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쇼맨] 티저포스터.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31195957_knqyggav.jpg)
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이하 <쇼맨>)의 3연이 찾아왔다. <쇼맨>은 초연 당시,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 극본상(한정석 작가), 남자주연상(윤나무)을 수상하며 대중에게 작품성을 각인시켰다. 특히, 주연 캐릭터들을 비롯하여 초연과 재연을 함께한 배우들이 다시 캐스팅에 총출동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쇼맨>은 창작 뮤지컬계 대표 콤비인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레드북>, 음악극 <섬:1933~2019>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이미 수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준 창작진들의 작품이기에 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쇼맨>은 단 두 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인간에 대해 꽉 채운 감명을 주는 극이었다.
![[국립정동극장] 2023 쇼맨_공연사진 (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31200145_izqtgmxm.jpg)
겉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지닌 사람들
수아와 네불라는 유원지에서 우연히 만났다. 마트에서 상품성이 없는 과일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 비정규직 젊은 수아와, 유원지에서 인형 탈 알바를 하는 노인 네불라. 인형 탈을 찍었던 수아는 팁을 주기 싫어 프로 작가라고 거짓말을 하고, 이에 네불라는 본인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정식 의뢰를 한다. 기이한 우연, 이것이 둘의 시작이다.
하지만 미리 얘기를 하자면, 사실 둘의 인연은 우연이 아니었다. 네불라는 수아를 이전에 유원지에서 본 적이 있었다.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가 우는 것을 보며, 같이 울던 수아를 네불라는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때 둘은 비슷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네불라는 느낀 걸까?
["그 순간, 그 사람 생각이 났어. 이상하지? 우리는 너무 다른데. 정말 아무 상관도 없는데."]
극 후반부, 수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뒤 네불라가 떠올랐다고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다른 서로지만, 사실 비슷한 사람들. 겉에는 드러나지 않는 속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 그리고 사실, 우리 모두. 위로라는 말 없이 위로하는 방법. 그것이 <쇼맨>의 세련된 이야기 방식이었다.
![[국립정동극장] 2023 쇼맨_공연사진 (신성민).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31200200_gulkvxvx.jpg)
죗값을 치르고 죄책감을 이고 사람은 죄인인가?
‘살인귀‘라고 불리었던 어느 독재자의 재연 배우였던 네불라의 삶을 우리는 함께 지켜본다. 배우를 하고 싶었던 20대부터, 흉내내는 것에 소질이 있어 비밀리에 독재자의 대역에 캐스팅된 시절, 사람들이 환호하는 독재자가 되어 전율을 맛보았던 때, 그리고 모든 것이 송두리째 무너진 때까지.
네불라는 그가 그렇게 포악하고 나쁜 독재자였는지 “몰랐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미워한다는 것쯤은 느끼고 있었지만, 그게 그들 잘못이라고 세뇌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잘 몰라서, 오해해서, 속아서,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라고 배웠고, 그걸 진짜 믿었기 때문에. 재판장에서 밝혀진 네불라의 직책은 ‘세탁물 수거원’이었다. 본인도 몰랐던 직책, 그래서 네불라는 진실을 말하고 징역살이를 하며 죗값을 받는다.
["날 판단해 달라구요. …난 아무리 생각을 해도 모르겠어요. 날 어떻게 봐야 하는지. …내가 너무 싫은데, 싫어하고 싶지가 않아요."]
하지만 이 얘기를 전해듣는 수아는, 이 얘기를 전해 듣는 우리는 이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진정 그는 이제 죄가 없는가? 몰랐다고 하면 다 괜찮다고 넘어갈 수 있는가? 네불라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복잡한 질문.
네불라를 관리하던 간부는 “재판장님, 우린 일개 공무원입니다.”라고 말한다.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전형적으로 말하는 문구. 그가 악에 대해 깊게 고려하지 않고 그저 충실한 ‘공무원’이 될 때 가장 위험해진다는 것. 네불라는 직접적으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악한 인간의 대역을 하며 그 인간 행세를 하고, 그때의 기억을 사진으로까지 남기려고 하는 그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국립정동극장] 2023 쇼맨_공연사진 (윤나무).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31200209_blrxtbwo.jpg)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파도는 계속 쉼 없이 밀려오는데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제자리에 서서 뛰어오른다
인생은 내 키만큼 REP.
젊은 시절 네불라는 배우라는 길목에서 자신을 찾지 못한 채 헤맴의 바다에 살았다.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에서 헤엄칠 줄 몰라 제자리에서 뛰어내며, 간신히 살아내는 삶. 그 이후에는 대역 배우라도 꿈을 이루었고, 최선을 다해 꿈의 바다에서 헤엄쳤다. 누군가의 대역으로, 제자리걸음이지만, 그럼에도 소중해 그 제자리 헤엄에 최선을 다했다. 어른의 그는 죄책감의 바다에서 살았다. 밀려오는 현실을 버텨내며.
자신도 모르는 새 사회에 죄를 저질렀고, 그래서 사회가 정한 규범에 따라 죗값을 치렀고, 아직도 죄책감을 이고 사는 사람은, 죄인일까? 우리는 그 사람을 이제 죄인이 아니라고 죄를 사해줘야 할까? 우리에게 그런 자격이 있을까? 평생을 가는 죄책감을 지니고 살게 된 것 역시 죗값을 치르는 다른 방법이 아닐까? 직접적으로 ‘판단해달라’고 네불라는 관객에게 말하였는데,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고 했던가. 어떤 날의 잘못된 선택 후, 그 선택에 매여 사는 그를 보며 관객은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다.
["수아 씨는 그런 기억 없어요? 끝이 안 좋았어도, 나쁜 것들이 섞여 있어도, 그 순간만큼은 너무 소중해서 버릴 수가 없는 기억."]
수아는 그런 기억이 없을까? 우리는 그런 기억이 없나? 아마 모두가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싫은 것이 섞여 있어도, 그것이 너무 소중해서 간직할 수밖에 없는 기억. 그것을 간직하는 스스로가 싫고 미워질 정도로 흠결이 많지만, 그럼에도 또 버리지 못하는 게 스스로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기억. 그래서 나를 힘겹게 하는 기억, 그러나 또 나를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추억.
![[국립정동극장] 2023 쇼맨_공연사진 (강기둥).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31200218_ysryrfhp.jpg)
미운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극
이 극의 주인공은 네불라와 수아, 두 명이다. 앞서 말했듯 네불라와 수아는 가장 달라 보이지만 아주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수아가 가진 기억은 무엇일까? 수아가 네불라처럼 누군가를 대신해서 살았던 적이 있을까? 이 극은 수아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수아가 이 사진작가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직접 <쇼맨>을 보고 느끼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조명이 한 사람의 주마등을 스쳐 가는 노을 같아서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쇼맨>과 너무나 어울리는 따뜻함. 특히, 내가 그를 따라 했다는 걸 소중해해서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따라 해 주는 그 마음을 생각했다는 것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본인이 누군가를 연기했다는 사실을 너무나 증오해, 사람들 앞에서 몇 번이고 그를, 그래서 본인 자신을 죽이는 연기를 하는 사람에게. 조용하고 소극적인 사람이 부끄러움을 감내하고 따라 해서라도 진심을 전달해 주고 싶은 그 마음.
모나고 싫고 부족한 나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휘청이며 살아내는 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 헤엄만 치며 살아가는 나도, 나 자신으로 안아주는 극. 위로라는 직접적 표현 없이 이렇게 세련되게 위로해주다니. 이렇게 좋은 극을 만나 너무 따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