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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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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에 다시 읽는 『데미안』


 

2025년 여름에 다시 마주한 북하우스의 『데미안』은 전혜린 타계 60주기를 기념하여 기획된 도서로, 1964년도의 판본을 되살린 것이다. 우선 전혜린은 독문학자임과 동시에 저명한 독일문학 번역가이다. 그리고 그가 번역한 『데미안』은 최초의 유학파 한국 여성 독문학자가 완성한 최초의 한국어 번역본이기도 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책의 끝부분인 297페이지부터는 전혜린이 작성한 작품에 대한 해석 또한 참고할 수 있다.

 

『데미안』은 독어로 쓰였고, 한국의 독자가 읽기 위해서는 번역이 필수적이다. 원문을 그대로 마주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이 과정에서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의 의미가 살아난다. 말맛을 살리는 방법부터 어떻게 최대한 오류 없이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지 번역가 자신의 고민과 판단을 거친 글을 읽게 되는 것이다. 넓게 보면 번역본에는 번역가의 삶까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떤 역본을 고르는지도 의미가 있는 행위이다. 특히나 여러 역본을 가지고 있는 『데미안』처럼 저명한 작품이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해보면, 해당 역본은 50-60년대에 독일 유학을 선택하고, 최초라는 길을 펼쳐 나간 번역가이자 독문학자로서 전혜린의 삶이 담긴 도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의미를 가지며, 빛나는 도서이기에 선택할 가치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장소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는 『데미안』이다. 유명작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읽어보게 되었다. 성장소설이라는 테마에 걸맞게 10살이던 주인공 싱클레어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갈등을 겪기도 하고,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하던 독자는 책을 덮는 순간, 그가 이뤄낸 내면의 성숙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성장소설이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 아마도 성장이란 무엇인지, 그래서 그것에서 어떤 것을 배울 수 있는지 시사하고자 할 것이다. 또한, 많은 소설이 그러하듯 극에 대한 몰입은 자연히 자신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하여, 『데미안』의 독자를 크게 둘로 구분해보면, 혹자는 10-20대 초반 사이에 읽었겠고, 그렇지 않다면 그 이후에 읽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싱클레어와 같은 성장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거나 그 성장기를 지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사람은 평생의 과정동안 내면의 성숙과 성장을 겪어 내기에 『데미안』이 말하고자 하는 ‘성장’이라는 테마가 10-20대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10-20대 초반 독자와 그렇지 않은 독자가 책을 읽고 자신을 반추하는 모습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전자와 후자의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생각한 바는 작중 싱클레어와 비슷했던 장면들을 꺼내 보며 공감을 하기도 하고,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과정이 반복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남기도 했다.

 

이처럼 어떠한 시기에 읽는지에 따라 각자만의 해석이 남게 될 것이고, 그렇기에 시기를 불문하고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 158p.

 

헤르만 헤세라는 대문호가 쓴 이 유명한 작품.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대목은 상기한 부분일 것이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온다는 강렬한 이미지는 우리의 삶 또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던 공간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가져온다. 이어서 그 껍질은 무엇이었는지, 파괴된 세계는 또 어떤 곳이었고, 나아가 신에게로 날아간다는 행위의 의미까지도 짐작해보게 된다.

 

사실 한 세계를 파괴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우선 그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인지가 필요하고, 인지를 넘어서 그 세계를 부수겠다는 의지가 더해져야 한다. 하지만 알에서만 살던 사람이 알에서 사는 것은 쉽고 편한 일이다. 그렇기에 관성적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되고, 알을 부수겠다는 의지를 발현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알을 부수어 날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꾸게 된다면 어떠한가? 비록 나서기 전까지 세계 바깥을 정확히 감각할 수는 없더라도 앞서 말한 그 가능성을 믿으면, 기꺼이 이 안락한 곳을 벗어날 만한 동기가 된다. 따라서 이 구절 자체로 희망적이고, 알을 부수어 볼 용기를 북돋아 준다.

 

 

 

상징과 이야기


 

또 다른 주목해볼 점이라고 하면, 작중에 상징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우선, 유명 구절에서 알 수 있는 ‘새’와 '알',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베아트릭스', 그리고 '카인과 아벨' 같은 여러 성경 레퍼런스이다. 이러한 상징과 레퍼런스는 그 자체로 소설의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고, 함의를 함께 독해하며 읽을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내용이 더욱 풍부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꿈'이라는 소재가 작중에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자아의 성숙을 경험하고 있는 싱클레어의 입장을 잘 대변해준다. '자아'가 변화한다는 것은 가시적인 영역의 것이 아니기에 그가 꿈속에서 여러 장면들을 목격하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변화한다는 것은 타당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상징이 적절하고, 또 풍부하게 잘 활용된 이야기이기에 독자에게 '이미지'로서도 잘 와닿고, 개연성의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다. 마치 이 이야기 전체가 '성장'이라는 대목을 그리고 있는 하나의 신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거나, 알을 깨고 나온다는 이미지를 보면 자연스럽게 『데미안』을 떠올리는 이유일 것이다.

 

『데미안』은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롭고, 그 내부에 독자의 성찰을 시사하는 부분도 있기에 큰 의미를 갖는 책이다. 따라서, 아직 읽어보지 않았거나, 새로운 역본에 관심이 있다면 북하우스의 『데미안』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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