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이번 시간에는 오랜만에 그림책을 나눠 읽었다. 사실 그림책은 어릴 적 추억의 영역이었는데, 매 시간 그림책을 엿보고 엿듣다 보니 점점 애정하게 되는 것 같다.


전미화의 『어쩌면 그건』은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절제된 그림으로, 말로 다 전하지 못한 감정의 여운을 조용히 남긴다. 담백한 구성이 정말 돋보였다.

 

이날 본 작품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이진희의 『도토리 시간』이었다. 귀여운 작화와 그림 속의 그림으로 들어가면서 느껴지는 시간의 지연으로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세로로 펼치는 독특한 구성 역시 이야기의 흐름과 잘 어울렸다.

 

모르간 벨렉의 『한여름의 빛』은 오직 ‘빛’에 초점을 맞추어, 색연필의 부드러운 질감으로 여름 햇살과 공기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해외 작품들은 이게 번역되었음을 감안해서 원어로는 어떤 뉘앙스였을지 상상하게 된다.

 

아라이 료지의 『아침에 창문을 열면』은 아침 풍경을 아이의 시선으로 간결하게 포착하며, '반복'의 활용을 잘 보여준다.

 

송미경 글·장선환 그림의 『나는 흐른다』는 장면마다 물이 지닌 다양한 형태와 빛을 통해, 내면의 감정을 자연 풍경에 녹여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적인 글과 함께 '이 정도의 설명'이 있으면 작품의 맥락을 이해하는 지장이 없다는 예시로,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의 설명을 곁들일지에 참고가 되었다.

 

 

20250815141509_ggudbafn.png

 

 

오늘에서야 오랜시간 고민 끝에 방향을 잡은 스케치 샘플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가장 먼저, 현재 사용한 이미지 소스를 가능하다면 직접 촬영하고, 지금처럼 드로잉 선과 혼합하는 방식을 유지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작품에 개인적인 시선이 더해지고 장면이 한층 생동감 있게 다가올 수 있다. 다만, 나로서는 주변의 소품에만 시선이 머물러 화면이 조촐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또한, 처음처럼 완전히 평면적인 그래픽 표현을 택하지 않는다면 면을 채울 때 선의 굵기와 질감을 다양하게 주어 화면에 깊이감을 만드는 방법을 제안받았다.

 

감정의 상징인 ‘조각’을 어떤 사물에 빗댈지에 대해서는, 단순한 형태에 머무르기보다 다면체나 패턴으로 변주를 주어 완성도를 높이고 싶었다. 광물 단면의 결정 구조나 색채처럼 다양한 형태를 단순화해 반영하면 ‘감정의 물성’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제안이 인상 깊어, 이 아이디어는 꼭 반영해볼 생각이다.


이번 시간 소기의 성과는 참고 자료를 다른 그림책 레퍼런스에서만 찾지 않고 시와 노래 가사에서도 발견했다는 것이다. 원고 속에서 ‘조각’이 감정을 상징한다는 점을 은유적으로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아래 두 텍스트가 생각났고, 각자 수수께끼를 낸 방식을 관찰해보았다.

 

 

공룡은 운석 충돌로 사랑했다고 추정된다

현재 사랑이 임박한 생물은 5백 종이 넘는다

우리 모두 사랑위기종을 보호합시다

 

어젯밤 우리가 멸종의 말을 속삭이는 장면

아주 조심스럽게/멸종해, 나의 멸종을 받아줘

우리가 딛고 있는 행성, 멸종의 보금자리에서

 

공룡들은 사랑했다 번식했다 그리하여 멸종했다

어린아이들은 사랑한 공룡들의 이름을 외우고

분류하고 그려내고 상상하고 그리워하고 아이들은 멸종하고

 

사랑하다

멸종하다

 

유선혜,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中

 

 

혹시 그 날 봄을 기억하니

우리 처음 맞는 봄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며칠째 혼자 설레

해가 뜰 때까지 못 잤어


I love you pretty girl

넌 아마 모를걸

지금 내 모든 건 오늘 봄에 있는 걸

조금 더 너에게 잘해보고 싶어

오늘 봄을 못 잊게 만들고 싶어


내 말은 아를오 오를아 아를오 오를아

아마 모를거야 이게 무슨 말인지

그냥 말하기엔 조금 부끄러워서

여기에 숨겨봤어

 

최낙타, 「아를오 오를아」 中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는 ‘사랑’과 ‘멸종’처럼 완전히 상반되어 보이는 단어가 문장 속에서 모두 성립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최낙타의 ‘아를오 오를아’는 모음 ‘ㅏ’와 ‘ㅗ’를 바꿔 읽었을 때 숨겨진 의미가 드러나는 방식이 흥미롭다.


두 작품 모두 제목에서부터 중의적인 의미를 푸는 힌트를 주고 있다. 나 역시 작품에서 메시지를 단박에 전달하기보다, 제목 속에 해석의 실마리를 숨기는 방법을 써야 할지 고민된다. 혹은 제목은 직관적으로 두고, 작가 노트를 통해 부연 설명을 하는 방식이 나을지도 생각해봐야겠다.

 

 

 

임지영 (1).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