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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생각과 가르침을 전하며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그림은 그들의 삶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하나의 시간 여행 수단이다. 회화 전시를 보러 간다고 하면, 아직도 몇몇 사람은 '사실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솔직히 말해 회화 전시는 여전히 쉽지 않다. 전시를 많이 보고 접해도 문득 그림 앞에서 막막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전시장을 찾는 이유는, 그림 속에서 그 시대 사람들을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은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과거의 나폴리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기까지 나폴리는 정치적, 사회적 전환의 중심지였다. 그래서일까, 이번 전시는 19세기 이탈리아의 다채로운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전시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뉘는데, 하나는 회화 속 여성의 형상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었고, 또 다른 하나는 귀족과 서민의 실내 생활, 그리고 풍경화를 통해 남부 이탈리아의 일상을 전했다.


 

괴테가 찬탄했던 나폴리는 더 이상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지 않지만, 이번 전시가 그 감흥의 한 조각을 다시금 마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전시서문

 



그림으로 마주한 이탈리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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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가 흥미로웠던 건 여러 계급의 여성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전체 구도와 옷차림에서 당시 이탈리아 여성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 사보이아의 초상>은 1832년부터 양시칠리아 왕국의 왕비를 그린 작품이다. 화려한 장신구를 통해 당시 귀족 복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귀족 여성의 우아함과 권위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반대로 <농민여성>이라는 작품에서의 여성의 모습은 눈빛이 뚜렷해 화가를 똑바로 바라보는 듯한 당당함이 느껴진다. 장신구를 착용했지만 왕비 초상과 비교하면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 계급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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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라는 작품에서는 한 여성이 종이를 들고,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 들은 여성을 그린 이 작품은, 당시 이탈리아 통일이라는 시대적 이상을 반영했다. 말린 어깨와 구부정한 목, 전체적으로 쳐진 몸으로 밖을 바라보는 여성의 모습은 그 시대의 비극적인 상황을 그대로 담아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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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를 달아보는 소녀>는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하얀 옷을 입은 앳된 소녀는 귀걸이를 걸고 있지만, 마치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표정과 몸짓을 보여준다. 화려한 배경이나 장신구가 없음에도, 그녀의 은근한 허영심과 우아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림 밖의 관람객까지 의식하는 듯한 미묘한 시선과 모습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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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에서는 조아키노 토마의 작품을 조명한다. 조아키노 토마는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참여한 작가로, 그의 그림에는 다소 어두운 톤이 느껴진다. <쌍둥이>와 <죽어가는 아들>은 아이들을 향한 따듯한 시선과 감정 묘사가 돋보인다. <쌍둥이>에서는 해맑은 남매의 표정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애정을 보여주지만, <죽어가는 아들>에서는 아이를 감싼 어두운 분위기와 아이의 표정을 통해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고스란히 전한다.


전시 후반부는 광활한 지중해 풍경을 담은 작품들로 이어졌다. 전시장 벽면도 노란색으로 꾸며져, 앞서 본 조아키노 토마의 다소 어두운 작품들과 확연히 대비되어 작품들이 보다 밝고 생기 있게 느껴졌다. 푸른 바다와 햇살, 이국적인 풍경은 마치 그림 속에 들어가 직접 걷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한참을 작품 앞에서 서성이며 감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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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지중해 파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배와 거리의 아이들>이다. 푸른 바다와 하늘이 경계 없이 이어지고, 정박한 배 앞에서 모래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경험을 넘어, 19세기 이탈리아의 삶과 시대적 풍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여성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계급과 시대상, 조아키노 토마 작품 속 가장의 사랑과 고통, 그리고 광활한 지중해 풍경까지. 그림 속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 시대 사람들과 조우하는 경험이 인상적이었다. 전시를 전부 관람하고 나니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말이 왜 존재하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19세기 이탈리아의 모습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을 추천한다. 11월 30일까지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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