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근황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현재 내 상황에 대해 놀라는 친구들이 많다. "너가 지금 ㅇㅇ 업종에서 일한다고?", "나는 너가 무조건 너가 원하는 분야에서 일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다시 그 쪽 공부나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 의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 난 분명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꿈꿔왔다. 적어도, 재수를 할 때까지는 말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 원하는 분야가 아닌 전공의 공부를 하며 회의감을 많이 느꼈다. 내가 원하는 꿈을 반대한 부모님을 정말 많이 원망했고,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한 현실을 너무나도 싫어했다. 그러나 가장 많이 혐오했던 건 내 자신이었다. 그렇게나 떵떵거리며 하고 싶은 일을 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던 나는, 지망했던 학교도 아니고, 지망했던 학과도 아니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공부를 하게 됐다. 그리고 복수전공마저도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전공을 하게 됐다. 그 최후의 선택, 마지막 결정권자는 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 자신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내가 빛나는 게 아니라, 빛나는 무언가를 위한 소모품으로 살아가는 방향으로 내 삶을 망쳐가는 것 같아서, 나는 문득 초라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턴 내 미래에 대해 기대를 전혀 품지 않게 됐다. 빨리 돈이나 벌고 싶었다. 그 돈을 보며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웅크림을 선택했다.

 

친한 친구가 최근 내게 말했다. 넌 말이야, 표현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야. 너가 느끼는 것들을 그림이든, 글이든, 무슨 방식으로든간에 표현을 해야 살아. 그런 사람들이 있어. 그리고 너에겐, 확실히 표현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 난 너가 꼭 글을 썼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고 한참을 혼자 우울해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업무를 수행하며 살아가는 내 자신에 대한 슬픔 때문인지, 아니면 용기내기 더 이상 어려워진 지금의 상황에 화가 나서인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명확한 것은 점점 무기력감과 함께 현실에서 '도전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른 용기_평면 표지.jpg

 

 

김유미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도서 <어른이지만, 용기가 필요해>는 위로를 얻고 싶어 읽게 된 책이기도 하지만, 답답한 내 상황에 대한 해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읽게 된 책이기도 하다. 노란 꽃이 그려진 언덕과 하얀 구름이 떠있는 하늘, 3그루가 옹기종기 모여 서있는 나무들과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로켓(으로 추정되는 무언가)에 엎드려 있는 뒷모습의 판다. 귀여운 표지에 마음이 잠시 식는다. 그렇게 책을 펼쳐들었다.

 

책을 먼저 촤르르, 넘겨본다.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이 책의 삽화들에는 판다가 각기 다른 자세와 각기 같은 여유로움을 띄우고 존재감을 내비추고 있다. 평소에 판다를 좋아해서 그린 걸까? 의문을 품고 첫 장을 펼친다. 프롤로그, 김유미 작가는 프롤로그에 판다와의 조우에 대해 설명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판다의 유유자적한 삶에 대해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무색무취했던 본인의 삶에 화가라는 꿈이 찾아온지 어연 10년, 직장을 다니면서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꼭, 10년 전의 나를 본 것 같아 많이 놀랬다.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려놓았는데, 당신은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치밀어오르는 슬프고도 고약한 마음을 누른 채로 책을 읽는다.

 

책의 내용은, 어른을 위한 위로에 가깝다. 어른이 되어 용기가 나지 않는 독자들을 위한 위로를 건내는 책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다만, 몇 장 넘기다보면 나오는 판다들이 '킥'이라고 할까. 작가의 꿈이자, 도전의 계기 자체인 판다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마치, 작가처럼 용기를 내란 듯이. 10년 동안 꿈꿔온 꿈을 한 권의 책으로 표현한 작가의 용기를 닮으라는 듯이.

 

특히 나는 '다시, 위로받는 법을 배운다' 라는 제목의 장이 기억에 남는다. 작가는 친구에게 '내가 가장 힘들다' 라는 마음으로 고민을 풀어내다가, 친구의 '너만 힘든 게 아니다' 라는 말에 그 힘듦을 혼자서 해결하는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혼자서 해결하는' 시간에도 다양한 방식의 위로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위로를 받는 법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고 표현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원하는 위로'와 '내가 실질적으로 받는 위로'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감정적 공감을 원할 수 있으나 실제론 이성적으로 상황을 분석해준 위로가 내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 방식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에 머리를 끄덕이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어떤 방식의 위로를 하고 있는지, 단순히 '받는' 행위가 아니라 '주는' 행위로서의 위로는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어른이지만, 용기가 필요해>는 뭐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어른이 되어서도 용기는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래, 나도 어른이 되면 뭐든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성인이 된지 몇 년이나 흐른 지금, 나는 내가 어른인지도 모르겠고, 과거에 꾸던 꿈에 도전할 용기는 더더욱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이 창피했다. 꿈을 꾸던 어릴 적 나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김유미 작가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하루여도 괜찮다고, 도전을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는 조언을 한다. 그게 만약 어른이라면, 나도 어른이라는 현실을 조금 더 마주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책을 다 읽고서 용기가 갑자기 미친듯이 난다거나 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약간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용기라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포용할 시간이 생길 수 있게 됐다면, 나는 그럼 오늘 '도전을 한 하루'를 보내게 된 것이지 않을까. 언젠가는 과거에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 꿈들을 향해 박차고 뛰어나갈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도 여전히 생각이 복잡하다.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혼란에 힘들어하다가 가끔, 이 책의 판다가 생각나 이 책을 다시끔 읽을 것 같다.

 

 

 

윤지원.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