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식과 의심과 비평과 혼란의 출발점이 될 '데미안'
"가르치는 대로만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역시 다르게 볼 수가 있고, 거기에 관해 비평할 수 있다."
데미안, 언젠가 한 번은 도전하고자 했던 책이다. 내가 읽은 책은 전혜린이 번역한 데미안의 복원본이다. 최초의 유학파 한국 여성 독문학자인 전혜린, 타계 60주기를 맞아 다시 찾아온 책이라 한다. 처음 글을 읽었을 땐 역시나 책이 어렵다는 주변 말처럼, 나에게도 쉽게 다가오진 않았다. 다만 데미안은 사유와 비평에 관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작중에서, 마치 독심술을 하듯이 사람 심리를 읽어내는 데미안에게, 싱클레어는 이렇게 묻는다.
"너는 정말로 네가 원하는 바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 수 있니?"
그러자 데미안은 이렇게 답한다.
"아니. 그런 일은 할 수 없어. 비록 신부님이 그렇다고 하지만 사람은 자유의지를 갖지 못했어. 그러나 어떤 사람을 잘 관찰할 수는 있을 거야. 그러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를 제법 자세하게 말할 수 있지."
해당 구절을 통해, 난 주의력과 의지를 하나의 일정한 대상에 향해봄으로써, 대상을 이해할 수 있음을 밝힌다. 쉽게 말해 관찰이 이해의 열쇠다. 나를 완성하고, 나의 길을 발견하는 것은 나 자신의 일이다. 나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선, 나를 둘러싼 세계에 관해 관찰해야한다. 세계에서 시작된 관찰이 나의 내면으로 향하면서 응축된다. 데미안은 소년 싱클레어가 ‘껍질’ 속의 안온함을 떠나, 낯설고도 불길한 빛을 향해 걸어 나가는 성장의 기록이다.
알을 깨라. 화폐 가치를 훼손하라.
데미안에 관해 우리가 흔히 아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작품 속 ‘알’의 이미지는, 우리가 속한 익숙한 세계, 평온한 세상이 만들어낸 안전한 껍질이자 동시에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이 껍질을 깨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혼란스럽지만, 껍질을 깨는 행위 없이는 새로운 세계, 나 자신을 알 수 없는 거 같다. 책에선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절대적 기준점에서 벗어나, 새로이 결합하는 독창적인 정신에 관해 다룬다. 이런 해석은 선과 악, 빛과 어둠,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부순다. ‘껍질을 깨는 것’이란 바로 이런 절대적 경계선을 허무는 일이다.
이 정신은 고대 철학자 크라테스가 말한 “화폐 가치를 훼손하라”는 명제와도 맞닿아 있다. 여기서 ‘화폐’는 단순한 경제적 가치를 넘어, 사회가 공통으로 인정하는 질서와 기준을 뜻한다. 크라테스는 그 질서가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속박할 때, 과감히 그 가치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한다. 싱클레어가 기존 세계의 ‘정상적인 것’, ‘선하고 안온한 것’을 의심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행위는 바로 이 ‘가치 훼손’의 실천이지 않을까. 가치 훼손은 무질서로의 추락이 아니라, 더 깊고 넓은 진실로 향하는 여정이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의 극이 아니라, 그 경계와 충돌 속에서 드러난다. 자신 안의 ‘밝음’과 ‘어둠’을 모두 인정하고, 그것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로운 자신이 탄생되지 않을까. 빛과 어둠은 서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한 존재의 양면이다.
'아브락사스'는 빛과 어둠, 신성과 악마성을 모두 포괄하는 신이다. 그는 이분법을 넘어, 인간 존재의 총체성을 상징한다. 아브락사스의 철학적 의미는 명확하다.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은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빛과 그림자 중 한 쪽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내 안에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 악의 상징성
소설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데미안이 전하는 바로 '카인과 아벨 이야기'다. 성서에서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죄인’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데미안은 이 이야기를 다르게 해석한다. 그는 카인이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태어난 자였다고 말한다. 그의 이마에 새겨진 표식은 신의 저주가 아니라, ‘다른 세계’를 본 자의 징표였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낯섦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카인을 추방하고, 악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마에 특별한 표식을 가진 자’는 즉 약자들이 쉽게 순응하는 세계에서 이질적이고, 기존의 질서에 굴복하지 않는 자다. 이에 반해 아벨은 기존 질서와 관습을 상징한다. 카인은 배척당하고, 그 배척 속에서 자기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부여받는다. ‘카인의 표식’은 죄의 낙인이자 동시에 자유의 증표다.
당신이 지금 믿고 있는 가치, 선하다고 여기는 것, 나쁘다고 단정한 것은 과연 절대적인가? 혹시 그것은 단지 ‘화폐’처럼 사회가 찍어낸 공통의 상징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껍질을 깨는 순간, 우리가 직면하는 새로운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