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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리 감독의 신작, ‘내 말 좀 들어줘’의 시사회에 다녀왔다. 사실 이전에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어서 100%의 해석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만족스럽게 감상했다. 개인적으로 올해 본 영화 중에 손에 꼽게 좋았다.


간단한 줄거리를 설명해 보면, 주인공 팬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트러블이 생기는데, 그런 그녀를 유일하게 보듬는 사람은 여동생 샨텔뿐이다. 남편과 아들은 귀를 닫은 듯 그저 무심할 뿐이다. 어머니의 날을 맞아 팬지와 샨텔의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 팬지가 무슨 말을 할지 조마조마하던 가족은 그녀의 뜻밖의 반응에 당황한다.


영화 초반부터 사실적인 연출과 정제된 화면 톤이 돋보였다. 불필요한 영화적 장치를 잘 드러내지 않아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을 따라가며 일상을 엿보는 느낌을 주었다. 음악 또한 플룻이나 클래식 현악기만을 사용해서 단순한 선율을 연주하거나 그마저도 없는 부분이 많아서, 영화 전체적으로 굉장히 사실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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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인물이다. 마이크 리 감독은 캐릭터 연구의 장인이라고도 불리며,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탐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라고 한다. ‘내 말 좀 들어줘’의 주인공인 팬지는 주변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인간군상이다. 말을 걸기만 하면 매사에 짜증 내고 부딪히는 사람, 스스로 내는 짜증 속에 갇혀서 결국 자기 자신도 힘들어지는 사람 말이다. 어디에나 꼭 있는 유형이지만 이렇게 집중 조명해 볼 생각은 못 했는데,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니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물어버려서, 영화 중반부쯤 가서는 그녀가 타인과 대화를 시작하기만 해도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안타깝긴 했지만 허구한 날 싸우니까 웃겼는데, 이런 이유로 웃음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어이없어서 더 웃겼다.


어머니의 5주기를 맞아 팬지와 샨텔이 어머니 무덤을 찾는 시퀀스에서부터 팬지의 변화가 시작된다. 여기서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가 생각났는데, 해당 프로그램의 많은 의뢰인들처럼 팬지도 실은 어린 시절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난 서러움과 열등한 생각들이 기반이 되어 현재까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 번 터진 눈물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연약한 생각을 건드렸고, 그녀는 힘들어하는 상태로 어머니의 날 기념 가족 모임에 참석한다. 이 부분에서 화면 한가운데 있는 팬지에 중심을 고정하여 표현한 연출이 인상 깊었는데, 군중 속의 고독이 시각적으로 아주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팬지는 다툼만 일으키던 과거에서 한 발짝 나아가 세상과 자신을 살펴볼 여유를 찾게 된다.


팬지 역, 마리안 장 밥티스트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이미 이 영화로 유수의 비평가협회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쓴 이력이 있어 기대되었는데, 역시나 이에 걸맞은 좋은 연기였다. 사실적인 연출이 강조된 영화였던 만큼 배우의 역량이 전체적인 완성도를 올리는 데에 굉장히 중요했는데, 그녀가 표현한 팬지는 겉으로는 늘 문제만 일으키지만, 그 속에 타인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공감하고 싶다는 바람이 아주 잘 느껴졌다. 특히 처음으로 웃음을 보인 후 곧이어 우는 장면은 정서적 절정을 보여 주었고, 숨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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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지의 가족들처럼, 주변에서 기다려주고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가 인생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종반부의 결론이었다. 안정적인 성향으로 언니를 돌봐주는 동생 샨텔, 평소에는 무뚝뚝하지만 결국 엄마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모지스와 같이, 주변인의 사랑이 있기에 각자의 힘듦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매사에 짜증 내는 태도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늘 그런 사람들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나도 같이 화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따뜻하게 대해주려고 해왔었다. 영화 후반부를 통해 그들이 실제로 연약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더 기다려준다면 그들도 행복해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열린 결말로 남은 남편과의 관계는 아직도 아리송하다. 가족 중 유일하게 본인이 선택한 남편이라는 사람과의 관계는 팬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두 사람이 앞으로도 함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는지는 영화에서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각자의 의견으로 미뤄둔 것이 감독의 의도로 보였기에, 영화가 끝나고 동행과 이에 대해 토론해 봐도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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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 1에 불과했던 인간 유형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아픔과 이야기에 온전히 귀 기울이게 한 영화였다. 이를 풀어낸 방식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꽤나 밀도 있었다. 사실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건 ‘Hard truths’라는 원제다. 모두가,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만 정작 마주하기는 쓰라리고 불편한 진실 말이다. 결국 그 진실은, 늘 싸우고 부딪히는 사람조차 사실은 사랑받고 싶고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경계 속에서 가시 돋친 말들로 서로를 찌르기만 한다. 그 속에서 누가 행복할 수 있을까? 진심을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 한 박자씩만 더 기다려줄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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