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규칙 내지 습관을 따르지 않곤 한다. 정성 들여 스트레칭을 하거나 섬세히 분칠하는 일이 성미상 어렵다. 유행을 따라 값비싼 음식을 먹기보다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식사를 하는 쪽이 마음 편하다. 가운데 선망하면서도 쉽지 않은 규칙 하나가 더 있다고 하면 체취에 대한 것이다. 깨끗하여 악취를 풍기지만 않으면 되었지, 그 이상의 좋은 향기를 지니고 싶다는 생각은 지나가는 향기를 맡은 순간 충동처럼 일었다가 그새 잊히곤 한다.
따르지 않아 문제가 생긴 적은 없으나, 보통의 사람들은 당연하다 못해 즐기는 것이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상기하노라면 마치 주류에서 내몰린 것 같은 소외감을 느낀다. 한편으로, 보통과 다르다 못해 압도적인 능력을 갖춘 경우라면 칭송하고 우러러보기도 하겠지만 이해할 수 없음에서 기인하는 절대적인 경외심을 느끼게 될 터이다. 그러므로 평균 이상의 우월한 존재를 탄생시켜 능력을 부여할 때는 그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능력의 의미를 이해시키지 못하면, 도리어 '너무 뛰어나다 못해 완전히 돌아버린 사람'이라며 못마땅한 눈초리를 받게 될 테니까.
이런 점에서 소설 <향수>의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에게 작가가 내린 선물이 단지 뛰어난 후각이라는 것의 저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큰 걸림돌이 되었다. 더군다나 모든 것의 냄새를 맡고, 구분하고, 저장할 수 있는 그에게 체취가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냐는 것이다. 작가가 오감 가운데 가장 낯선 감각인 후각에 집중하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서술자의 말처럼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에 그칠 뿐인데 말이다. 위의 두 가지 질문에서 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선은 후각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1. 자연스럽게 인지하여, 냄새의 근원을 찾아내고, 서로 구분할 수 있음
코에 이상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냄새가 콧구멍으로 들어올 때 "무슨 냄새가 난다"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그것이 어디에서 풍기는 것인지 알 수 있으며, 나아가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구분지을 수 있다. 예컨대 아이의 코에 신선한 복숭아를 대어준다고 가정하자. 아이가 그것의 냄새를 이전에 맡아본 적이 있다면 복숭아임을 알아 반가워할 것이다. 또한 전후의 여러 후각적인 경험을 통해 그것이 수박의 냄새 또는 꽃의 냄새와는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인간이 냄새의 존재를 인식하고 무엇의 향인지 익히는 것은 누군가의 교육 또는 지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2. 소유의 불필요
어떤 대상의 냄새를 맡고 싶다면 돈을 내고 살 필요도 없고, 여건이 되지 않다며 도둑질할 필요도 없다. 냄새 맡는 일은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르누이도 시장 가판대에 놓인 곡식과 과일들, 지나는 사람들의 향수 냄새는 공짜로 맡을 수 있었다.
3. 짧은 찰나, 적당한 거리감
어떤 대상의 냄새를 맡고 싶다면, 그저 멀지 않은 거리에서 짧은 찰나 스치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화단 근처를 걸어갈 때 부러 멈춰 서지 않아도 꽃향기를 맡을 수 있고, 맛있는 수프의 냄새는 먼 거리에서도 코를 찌른다. 그르누이도 사람들 가까이 어울리지는 못하였지만, 냄새를 맡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인간은 냄새를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그 근원을 분별할 수 있으며, 부러 구매하거나 소유하지 않아도 짧은 찰나에 주변을 지나면서 냄새를 맡고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 그르누이에게는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그르누이는 자기에게 교육을 해줄 만한, 특히 후각이라는 섬세한 측면을 돌봐줄 만한 보호자를 가져본 적이 없고(1번), 노동의 대가로 자기 몫을 주장하여 얻어낸 것도 없었고(2번), 무취인 탓에 사람들의 멸시와 두려움을 받는 외톨이였기 때문이다(3번). 그럼에도 후각의 너그러운 특성 덕분에 그는 누구의 돌봄도 없이 냄새를 인지하고 익히고 구분할 수 있었다. 돈도 없고 물물교환할 값어치의 물건도 없었지만, 값비싼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대상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르누이에게 허락된 냄새란, 소설 <향수> 속 냄새는 무슨 의미인가. 바로 그 누구보다 가진 것 없이 가난하고, 지식과 사회, 주변인으로부터 소외받는 이방인 그르누이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르누이가 냄새로 세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당연하고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는 글을 몰랐고, 무언가를 가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릴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희망인 후각만으로 세상을 익히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에게 후각 이외의 것은 소유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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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누이는 냄새와 세상 만물을 연결 지을 수 있었다. 즉,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냄새를 갖는다. 그러나 그르누이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동굴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중 자신에게서는 아무런 냄새도 풍기지 않음에 발광하고 좌절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괴로워했을까? 인간의 냄새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은 자기만의 체취를 갖는다. 먹는 음식, 위생 상태, 유전적 체질 등에 따라 사람들은 자기만의 냄새를 갖게 된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가거나, 누군가를 품에 안았을 때 느껴지는 고소한 향이 그것이다. 처음 맡으면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냄새에 당황하겠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 냄새를 맡았을 때 반가움을 느낄 것이다. 즉, 냄새란 개인의 정체성이자 사람 사이의 애정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무취인 그르누이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도, 어떠한 인간관계도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심지어는 살다가 죽어서도 어떠한 냄새를 남기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살아있는 동안은 다른 권력자들 못지않은 막강한 힘을 지녔으나, 동시에 한 번도 숨 쉬지 못한 존재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인간. 그는 자기의 천재적 재능이 암시하듯, 인간과 그 이상의 초월자 사이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고립된 존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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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르누이는 여러 목적을 달성하고자 소녀들을 살해하고, 마침내 진짜 괴물이 되어 숨을 거둔다.
그가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인간의 향기를 소유하고자 했던 이유는,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향수를 만들고자 했던 것은, 인간과 초월자 사이의 그 중간 지대에서 벗어나 마침내 인간의 세계로 편입되고 싶다는 발광이었을 것이다. 천재적인 후각을 지녔지만 자기에게만큼은 결여된 그것. 곧 그것이 암시하는 소외. 그르누이는 세상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재능을 모두 다할 수 있었다. 다만 그에게는 인간의 규칙을 가르쳐줄 존재가 아무도 없었고, 인간이 아닌 존재로서 인간의 규칙에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서 살인을 택했고 그렇게 영원히 인간의 무리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죽음으로써 자신이 그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 이유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한순간이라도 사랑받았으니 괴물로서는 기뻐 마땅한 일이었을까. 혹은 악만 남고 자라지 못한 어린애가 거기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