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뮤지컬의 열풍이 불고 있다. 오디 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만든 '위대한 개츠비'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라는 거대한 공연 산업계에서 한국인 프로듀서가 만든 창작 뮤지컬이 성공을 거뒀다는 것은 충분히 자랑스러워 할 부분이다. 물론, 전통적인 한국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아니라서 아쉬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 프로듀서의 국제 무대 진출 및 성공만으로도 나는 K-뮤지컬의 국제적인 입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우선 서양인들에게 문화적으로 익숙한 작품을 통해 프로듀서로서 인정을 받는다면, 그 이후에는 훨씬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에서 박천휴 작가가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매진 행렬을 기록한 것처럼, 신춘수 대표 또한 '위대한 개츠비'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시대이다. 이렇듯 국제 무대 속 한국 창작 뮤지컬 관련해서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오니 마음이 뿌듯하다. 이 글에서는 '위대한 개츠비'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내한 프리뷰 공연의 감상평을 적어보려 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잘 드러낸 작품
1922년, 경제 호황 속에서 도시 전체가 향략에 취해있던 재즈 시대. 화려한 도시 뉴욕에 중서부 출신의 순수한 청년, 닉 캐러웨이가 발을 들인다.
어느날, 닉은 백만장자 제이 개츠비가 보낸 초대장을 받는다. 웨스트에그의 저택에서 매일 밤 열리는 황홀하고도 사치스러운 파티! 그러나 닉은 초대를 뒤로하고 사촌 데이지 뷰캐넌의 집을 찾는다.
데이지의 절친한 친구 조던 베이커는 자유롭고 당당한 모습으로 눈길을 끌고,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은 권위적이고 오만한 태도로 부를 과시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데이지의 공허한 눈빛, 화려함 이면에 감쳐진 외로움.
닉은 결국 조던의 손에 이끌려 개츠비의 호화로운 파티에 참여하게 된다. 온갖 소문과 추측이 가득한 밤, 은밀한 초대를 받고 개츠비의 개인 서재로 향하는 닉.
"그녀를 다시 만나게 해줘. 난 오직 그녀만을 기다려왔어." 개츠비의 간절한 청을 외면하려 하지만, 뜻밖의 진실이 그를 흔든다.
데이지를 위해 모든 것을 건 남자, 그리고 그를 둘러싼 비밀. 위대한 파티를 가장한 위대한 비극이 시작된다.
'위대한 개츠비'는 많은 이들이 아는 미국 고전 문학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영화로도 많이들 알고 있을텐데, 그가 잔을 들고 호화로운 파티를 여는 장면은 굉장히 유명하다. 그만큼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특히 미국 교과서에 실릴만큼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을 잘 나타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사랑 이야기 정도로 이 작품을 단순하게 해석할 순 없다. 그 이면에 숨은 미국 역사와, 시대상, 그리고 가치관이 그 무엇보다 잘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 미국이다. 이 때 당시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 즉 이상적인 미국 사회를 꿈 꾸는 현상이 이 작품에서 비판적으로 다뤄진 다. 아메리칸 드림'은 누구나 부를 얻을 수 있고, 명예를 얻을 수 있고, 계급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준다. 그러나, 개츠비가 추구했던 그 소망은 이뤄지지 못 했다.
