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 나폴리를 거닐다]는 이탈리아 남부 최대 규모의 국립 미술관인 카포디몬테 미술관의 19세기 나폴리 미술 컬렉션을 선보이는 전시다.
나폴리라는 지명이 음식이나 스포츠 팀명 등을 통해 귀에는 익숙하지만, 그 정도의 어렴풋한 인식 외에는 아는 것이 없는 터였다. 그래서 더욱 나폴리가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이기에 '나폴리'를 전면에 내세운 전시가 기획된 것인지, 그에 대한 궁금증을 가득 안고 찾은 전시였다.
전시는 크게 두 가지 파트로 진행된다.
1. 회화 속 여성 형상과 그에 투영된 이상을 통해 당대 사회의 가치관과 감수성의 변화를 살펴본다.
2. 귀족과 서민의 실내, 도시 교외와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풍경을 통해 이탈리아 남부의 일상과 자연을 들여다본다.
사람, 특히 '여성'이 중심이 되는 첫 번째 파트에서는 궁정 초상화에서 중산층 여성, 서민 여성의 그림으로 전시의 흐름을 이어 나가며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여성상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한다. 서민 계층이라고 해서 생활감이나 고단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배경 속에서 가축이나 동물과 함께하는 모습을 감성적으로 연출한다. 따라서 귀족, 서민과 같은 계층의 구분을 넘어 확대된 여성상을 만날 수 있다.
이 시대 중산층 여성은 품위와 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상류층 여성을 따라 하며 상류 사회에 대한 동경과 편입 욕망을 드러냈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 역시 흥미로웠다. 이 그림들은 기존의 상류층 여성을 그리던 초상화와 유사한 평온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더 동적이고 다양한 구도, 소품을 활용한 점에서 차별점이 있었다.
특히 죽은 새를 바라보는 여인을 그린 에도아르도 토파노의 [죽은 새]는 문학 서사를 바탕으로 상징적인 모티프를 재해석해 회화 안에서 서사를 느낄 수 있도록 한 점이 매력적이었다. 빈첸초 카프릴레의 [여인의 초상]은 어깨와 등이 드러난 드레스 차림과 화면 밖 인물에게 고개를 돌린 자세 등 파격적인 구성이 기존 여성화와는 다른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 더욱 신선했다.
전시를 보다 보면 중간중간 'Intermission'이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의 역사나 참고하면 좋을 미술 사조의 흐름에 관해 설명하는 구간이 있다. 나폴리는 나폴리 왕국 시절을 지나, 양시칠리아왕국의 수도였다가 이후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기까지의 격동기를 보내며 정치적, 사회적 전환의 중심에 있었던 지역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은 나폴리를 그린 다양한 회화를 더욱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익한 참고 자료였다.
또한 '전시 안의 전시' 기획을 통해 화가 조아키노 토마의 작품 세계에 주목하기도 했는데, 특정한 작가보다는 특정한 시대와 지역을 배경으로 기획된 전시 안에서 차별점을 준 본 공간이었다. 격동의 나폴리를 살아가며 그 시대에 대해 작가가 가졌던 마음을 하나의 기록처럼 그림에 담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역시 전시에서 앞서 이탈리아의 역사를 설명한 파트가 있었기에 더 공감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실내 및 실외 풍경화를 중심으로 한 두 번째 전시 파트에서는 다음과 같이 화가 도메니코 모렐리의 말을 인용한다.
풍경이 아니라, 인물과 사물을 그리는 것. 상상된 것이면서도 동시에 진실한 것
풍경은 객관적일 수 있지만, 이를 화가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화폭에 담는 순간부터 그 풍경은 그의 상상을 통해 재해석된 대상이다. 눈앞에 보이는 인물과 사물을 넘어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관계까지도 담아낸 그림은 더 이상 사실(fact)일 수는 없지만 더없이 진실(true)하다.
화가 주세페 데 니티스의 말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인용되었다. 그는 자신이 그린 것이 "공기와 하늘의 모든 비밀, 그 속 깊은 본질"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은 풍경화에서 중요한 것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의 묘사가 아니라 그 시간과 공간의 분위기마저 살려내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전시에서 인용된 말은 관람객에게 풍경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어서 전시되는 다양한 풍경화를 그 안의 사람, 사물, 작가의 시선까지 풍부하게 고려하며 관람할 때, 관람객들은 나폴리를 더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다. 생생한 대기감과 밝은 색채가 돋보이는 풍경화에서, 해변의 밧줄공이나 바닷가의 아이들 같은 일상적 장면을 그린 회화까지 나폴리를 직접 거닐고 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을 선사한다. "나폴리를 거닐다"라는 전시의 부제가 실감 나는 대목이다.
본격적으로 나폴리의 풍경을 담은 전시 공간에서 하나 더 눈에 띄는 것은 전시장의 색채다. 이탈리아 남부를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눈부신 레몬과 햇살의 색을 그대로 담아낸 벽의 색상은 나폴리라는 공간에 관객이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전시장의 마지막 섹션에서 과거 나폴리의 사진까지 감상하고 나면, 좋은 전시를 보았다는 충만함과 함께 19세기의 나폴리를 직접 여행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특정한 사조와 작가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나폴리라는 지역에 집중하여 그 안에서의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색다른 '서사형' 전시였기에 더 흥미로운 전시였다. 전시장의 색감은 물론 공간의 연출까지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곳곳에 신경을 썼음이 느껴지는 정성스러운 공간이기도 했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 11월 30일까지 진행되는 본 전시를 통해, 서울 한복판에서 나폴리를 거니는 귀중한 경험을 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