오아시스가 그만큼이나 대중성을 잘 잡은 밴드라는 말로 알아듣고 행복한 덕질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오아시스 팝업에, 내한 공연에 숨 쉬듯 내리는 떡밥의 향연에 기쁨의 춤을 추던 중 마침내 도착했다. "Oasis: 슈퍼소닉 4K 재개봉". 오아시스 노래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명곡인 'Supersonic'이 제목인 이 다큐멘터리. 이거 안 보러 갈 이유가 없다.

 

요즘 새로 개봉하는 영화도 영화관에서 보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OTT로 보는 마당에, 다큐멘터리를 보러 영화관까지 간다고? 이미 널리 알려진 이 갤러거 형제의 이야기, 귀에 익은 전설적인 노래들, 잔뜩 찡그린 노엘 갤러거의 미간 주름. 그 뻔한 반복을 위해 덕후들은 극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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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시작되는 음악의 생동감


 

어쩌면 오아시스 다큐멘터리를 보러 간다기보다는 공연을 다시 보러 간다는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아니, '다시'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모든 덕후들이 그 치열한 티켓팅을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극장의 불이 꺼지고 화면의 빛이 더 강하게 보일 때부터, 영화가 처음 들려줄 오아시스가 노래가 무엇일지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누군가의 스크랩북을 엿보는 듯하다. 이 곡이 나왔을 때 오아시스의 모습은 이랬었지, 저 곡이 나왔을 때 이런 사건이 있었지, 하며. 그럼에도 결국 남는 것은 노래. 태어나기도 전에 나왔던 명곡들은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라이브는 아닐지라도 집에서나 헤드폰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거대한 음향에서 익숙한 맛이면 익숙한 대로, 낯선 맛이면  낯선 대로 그 흐름에 올라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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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음향의 백미는 어느 농장에서 리암 갤러거가 오아시스의 정규 앨범 'Morning Glory'를 녹음하는 장면에서 느낄 수 있다. 리암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Champagne Supernova'의 보컬을 녹음하는데, 앨범에서 들을 수 있는 악기와 어우러진 목소리가 아니다. 다른 사운드는 훨씬 줄이고 리암의 보컬이 훨씬 강조되어서 들린다. 마치 녹음실의 유리 벽 건너편에 앉아서 그의 보컬을 듣고 있는 노엘 갤러거가 된 기분이다.


 

Slowly walkin' down the hall

Faster than a cannonball

Where were you while we were gettin' high?

 

Someday you will find me

Caught beneath the landslide

In a champagne supernova in the sky

Someday you will find me

Caught beneath the landslide

In a champagne supernova

A champagne supernova 

 

- Champagne Supernova, Oasis

 

 

딱히 말이 되지 않는 가사임에도 노엘 갤러거의 청량하고 단단한, 그렇지만 긁히는 듯한 목소리로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을 넘어 뭉클하게까지 느껴진다. 익숙한 곡이지만 낯선 맛. 그리고 서라운드로 들리는 소리. 이것만으로도 영화관에 올 이유는 충분하다.

 

 

 

집단적 메아리의 기억


 

본인도 오아시스 티-샤쓰를 입고 간 관객으로서, '오아시스: 슈퍼소닉'의 시사회에 온 관객들이 들고 온 각종 오아시스 굿즈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 폭염에도 꿋꿋하게 입고 온 오아시스 저지부터, 오아시스 티셔츠는 기본이고 가방이나 키링들까지. 각자의 덕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사람들을 보며 새삼 우리나라에 이렇게 오아시스 팬이 많았던가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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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은 노엘 갤러거의 나레이션으로 끝난다. "There’s a chemistry between the band and the audience. There’s something magnetic drawing the two to each other. The love, and the vibe, and the passion and the rage, and the joy that’s coming from the crowd. If anything, that’s what Oasis was.” 관객들이 주는 사랑, 분위기, 열정, 분노, 그리고 즐거움. 그게 바로 오아시스 그 자체라고.

 

모든 팬과 예술가의 관계가 그러하듯 둘의 서로에게 필수 불가결의 관계이다. 예술가가 없으면 팬도 없고, 팬이 없으면 예술가도 없는 법. 수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오아시스는 그 관객들의 함성마저 하나의 악기 사운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극장은 오아시스를 사랑하는 관객들이 서로를 재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이다. 오아시스는 관객들이 주고받는 감정들 그 자체였기에. 영화관을 간다는 것은 오아시스가 노래를 부르면, 관객이 다 같이 돌려주는 그 집단적 메아리가, 함성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여전히 현재형인, Oasis


 

영화는 오아시스의 해체와 같은 내리막길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1991년 오아시스의 결성에서 시작해 첫 싱글이었던 'Supersonic'과 투어 중 구성원들의 갈등을 보여주고, Oasis가 정점에 도달한 순간인 1996년의 Knebworth 공연에서 영화가 끝난다. 영화는 형제가 시작한 밴드가 어떻게 5년 만에 전설적인 밴드가 되었는지에 집중하며 관객들을 다시 그때 그 순간 오아시스가 가장 빛났던 때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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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 갤러거는 말한다. "Just cos you've kissed the sky, give it a love bite". 넵워스 공연은 그들의 가장 위대한 공연이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오아시스 생활의 종점은 아니다. 결국 해체하기는 했다지만, 노래는 여전히 남아있고, 이들은 결국 재결합을 하지 않았는가? 영화 속에서, 그리고 놀랍게도 현실에서도 오아시스는 현재 진형형이다.

 

팬들이 몰랐던 정보를 알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왜 싸웠는지, 어쩌다 다시 결합했는지는 영화관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여타 매체에 이미 접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그들이 극장에 가는 것은 애니메이션 팬들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는 이유와, e-sports 팬들이 결승전 경기 단관을 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극장은 결국 또 하나의 공연장이며 다큐는 그곳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연주이기에. 노엘이 자신이 죽어도 자신의 곡은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듯, 오아시스가 또다시 해체하더라도 영화 속 그들은 다시 연주해 줄 테니.

 

Supersonic-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큰 스크린에서 다큐멘터리 '오아시스: 슈퍼소닉'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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