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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현대미술은 어쩌다 '이상하다' 혹은 '나도 하겠다 싶을 정도로 쉽다'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일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미술을 좋아한다고 자부했지만, 늘 서양 거장들의 미술 위주로 감상하며, 현대미술은 은연중에 피해 왔었던 듯하다. 그 이유로는 가끔씩 학교에서, 미디어에서 접했던 현대미술은 늘 이해하기 힘들었고 과하게 현학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무언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마냥 그를 '싫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현대미술을 제대로 감상해 보기로 했다.

 

 

 

추상미술 VS 개념미술


 

본격적으로 전시에서 본 것을 말하기 전에, 현대미술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현대미술'은 너무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는 시대적 범주이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세부적으로 이들을 나누어볼 필요가 있다. 현대미술은 크게 추상미술과 개념미술로 양분화해 볼 수 있다. 이 둘은 완전히 배타적이지는 않으며, 둘을 중첩해 놓은 작품들도 다수 존재하지만, 이 구분 자체는 현대미술을 이해하기에 아주 용이하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추상미술은 '보는' 성격이 강하고 개념미술은 '생각하는' 측면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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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칸딘스키 - 「On White II」 (1923)

 

 

예를 들어 대표적 추상미술인 칸딘스키의 「On White II」를 보면, 기하학적 형태의 비구상 추상 미술의 형태를 띠는데, 구체적 대상을 배제하고 기본적인 조형 요소인 점·선·색·형태 등을 통해 화면을 구성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작품 자체의 기법이 실험적이어졌다고 해도, '작품에 표현된 것을 시각적으로 바라본다'라는 기존의 감상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개념미술로 오는 순간, 이 기본적인 감상법의 틀이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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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 「샘」 (1917)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모두 익히 알고 있는 마르셀 뒤샹의 「샘」이다.

 

이 작품은 더 이상 회화가 아니다. '감상'을 하기에는 아름답지 않으며 표현적이지도 않다. 뒤샹이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인 '예술 평단의 권위에 대한 도전·예술의 미학적 판단 기준에 대한 도전'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예술이 바로 '개념 예술'이다. 작품의 물질적인 형태보다, 그 자체의 '아이디어'를 예술로 보는 것.

 

그런데 미술이란 것이 원체 '바라보는' 것 아니었던가? 감상을 요하지 않고 생각을 요하는 예술이라는 것은 여전히 대중들에게는 어색하기만 하다.

 

물론 뒤샹의 샘은 이것 또한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그러한 논의를 불러오는 것 자체를 예술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상당히 전위적이고 기념비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훌륭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감상하러 박물관· 미술관을 찾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심리적 장벽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이렇게 정리를 해보니 확실해진 점이 하나 있었다. 어려웠던 것은 '현대미술' 자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지니고, 국립현대미술관의 [MMCA 상설전 :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를 감상하러 방문하였다.


본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모든 작품들이 모두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었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흐름과 다양한 양식의 작품들을 보니 이전까지 내가 해왔던 미술 감상이 참 편협되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추상 미술이 전시되어 있는 섹션이 가장 좋았는데, 이우환의 「선으로부터」가 특히나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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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 선으로부터」 (1974)

 

 

선으로부터를 감상하면서 처음에 든 생각은 '압도감이 어마어마하다'라는 것이었다.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려내지 않았고, 특정 대상을 재현하는 형태도 아니다. 아주 간단한 조형 요소를 이용해 그려진 그림이었으나, 그 거대한 간단함에서 오는 흡인력이 있었다. 마치 미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전통적인 미술을 바라볼 때 관람객은 수동적인 관찰자에서 그친다. 대단한 화가의 대단한 그림, 그 수많은 정교함과 디테일을 소화해 내려 애쓴다. 그러나 추상미술에서의 관람객은 조형미 자체를 순간적으로 체험하는 동시에, 그림이 전달하는 본질적임으로 빠져들어 간다. 여기서 '본질적임'이란, 철학적 개념을 그림으로 표현함을 의미한다.

 

「선으로부터」는 그중에서도 도가의 철학을 표현한 것으로,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우환 화가는 "존재한다는 것은 점(點)이요, 산다는 것은 선(線)이다."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이는 작품 윗부분의 진한 선에서부터, 점점 희미해지는 아랫부분의 선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붓의 터치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 가능하게 한다.

 

존재에 대한 탐구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선으로부터」는 개념 미술적 성격을 띤 추상 미술이라고 볼 수 있기에, 이 작품을 통해서 추상 미술과 개념 미술 둘 모두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감상할 수 있게끔 한 단계 도약한 기분이었다.

 

 

 

'현대'사회 속 예술


 

디지털 미디어가 발전한 현대사회에서 왜 우리는 핸드폰 디스플레이를 통해서가 아닌, 작가의 실제 원화를 감상해야 하는 것일까?

 

이는 작가의 생명력이 보이는 실제 원화만이 주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명력이 깃든 원화를 늘어뜨려 전시하는 공간인 박물관·미술관은 그저 소장품을 선보이는 장소가 아니라, 바깥세상과는 뚜렷이 구분되어 관람객들에게 원초적인 감동과 본질적인 탐구를 유발하는 장소로서 기능할 필요가 있다.

 

왜 현대미술이 이전의 미술들과는 달리 한눈에 미학적으로 아름답지 않은가에 관하여 묻는다면, 그 답은 현대 사회의 모습에 있다고 답하고 싶다. 너무나 많은 소음에 둘러싸여 진정한 본인에 대해 잊으며 휩쓸리듯 살아가는 사회에는 철학적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논란의 작품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들이 제기하는 문제의식 혹은 본질적 질문들은 지친 현대인을 잠시나마 멈춰 세울 수 있다.

 

그저 아름다운 그림을 슥- 훑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전위적인 예술의 '어려움'이 불러오는 주동적인 사유의 장으로서 기능하는 전시실이야말로 진정으로 미술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은 대한민국 서울의 혼란한 현대인들에게 분명한 휴식처가 되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한국현대미술이 그려온 자취를 통해, 그들이 내미는 질문들에 대답하려 애써가며 자신 안의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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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모순이다. 그를 담아내는 것이 곧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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