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오는 9월까지, 사진전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가 삼청동 뮤지엄한미에서 열린다. 매그넘은 1947년 설립된 사진가 협동조합으로, 전시를 통해 다양한 국적의 사진가들이 남긴 흔적을 약 150개의 포토북과 함께 들여다볼 수 있었다. 또한,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재미는 사진(photo)뿐 아니라 포토북(photobook)이라는 하나의 예술 장르를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포토북은 단순한 사진의 모음집으로 치환될 수 없는, 그 자체로 독특한 문화적 오브제이다. 그 오브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작가가 내린 수많은 선택의 역사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작가의 세계에 더 강렬하게 끌어당겨져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특별함을 지닌다.
뮤지엄한미는 삼청동의 끝자락 고즈넉한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유난히 더운 날씨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간 미술관의 내부는 탁 트여 개방감을 주었고 유리 통창 너머로 언뜻 보이는 조경이 시원해 보였다. 관람 동선은 지하 1층에서부터 시작해 1층으로 올라오도록 구성되어 있었으며, 티켓의 바코드를 찍고 입장할 수 있었다. 아주 큰 규모의 전시는 아니었지만, 하나하나 둘러보는 데 꽤나 시간이 걸렸던 알찬 전시였다. 매그넘 포토스의 기념비적인 사진, 역사적 사건, 작가들의 대표작, 일상적인 장면 등 다양한 주제로 마련된 전시실을 둘러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 같다.
2. 사진과 선택
앞서 포토북이 하나의 독특한 예술 장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사진의 매력은 상상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데, 포토북은 상상의 지평을 더 넓혀 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장르라고 생각했다. 사진은 실존하는 외부 세계의 대상을 촬영한다는 점에서 추상성이 낮은 예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진 예술의 추상성은 렌즈 밖에 있다. 작가는 그 대상을 촬영하기 위한 타이밍, 장비, 구도, 배치 등을 선택하는데, 이 선택에는 필연적으로 작가의 내적인 예술 세계가 반영되어 있다. 그렇기에 드러난 것만큼이나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상상할 때 사진을 감상할 때의 재미가 극대화된다고 생각한다. 프레임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그 모든 소란 속에서 작가는 왜 하필이면 이 장면만을 보여주기로 선택했는지, 컬러인지 흑백인지, 같은 대상을 촬영한 수많은 후보 중에서도 왜 하필이면 이 사진을 골랐을지 등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친할아버지께서는 취미로 사진을 찍는 것을 아주 좋아하셨다. 종종 출사를 다녀오시면, 모니터 앞에 앉아 한참 사진을 고르고 포토샵을 하는 데 시간을 들이시곤 했다. 어린 내 눈에는 모두 비슷해 보이는 사진들을 비교하며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두 장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섬세하게 보정하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다. 이처럼 사진 하나를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서도 많은 미세 조정의 절차가 필요한데, 하나의 포토북을 만드는 과정은 그보다도 더한 선택의 기로 앞에 서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Josef Kudelka의 Gypsies
3. 지하 1층, 리딩 룸
지하 1층 전시실에는 많은 포토북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모두 투명한 끈에 묶여 내부를 볼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물론 표지 디자인이나 질감 역시 포토북을 향유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겠지만, 포토북이 하나의 세계를 담고 있다면 그 세계를 표지판밖에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아쉬웠다. 물론, 그 중 몇 개의 포토북들은 입구 쪽에 마련된 리딩 룸에서 직접 책장을 넘기며 읽어 볼 수 있었다. 리딩 룸에 있는 포토북만 해도 그 수가 매우 많았기에, 모두 하나하나 읽어 보려면 반나절은 걸릴 듯 보였고,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포토북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포토북은 Martin Parr의 Common Sense
4. 1층, 포토 월
앞선 감상들로 하여금, 1층에 올라왔을 때 즈음에는 왜 포토북이 많은 사람들이 수집하고자 하는 가치 있는 예술 장르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포토북 전시가 사진 전시보다 더 먼저 배치되어 있던 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1층에는 포토북에 있던 몇 개의 사진들을 액자에 걸어 전시한 포토 월이 있었다. 포토 북을 읽으면서 작가의 스타일과 주제의식을 파악하고 나니, 각 사진이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 추측하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큰 맥락을 알고 나서 개별 사진을 그 맥락에 위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포토북이 사진을 더 거시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왔다.
또한, 1층 전시에서 인상적이었던 다른 부분은 바로 공간 음향이다. 사진을 보는 동안, 배경에는 마치 포토북의 책장을 넘기는 듯한 '슥-, 슥-' 소리가 깔려 있었다. 백색 소음처럼 듣고 있자면 편안해졌고, 사진에 더 집중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5. 나가며
사진이라는 장르에 더욱 빠져들게 된 전시였다. 프레임 속에 보이는 것을 꼼꼼히 관찰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면서, 선택의 주체는 사진 작가 뿐 아니라 나 자신이 될 수도 있음을 다시금 느꼈다. 작가가 보여주기로 선택하듯이, 감상하는 우리 역시도 각자의 흥미와 관심사에 따라서 무엇을 더 집중해서 볼 것인지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리고 예상치 못한 재미를 발견했을 때, 내면 세계를 더욱 확장시킬 수 있게 된다.
무엇을 볼 것인가? 더운 여름, 삼청동 뮤지엄한미에서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 혹은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