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은 언제나 새로움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19세기 나폴리는 그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낭만의 도시였다. 군주제에서 이탈리아 통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기,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계급과 성별 등 전통적 가치관이 흔들리던 과도기. 이러한 격동의 흐름은 예술가들에게 끝없는 영감이 되었다.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Vedi Napoli e poi muori).”
18세기부터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회자된 이 문장은, 나폴리가 얼마나 찬사와 경탄의 대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나폴리의 낭만과 정서가 19세기 회화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조망한다. 마이아트뮤지엄과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이 협력하여, 아시아 최초로 선보이는 19세기 회화 컬렉션을 통해 남부 이탈리아가 겪은 사회적 변화와 시대의 삶을 담아냈다.
전시 ‘공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섹션을 색으로 구분한 기획이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귀족 여성 섹션은 고풍스러운 붉은색, 서민 여성 섹션은 담백한 회색, 이후 이어지는 지중해 섹션은 쨍한 햇살처럼 노란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각각의 색채는 작품과 섹션의 성격을 반영하며, 한 공간 안에서 전혀 다른 전시를 여러 차례 경험하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여인이여, 끝없이 아름다운 신비여!

19세기 나폴리의 사회적 변화는 무엇보다 여인의 초상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전통적 귀족 여성의 단아하고 정제된 모습은 점차 새로운 여성상에 자리를 내주었다.
살롱 문화를 주도하며 사회 전면에 등장한 신여성은 더욱 대담하고 당당한 표정과 자세로 캔버스를 채웠다.

특히 서민 여성의 초상이 주는 인상은 강렬했다.
<회색 옷을 입은 여성의 초상> 속 여인은 힘을 푼 채 의자에 기대어 무심하게 곁눈질한다. 관람자를 의식하는 듯한 시선과 정교한 붓질로 표현된 옷결은, 익숙한 초상화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세련미를 보여준다.

또한 <가엾은 사포>는 고대 그리스 여성 시인 사포의 비극적 삶을 극적으로 재현한다.
그녀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감정과 목소리를 노래했던 혁신적 인물이었다. 작품 속 사포의 모습은 단순한 신화적 장면을 넘어, ‘여성을 매개로 한 인간의 실존적 순간’을 포착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관찰자를 명확하게 바라보며 웃음을 드러내거나 당당히 응시하는 여인들의 얼굴, 혹은 전통적 형식에 머문 초상들까지. 이 다양한 여성상들은 성별과 계급이라는 오래된 틀이 흔들리며, 새로운 가능성이 등장했음을 상징한다.
예술가들이 갈망한 ‘새로움’은 바로 이 변화 속에서 싹텄다.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도시, 나폴리
나폴리는 예로부터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도시’로 불렸다. 그 이유는 단연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서의 활기에 있다.
전시장 속 풍경화들은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빈첸초 카프릴레의 <해변에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모래에 앉은 여인, 익살스럽게 다가오는 남성의 모습은 정적인 풍경에 유머와 생기를 불어넣는다.
다른 작품에서는 나폴리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노동자의 땀방울과 밧줄, 그 뒤로 우뚝 선 ‘베수비오 화산’. 폼페이를 단숨에 삼켜버린 이 화산은 자연이 지닌 파괴와 아름다움의 양가성을 동시에 환기시켰다.
낭만의 도시 나폴리
‘나폴리를 거닐다’는 단순히 한 도시의 풍경을 기록하는 전시가 아니라, 예술가들의 시선 속에서 이상향으로 승화된 나폴리를 경험하게 한다.
나폴리는 오랫동안 예술가들에게 낭만의 도시로 불렸다. 이는 단지 햇살과 바다의 빛깔 때문만이 아니라, 삶과 풍경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림 속 여인들은 고유한 생동감을 품고 있으며, 그들의 모습은 나폴리 사람들의 일상과 정서를 진솔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나폴리의 풍경과 인물은 재현을 넘어 진실성을 획득한다. 예술가들은 나폴리를 이상향으로 바라보았고,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낭만적 삶의 가능성을 포착했다.
이번 전시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관람자가 마치 그 시대를 거닐 듯 나폴리의 공기와 정서를 직접 호흡하도록 이끈다.
나폴리를 담은 작품을 향유하는 순간, 우리는 단지 과거의 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과 존재의 진실에 닿게 된다.
이탈리아의 국보급 원화를 만나볼 수 있는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19세기 컬렉션: 나폴리를 거닐다] 전시는 2025년 11월 30일까지 개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