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미로처럼 놓인 밧줄이 있다. 그 사이에는 엎드린 반라의 몸이 놓여 있다. 관객의 입장 전부터 놓여 있던 몸은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된 후에도 한참을 가만히 있는다.
그때 2층 통로에서는 사운드 퍼포머가 등장한다. 그가 퍼트리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무대에 놓인 몸과 공간에 퍼지는 소리 간의 대치 상태에서 관객은 약간의 긴장감을 누린다.
곧이어 사운드는 사라지고, 몸은 서서히 일어나 사족보행으로 밧줄 미로 사이를 나아간다. 미로 같은 밧줄들 사이에 몸을 맞추며 무대 경계를 위태롭게 이동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놓인 틀, 즉 정해진 ‘기표’에 몸으로 말미암아 표현되는 ‘기의’를 결합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이어서 몸은 밧줄에 매달린 채로 그것과의 상호작용을 수행하고자 한다. 밧줄을 당긴 채 몸을 완전히 맡기고 그 긴장을 버텨내거나, 밧줄을 붙잡고 또 다시 놓치며 바닥에 몸을 힘껏 부딪힌다. 틀 안에서 몸을 움직일 때에는 어떻게든 끼워 맞출 수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틀의 질서에 기대기 시작하자 몸은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밧줄과 몸 사이,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끝없는 균열이 생겨난다.
신체가 정지하는 순간, 사운드는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이 공연에서 사운드와 움직임은 여타 무용 공연처럼 조화되지 않는다. 둘은 끝도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나란히 있지만 결코 만나지 않는다.
서로를 설명하거나 보완하는 대신, 각자의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작동하며 무용의 ‘조화’라는 규칙을 의도적으로 깨뜨린다. 이는 무대 위 몸이 반드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는 전제를 전복시키는 시도이기도 하다.
[Trans III: 주어 없는 움직임]은 ‘주어가 없는 몸’을 상정한다. 의미를 부여받지 않은 몸, 상징의 틀에서 벗어난 몸, 그리고 스스로의 움직임마저 무용(無用)해지는 몸. 그 상황에서 몸의 주체는 누구인지 질문한다. 우리의 몸은 누군가에 의해 말해진 (혹은 이미 그렇게 정해진) 정의에 갇혀 있진 않을까? 우리의 신체와 움직임은 전부 스스로의 주체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 맞을까?
이 질문은 서둘러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공연은 매우 느린 호흡으로, 그러나 날카롭게 관객의 인식을 흔든다. 무대 위에서 주어 없는 움직임의 주어를 찾아가는 과정은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이 공연이 어떠한 이야기 구조나 감정의 기승전결을 제시할 것이라 기대하면 안 된다. 대신, 밧줄의 질감, 사운드의 진동, 몸의 무게와 미끄러짐 같은 물리적 감각이 전면에 배치된다. 그 결과 관객은 공연을 해석하려 애쓰기보다, 자기 안에 남는 잔향과 여운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의미가 불분명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감각과 질문들이 바로 이 작품이 남긴 가장 강렬한 인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