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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뮤지엄한미 삼청에 처음 다녀왔다. 국립현대미술관보다 조금 더 깊숙한 삼청동은 여름을 고즈넉하게 품고 있었다. 가로로 긴 깔끔한 붉은색 건물도 잘 어울렸다.

 

알고 보니 이곳은 2003년부터 한국 최초의 사진 미술관으로 활약했던 곳이었다. 국내 사진사의 체계화와 사진문화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2022년, 새롭게 단장하여 뮤지엄한미 삼청본관으로 다시 찾아와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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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 뮤지엄한미 삼청본관에서 진행되는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는 매그넘 포토스의 방대한 사진 아카이브를 보여주고 있는 전시이다.

 

매그넘 포토스는 1947년에 설립된 세계적인 사진가 협동조합이다. 그들은 단순한 이미지의 집합으로서의 포토북을 넘어서서, 창작과 역사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몰입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80년간 제작된 150여 권의 포토북을 통해 현실의 다양한 사건과 현상을 이해하고 사진가의 관점과 스토리텔링을 포착해 낼 수 있다.


세세하게 나누어진 파트별 기획 또한 감상에 큰 도움을 주었다.

 

포토라는 것이 당시 시대와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는가를 느낄 수 있었던 Part 2. 포토북 자체와 그에 담긴 스토리를 소파 세션(sofa session, 마틴 파와 포토북 기획자와의 인터뷰)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Part 3. 아이코닉한 대표 작품을 살펴보고 프린트와 포토북을 비교해 볼 수 있었던 Part 4. 미출간 프로젝트 eye to eye를 위해 주고받았던 서신으로 포토북 제작의 과정을 엿볼 수 있었던 Part 5. 그리고 보다 더 개인적인 삶을 담아내고 있는 Part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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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Part 1, 이 자유로운 공간을 가장 마지막에 감상하게 되었다. 정해진 순서는 아니었고 의도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Part 2-6 동안 간단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던 포토북들을 펼쳐보지 못한다는 답답함과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을 꼭 안고. 마침내 도착한 마지막 Part 1은 더 밀도 있는 공간이 되어있었다.


특별히 궁금했던 포토북을 집중해서 읽고, 지나온 전시 내용을 복기하며 상상하고 조합하여 사진을 쳐다보다 보면. 어느새 포토북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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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도쿨레 소베크와는 여동생 지얀다의 얼굴이 오려진 가족사진을 발견하고 I Carry Her Photo With M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얀다는 어딘가 비밀스럽고 반항적이던 소녀였고, 어린 시절 소베크와가 다치게 된 사고 이후로 사라졌다. 소베크와는 여동생에 대한 기억을 스크랩북을 활용하여 확장했다. 남아프리카 사회 전반에서의 이러한 실종이 갖는 의미를 더 넓게 다루어낼 뿐만 아니라, 소베크와 자신에 대한 발견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I Carry Her Photo With Me. Just like my mother, I began a quest searching for my sister’s foot print who had disappeared for a decade. On this Journey, I discovered that this was not only finding out about my sister’s disapearence but also part of myself that I had lost in the process. I began using a dairy to reflect about how I felt at that time. I started using photography to search for answers to heal to make my family talk and end the cycle of people disapearing in my family.


우리 엄마처럼, 나도 10년간 사라진 여동생의 발자국을 찾기 시작했다. 이 여정을 통해, 나는 여동생의 실종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나 자신에 대한 것 또한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일기장을 통해 당시 내가 어떤 감정이었을지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사진을 통해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누게 하고 가족 구성원들이 사라지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치유의 답을 찾기 시작했다.

 

 

목적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은, 어쩌면 결과가 확장된 포토북. 특정 사건, 여동생의 실종을 기록하고 분석하기 위한 목적으로 포토북을 시작하였으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를 찾는 것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I Carry Her Photo With Me는 Her 와 Me 그리고 더 나아가 가족들 그리고 남아프리카를 위한 치유의 답을 찾아낼 수 있던 프로젝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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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아서는 절친한 친구가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했을 때, 친구의 세 살배기 딸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로 이 책을 만들었다. 엄마가 그녀 내면의 무언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이겨낼 수 없었던 외부의 힘인 하나의 병에 의해서 떠났다는 것을, 어린 딸이 언젠가는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Lee und die Meereswesen Dummy Book은 ‘리’라는 이름의 어린 소녀가 어머니를 알아보러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여정 속에서 리는 어머니를 깊은 바다로 데려가 버린 바다 생물들을 만나고,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무섭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콜라주 형식으로 편집된 사진들은 신비롭고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디 어린 소녀가 어머니의 부재를 상처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사진을 조합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세계가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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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사진을 어려워했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지금, 사진만이 가질 수 있는 유니크함을 공감하지 못하기도 했다. 글이나 영화, 그림과 비교했을 때 훨씬 평면적이고 사실적이기에 상상의 여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포토북 속의 매그넘> 전시를 모두 감상하고 난 뒤 생각이 달라졌다. 포토북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었다. 포토북은 단순히 사진 기술이 발달하고 누구나 핸드폰을 들고 있다는 이유로 대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포토북의 무게와 크기, 표지, 종이의 질감, 책장을 넘기면 펼쳐지는 또 다른 사진과 메모들. 이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물성을 느낄 수 있다.


포토북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아날로그함, 그 속에서 빛을 발하는 독창성이 매력적이다. 가장 일상적이면서 가장 독특한 순간들을 담고 있는 포토북들. 그들이 바라봤던 세상은 이런 세상이었구나. 뮤지엄한미를 나서서 건물을 되돌아보면서. 나도 포토북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것을 또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다른 사람들은 또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삶을 공유한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공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다른 것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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