개츠비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여 사회적 성공을 얻은 인물이다. 그는 데이지라는 여성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호화로운 파티를 열지만, 잠깐 마음을 얻은 것도 잠시 결과적으로는 그녀를 얻지 못 한다. 심지어 개츠비가 죽고난 후, 장례식장에는 북적거렸던 파티와 대비되며 아무도 찾질 않는다. 심지어 데이지조차도. 이를 통해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이 결국에는 허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
관객을 압도하는 화려함 - 이 공연은 2024 토니 어워즈 '의상상'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화려한 의상과 비주얼이 눈에 띄었다. 위대한 개츠비의 파티에 와 있는 것 같이, 호화로운 쇼를 즐길 수 있는 느낌이었다. 무대에 멋진 자동차를 몰고 등장하는 장면도 있다. 또한, 1부와 2부에 한 번씩은 화려한 넘버가 나온다. 탭댄스를 추거나,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등 눈과 귀가 동시에 즐거웠다. 특히 유명한 'New money' 넘버는 귀에 익숙해진 채로 가서 그런지, 더욱 신났다. 1920년대가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재즈 시대'였기 때문에, 2부에는 소울풀한 재즈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초록 불빛으로 무대의 일부분이 되다 - 이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개츠비에게 녹색 불빛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 줄 알 수 있다. 개츠비가 선착장에서 바라 본 데이지 집의 녹색 불빛이 지속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한 인간의 순수한 열망과 사랑을 상징하는 매개물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한 작품 속 중요한 의미를 담아, 관객들에게 초록 불빛을 하나씩 증정했다. 그래서 커튼콜 때 함께 개츠비에게 초록 불빛을 비춰주는 이벤트를 했는데, 작품과 연관성이 있는 참여형 이벤트여서 흥미로웠던 것 같다.
웃음 지어지는 개츠비의 순애 - 사랑 이야기는 누구나 좋아한다. 그것이 순애라면 더욱 더. 이 작품에서 개츠비는 데이지를 굉장히 오랫동안 사랑했다. 오직 그녀만을 위해 파티를 여러번 열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모습 등이 작품 속에서 많이 비춰진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웃었던 장면은, 개츠비가 사랑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다. 만국 공통으로 누군가 사랑에 빠진 모습, 그 속에서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귀엽고 흐뭇해지는 장면이다. 물론,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를 보며 '순애'와 '집착'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기도 했다.
자막 위치의 아쉬움 - 내한 공연을 볼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인데, 자막 위치의 문제이다. 많은 내한 공연들이 자막을 제공하는데, 사실 자막을 보다보면 무대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GS 아트센터 극장에서는 총 4개의 자막 모니터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내가 관람한 3층 C열 1열에서는 모든 자막이 온전히 보이진 않았다. 예전 한 연극 무대에서는 가운데 위쪽에 자막을 달아서 굉장히 보기가 편했던 기억이 있는데, 가능하다면 많은 내한 공연들이 이런 것도 고려해줬으면 좋겠다. 나만이 불만을 토로한 것이 아니라, 당시 봤던 옆 관객분들도 자막을 보기가 어려웠다고 말한 것을 보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물론, 런던 웨스트엔드까지 가서 자막 없이 볼 바에는 한국에서 자막으로 편히 이해하면서 봤다고 생각하면 괜찮다. 또한 GS 아트센터 자체가 3층으로 올라가려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이 불편했다.
K-뮤지컬의 확산을 기대하며
한국인 프로듀서가 미국인의 문화와 감정을 건드린 게 신기하다. 우리 나라로 치면, '심청전'을 외국인이 프로듀싱 해서 흥행을 거둔 것이 아닐까? 혹은 '응답하라 1988'을 뮤지컬로 만든 느낌이 아닐까? 특정 문화권에 깊숙이 박혀있는 가치관을 건들고, 그것으로 그 문화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위대한 개츠비를 하나의 소재로 삼은 선택도 대단하다. 그걸로 하나의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낸 것은 더더욱 대단하고 말이다. 작품을 제작할 때 신춘수 프로듀서는 논문도 정말 많이 읽었다고 들었다. 그러한 촘촘한 자료 조사가 흥행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MD를 구경하고 있는데, 외국 배우 분들이 감상하시며 '와우, 크레이지! 어메이징!' 을 연발하는 걸 보고, 약간 한국인으로서 뿌듯함이 차올랐다. 아무래도 서양권 뮤지컬 굿즈들은 시각적으로 예쁘지 않기 때문에, 한국 굿즈에 놀라는 것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 분야애서의 K-뮤지컬의 발전과 특색이, 전반적으로 국제 무대에 한류가 퍼질 수 있게 하는 주역들이 아닐까 싶다. 확실히 세계 무대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