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언제나 거대하게 도착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작고 나약한 채로 그것을 맞이한다. 한 사람의 생은 작지만 길고, 깊지만 조용하다. 시대가 흔들려도, 사람들은 여전히 밥을 짓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또 잃어가며 하루를 견뎌낸다.
<인생>(1994)은 그런 이야기이다. 기록되지 않는 이름과 남겨지지 않는 말들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삶을 견디고, 끝내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다.
부귀는 한때 지주 집안의 도련님이었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자라난 그는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임신한 아내마저 집을 떠나게 만든다. 그가 가진 것은 허무하게 날아간 재산과 후회, 그리고 거리를 떠도는 하루뿐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뒤, 부귀는 인형극을 시작한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인형극은 그를 사람들 곁으로, 삶의 가장자리로 이끈다. 작고 낡은 무대 뒤에서 그는 처음으로 웃음을 주는 일을 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 실패했다고 생각한 인생 위에도, 시대는 길흉을 바꾸고 작은 변화를 피워낸다.
처음에는 가족에게도, 시대에도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으로 국민당군에 끌려간다. 그는 전쟁터에서 이념을 외치지 않음으로써 아내 자전과 아이 둘이 있는 소박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손에 쥔 것은 없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책임을 배우고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
20세기 초 중국의 역사는 개개인의 일상을 뒤틀어 놓은, 거대한 삶의 왜곡이었다. 그 흐름 속에서 부귀는 수많은 절망을 경험한다. 대약진운동에서 아들 요우칭은 과로에 시달리다 학교 담장 밑에서 잠든 채 친우의 운전 실수로 세상을 떠나고,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딸 펑샤가 산후 출혈로 숨을 멈췄다. 반동군자로 몰린 의사들 대신 졸업도 못 한 의대생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부재는 설명되지 않은 채, 식탁과 무덤 사이를 지나갔다. 두 자식을 잃게 만든 시대였음에도, 슬픔은 그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누구도 묻지 않았고,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영화는 부귀의 인생을 담담히 따라가며 중국의 대격변 속 인민의 삶을 그린다. 역사의 파편이 한 사람의 집안에, 식탁에, 병원에, 무덤에 스며드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부귀는 혁명가도, 저항자도 아니었다. 국가의 흐름에 따라 하루를 이어가는 인민 중 하나였다. 그 인민은 그 자체로 순수했다. 고발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으며, 믿었다. 모든 시대의 흐름을 버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는 것이다 (幸福不是遥不可及的,就在身边)"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 계몽이나 영웅적 서사는 의미를 잃는다. 오히려 버텨내는 쪽에 가깝다. 삶이란 결국 남아 있는 자의 몫이다. 다만,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로 버텨야 하는 시간이 있다. 절망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고 외치며, 절망을 외치지 않고 내일을 맞이한다.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미래를 꾸미려 들지도 않는다.
언젠가 부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간직했던 세계를 손자에게 건넨다. 그림자극은 그에게 삶을 붙들어 매던 끈이자, 인생을 견디게 했던 온화한 웃음이었다. 문화대혁명 시기 모든 소품은 불순물로 여겨져 불길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빈 상자에 병아리를 가득 채우고 미래를 담는다. 손자가 어른이 되면, 비행기와 기차를 탈 수 있는 좋은 세상에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작은 병아리가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면 양이 되고, 양이 자라면 소가 돼. 소가 된 다음에는 소에 안 올라타고, 기타도 타고 비행기도 탈 거야. 그때가 되면 우리의 날들도 점점 나아질 거야. (小鸡长大了就变成鹅,鹅长大了就变成羊,羊长大了就变成牛,牛长大了就不骑牛了,就坐火车,坐飞机,那个时候日子就会越来越好)"
“사람은 살아 있는 그 자체를 위해 사는 것이다. (人是为了活着本身而活着的)”
원제는 《活着》는 말 그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안에는 거창한 뜻이나 철학도 없다. 그저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오늘을 넘기는 것. 한국어 제목인 <인생>은 한 사람의 궤적을 해석하려는 시선을 담은 듯하다. 중국의 현대사를 관통하여 개인의 생을 보여주는 영화는 유통되며 철학을 갖는다. 역사의 격랑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때로 그저 살아있는 것뿐이다.
우리는 때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윤리를 품을 수 있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영화는 한 사람의 인생을 조명하기에 몇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수많은 삶의 궤도를 따른다. 우리는 그 속에서 본인의 의미를 찾는다. 그러나 <인생>의 경우 단순한 비극이나 불행이 아닌, 그 모든 것을 지나는 시간에 주목한다. 때로는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모든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인생>은 바로 그 시간에 대해 말한다. 이제 우리는 하루를 살아남았다는 말 대신, 하루를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인생>은 짙은 슬픔을 준다. 변화와 고통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 당신도 ‘인생’을 꺼내 들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