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걸 좋아하시나요?
어떤 영화, 어떤 음악, 어떤 음식, 어떤 옷, 어떤 계절, 어떤 장소, 어떤 시간, 어떤 책, 어떤 장르, 어떤 운동,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나요?
이런 질문 수도 없이 주고받아 봤겠죠. 그럼 이렇게 물어볼까요?
어떤 걸 싫어하세요?
뭘 좋아하는지가 그 사람의 정체를 단단하게 쌓아 올린다면 뭘 싫어하는지는 그 사람을 촉촉하게 만듭니다. 찢어지기 쉽게, 뭉그러지기 쉽게, 껍질을 벗기기 쉽게. 그래서 그런지 저는 그 사람이 무엇을 어디까지 싫어하는지 알게 된 후에야 그의 세계로 들어간 기분이 들어요. 좋아하는 거 100만 가지를 알았을 때보다도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 정말 자기소개를 해볼게요. 주제는 당연히 <싫어하는 것>.
전 싫어하는 게 참 많은 사람인데요.
일단 생양파가 싫어요.
추운 게 싫고요.
수학은 싫다 못해 무섭고
너무 묵직한 향의 향수가 싫어요.
자기계발서도 재미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이 싫어요.
서열질과 학벌주의와 엘리트주의가 싫고
허세와 욕설이 반복되는 랩 가사가 싫고
남자 배우가 나와서 사람을 때리기만 하다가 끝나는 영화가 싫어요.
현금 없는 버스가 서러워요.
키오스크 앞에서 손가락을 방황하는 시간이 두렵고요.
“약자와 동행하는 서울”이라는 슬로건은 싫다 못해 웃기기까지 해요. 지하철 좀 타게 해달라는 장애인을 적으로 만들던 서울시가 동행하려는 약자는 대체 누구일까요.
어떤가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혼자 화가 나버린 래퍼 같나요? 그런 랩 가사가 싫다고 해놓고 말이죠. 어쩌면 당신을 불편하게 했을지도요. 제가 싫어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으니까요. 당신은 저를 이렇게 부를지도요. “좌파 빨갱이 불편충.” 정치를 깊게 알지 못하는 저라서 제가 정말 “좌파 빨갱이”인지는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지만) 잘 모르겠고 하나는 확실히 알겠어요. 제가 “불편충”이라는 거요.
불편충으로서 변명을 해볼게요. 우리 불편충들은 분위기를 깨려는 게 아니에요. 하하호호 웃는 당신의 표정이 굳어지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당신 옆에 웃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당신까지도 웃었으면 좋겠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 같이 웃고 싶은 거예요. 모두가 웃을 수 없다고요? 그래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웃는 편이 좋잖아요. 울고 있는 사람 모른 척하다가 어느 날 내가 울게 되면 어떡해요. 그때 아무도 날 돌아봐 주지 않으면 어떡해요. 다들 웃느라 바빠서 내 울음소리 따위 들리지도 않으면요.
재미없는 이야기 하나 해볼게요.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됐어요. 특이한 건, 사람들은 자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월급이 얼만지 키나 몸무게는 몇인지 스스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런 상태에서 세상을 설계한다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남자에게 유리한 세상을 만들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내가 여자일지도 모르니까요. 키 큰 사람이 연봉도 높은 세상을 원하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내 키가 가장 작을지도 모르니까요. 결국 사람들은 합의해요. “모든 면에서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르니까요.
이건 미국의 존 롤스라는 아저씨가 먼 옛날 제안한 ‘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인데요. 갑자기 철학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만큼 깊게 알지도 못하고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가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를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내가 누구인지만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둘러볼 틈이 없게 되니까요.
‘장애인 단체가 시위를 한다고요? 어쩌라고요. 난 휠체어 안 타고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인데요? 내 앞길 막지 마세요.’
‘저소득층 아이들이 밥을 굶는다고요? 어쩌라고요. 난 밥 사 먹을 돈 있는데요? 내 세금 뺏지 마세요.’
이렇게 나 자신으로만 꽉 찬 삶은 너무 공허하지 않을까요? 이 넓은 세상에 나 말곤 아무도 없다는 거잖아요. 가끔은 눈가리개를 쓰고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보면 어떨까요? 나에 대해 무지해지는 거죠. 그럼 내 앞의 사람이 보일 거예요. 사람은 나와 멀어지는 만큼 너와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만 있던 세상이 너와 닿으면 그 순간 새로운 게 보이더군요. 신기하죠. 눈가리개를 썼는데 뭔가 보인다는 게. 반짝반짝 빛나는 게 보이진 않고요. 눅눅하고 구질구질한 게 보여요. 너를 괴롭히는 게 뭔지 보여요. 그리고 그게 싫어져요. 싫어하는 게 하나둘 늘어나요. 적어도 저는 그랬어요.
아무래도 너무 지루해지고 말았나요?
이제 그만 밝은 이야기를 해볼까요? 좋아하는 걸 말해볼게요.
저는 이 세상이 좋아요. 여름이 지나가도 또 다른 여름이 온다는 사실이 좋아요. 버스 타고 창밖을 보는 시간이 좋아요. 나무 그늘과 이름 모를 들꽃과 초록색 공원이 좋아요. 음악을 틀어두고 책을 읽는 여유. 바깥에서 하늘 보고 누워 있기.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보는 까만 화면. 영화가 끝나면 끝없이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 밥 먹을 때 떠먹는 따뜻한 국물. 잔 부딪혀 가며 마시는 소주. 기분을 만드는 와인. 옷을 조합해 입는 행위. 질리지 않는 빈티지 의류의 세계. 잘 만든 광고가 주는 소름. 러닝과 한강. 친구들. 낮잠. 카메라. 스웨터. 콘서트. 바다 수영. 손목시계. 새벽 산책. 그리고 언제나 글.
더 쓰려는 걸 멈추느라 애먹었네요. 싫어하는 게 많다는 건 사실 이 세상을 좋아한다는 뜻과 같아요. 애정 없는 잔소리 없다던가요. 저는 이 세상을 포기하고 싶지 않고 저버리고 싶지 않아요. 들여다 보는 구석마다 아름다운 게 있잖아요. 그래서 더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움이 오래오래 살아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싸워야겠죠. 나무를 지키려면 산 깎아 골프장 만드는 사람들로부터 나무를 구해야 하는 것처럼. 어쭙잖은 영웅 심리는 아니고요. 이왕 예민하게 태어난 거 마음껏 예민하려고 합니다. 불편함 안테나를 부지런히 갈고 닦아서 오늘도 열심히 싫어하려고 합니다. 물론 제 안테나가 언제나 옳은 방향은 아니겠죠. 자주 먹통일 겁니다. 아직 배울 게 많다는 거겠죠. 안테나를 쫑긋 세우고 다른 이들은 무얼 싫어하는지 계속 들여다보는 수밖에요.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게요. 이만 다시, 내가 누구인지 잊어볼게요. 이제 당신이 궁금해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무엇을 왜 어디까지 싫어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