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이 준비해오신 그림책은 구경도 못할만큼, 스케치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기에 치열했던 다섯 번째 시간이다.
다른 분들이 스케치로, 원화 채색으로 스텝을 오르락내리락 할 때 나는 확고한 한 발을 내딛지는 못했다.
중심 소재인 '조각'을 어떻게 이미지화할지, 실제 음식이 아닌, 단순한 색도 아닌 어떤 대상에 빗댈지가 풀리지 않다보니 그 주변의 스케치도 진척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타이밍에 원고를 한번 더 돌아보았다.
내가 삼킨 조각들을 음미한 일이 없다
콰삭, 콰삭 씹어 넘기던 말뭉치는 잇사이로 뾰족히 빠져나가고
둥그런 파동에 휩쓸려간 곳에서 나리는 시고 비릿한 물줄기는
성긴 조각들을 녹여버린다
풀어헤쳐진 조각이 모난곳을 마주잡아
눈물을 이루거나 할 동안
끝까지 골라남겨진 묵은 조각들은
세차게 검은 박동을 몇 번이고, 다시
한동안 익숙했던 어둠에 끝이 보인다
자란 손톱과 길어진 머리카락에서는
날 알아볼 수가 없다
*
네 번째 문장까지는 비교적 이해가 잘 된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세부적으로 소화과정을 묘사하지 않더라도 "삼킨 조각들", "시고 비릿한 물줄기"와 같은 구들이 이미지의 도움을 받아 각 장면이 어떤 과정에 해당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섯 번째 문장 부터는 의미가 다소 불분명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영양소의 흡수와 소장의 융털을 지나는 단계를 연상하며 쓴 문장들이었는데, 그저 내 머릿속에서는 다 된 설정이라 설명에 불친절이 따랐던 것이다.
이미지가 의미를 보완해주느냐하면 그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감정의 흐름과 신체 반응 사이의 연결 고리에 대한 지나친 추상적 표현을 다듬을 필요를 느꼈다. 최대한 간결히,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욕심에도 완급 조절이 중요하다.
이번 수업 시간에는 특별히 내가 직접 레퍼런스를 찾아와 공유해 보았다. 현대카드 아트라이브러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슈리글리의 『Red Book』이었다. 삐뚠 선과 반복되는 이미지가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해서 좋았고, 이 정도 날것의 스케치는 시도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작가님의 의견은 달랐다. 마치 피카소가 경지에 이른 뒤에야 해체주의를 시도했듯이, 슈리글리의 작업 역시 겉보기보다 훨씬 정교하고 통제된 드로잉 위에 있어 느낌을 내기가 쉽지만은 않을거라는 것이었다.
다른 분들도 다양한 의견을 나눠주셨는데 감정을 기호처럼 설계해 픽토그램으로 단순화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든가, 반대로 종이나 다른 표면에 자유롭게 선과 형태를 그려나가는 두들링이 감정의 결을 잘 보여줄 것 같다는 등 내가 느끼는 그림에 대한 부담감을 고려한 것임이 와닿았다.
스케치로 보여주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보여줄 수 없는 이상, 로고를 디자인하듯 많은 요소를 고려해 함축된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앞으로 다양한 표현 방식을 모두 시도해보고, 원고와 호흡이 잘 맞는 쪽을 택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