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의 첫 시집, 『사춘기』에서는 나를 구심점으로 ‘엄마’와 ‘여자’, ‘아이’를 넘나든다.
마치 스스로를 낳은 듯 보이는 이 화자들은, ‘나는 나 혼자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혼잣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앞뒤로, 내가 낳은 타인과, 나를 낳은 타인을 잘라내고 ‘나 혼자’로만 세계를 구성하는 것 같아서. 이것은 시에서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언어로 다시 구성하는 세계이니까. 이때 이토록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고,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존재는 귀신이므로, 화자는 ‘귀신’의 목소리로 시를 속삭이게 된다.
이 시집을 처음 읽었던 건 고등학생 때이고, 그 뒤로도 여러 번 읽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며 그때보다 이 시집이 구조적으로 어떻게 짜여 있는지 보다 집중해서 읽었다. 그러나 처음 읽었을 때 가장 생생한 귀신의 목소리로 와닿았다. 시에서 ‘나’는 이따금 모든 것을 아는 것 같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며, 죽었다 깨어난 것 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

1. 그러모으기
나는 늘 한애라고 생각했어요. 내 사랑하는 쌍둥이들아, 흩어지면…… 흩어지면 함께 죽는 거야.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이 말하게 연습시켰어요. 내 사랑하는 쌍둥이들아,
나는 매일매일 아이들을 낳지. 혼자 있고 싶은 때도 있었어요. 우린 똑같이 우울해요. 내 사랑하는 쌍둥이들아. 나는 때때로 위로가 필요하지 않단다. 8월에는 산으로 바다로 바캉스라도 떠나렴. 우린 너무 뜨거운 사랑이니
몇 명의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다가 빠져 죽었어요. 연애에 빠진 아이도 있었죠. 나는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때가 더 많았어요. 나는 늘 한애라고 생각했거든요. 내 사랑하는 쌍둥이들아, 나는 똑같은 옷을 입고
푸른 계곡을 삑삑거리는 호루라기 소리를 나는 민박집에 드러누워 듣고, 나는 으슥한 공원에서 남자애와 입을 맞추고, 나는 고독하게 보초를 서지. 울면서, 흩어지면…… 흩어지면…… 하고 중얼거리지. 8월에만
우린 잠깐 죽었다 깨어났어요.
- 「8월의 사랑」 중
그의 시에 등장하는 ‘우리’는 어디까지 ‘우리’일까. 시에서 쪼개지고 분열하는 아이들은 결국 ‘나’로 환원되는데, 그 무수한 ‘나’를 낳은 사람은 또 ‘나’로 이어진다. 위의 두 시는 구조와 메타시라는 특성에서 매우 유사하다.
4연으로 이루어진(「8월의 사랑」은 짧은 1연이 더 있다.) 산문 시에서, 각 연마다의 구성을 통해 하나의 목소리인 ‘침묵’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러 명으로 쪼개진 ‘나’, ‘우리’가 존재하는데, ‘나’는 우리를 총괄하는 목소리로서, 우리를 다스리고 보듬는다.
「8월의 사랑」에서 ‘나’는 “매일매일 아이들을 낳고”. 쌍둥이들에게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이 말하게 연습”시킨다.
2연에서 ‘나’는 8월에는 바캉스라도 떠나라며 쌍둥이들에게 여행을 권하는데, 3연에서 몇 명의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다 빠져 죽는다. 연애에 빠진 아이들도 있다.
여기서 ‘나’는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때가 더 많다고 말하는데, 이때 “나는 늘 한애라고 생각했어요”라는 도입의 말이 분열된 아이들 하나하나를 전부 자기자신, ‘한애’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똑같은 옷을 입은 내가 아이들이 선행한 장소들을 이동하며 “흩어지면……”을 중얼거린다. 왜 이것이 8월에만 일어나는 일일까. 8월의 8은 영원, 무한을 뜻하는 ∞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주소록을 만들기로 한 날이었어요. 애들은 종이에 썼어요. 여기에 내가 있고 여기에 내가 없고 저기에 내가 있고 저기에 내가 없고 3시에 바닷가에 있었고…… 정말 시들을 쓰고 있더라구요. 우린 모두 일목요연해지려 모였다구.
우리에겐 특별한 날이잖아. 실용적인 주소록을 만들기로 해. 우린 모두 지쳤기 때문에 동의했어요. 무섭게 조용해졌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내가 모임에 빠진 거 애들이 아니? 이해해. 우린 너무 많아졌으니까. 나는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중이야. 지옥행을 시도했거든.
네가 대신 아무렇게나 써줘. 폭신한 침대에 내가 누워 있고 지옥문 앞에 내가 있고 다시 약국에 내가 있고 엄마 손에 잡혀 나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고 꽃잎이 떨어져서…… 그런데 절대 시 쓰진 마. 그냥 아무렇게나 쓰면 돼.
걘 멋진 데가 있었어. 우린 모두 조금씩 그래. 애들은 종이에 썼어요. 얘들아, 우린 추억하려고 모인 게 아니잖아. 3시에 바닷가에 있었고 모레에는 기차를 탈 거야. 가끔 우리는 여기에 있을 거야. 우린 천천히 조용해졌어요.
- 「친구들-사춘기6」 중
「친구들-사춘기6」에서는 ‘친구들’으로 표상되는 무수한 ‘나’가 등장한다. 이들은 실용적인 주소록을 만들기 위해 모였는데 어쩐지 시를 쓰고 있다. ‘여기’와 ‘저기’에 나의 자리가 자꾸만 전환되고 전화벨이 울리며, “내가 모임에 빠진 거 애들이 아니?”하는 낯선 음성이 누군가에게 묻는다.
이 ‘나’는 지옥행을 시도해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중이다. 추측해보건대 ‘나’는 자살 시도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나’는 친구들 속 누군가에게 대신 아무렇게나 써달라고 부탁하며 중언부언 말을 쏟아내는데, 시적인 말들을 청자에게 흘리며 절대로 시를 쓰진 말라고 당부한다.
곧 주소록을 만들러 모인 아이들은 “걘 어딘지 멋진 데가 있었다”며 ‘나’를 추모하는 듯한 글을 쓴다.
화자는 추억하려고 모인 게 아니라고 아이들에게 당부하며, 시는 “천천히 조용해진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분열된 시적 자아라고 여기면, 실용적인 주소록 역시 시집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시적 자아 한 명 한 명의 주소지, 즉 발현지란 ‘나’를 근원으로 출발한 시적인 순간일 테니까. 이 두 시는 나를 그러모으려 애쓰고, 그렇게 시가 쓰이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2. 어머니
나는 엄마, 라고 말한 아이에게 묻지.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니? 나는 신기한 듯 아이를 빤히 바라보지.
나는 우유를 주는 여자일 뿐이고, 너희는 울고 있는 미아란다.
(중략)
너희들은 한 달마다 얼굴이 바뀌지. 반년이면 너희는 감쪽같아진단다.
마음껏 더럽히렴. 나는 멍청히 우유를 타는 여자일 뿐이고, 너희는 아직 울어도 좋을 때란다. 너희들은 한 덩어리지.
울기 부끄러워지면 어서 나가렴. 너희는 울고 있는 미아란다.
- 「천국의 아이들1」 중
영원히 여자들 품에 안긴 여자애이기를 원했어요. 나는 그녀들의 얘기를 귀에 꽂고 다녔어요. 내 입에서 그녀들이 흘러나와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그녀의 테이프가 늘어져서 우린 조금씩 어지러워지거나 천천히 섞였지만
이미 우리는 다 외워버렸는 걸요. 어쩌면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녹색의 시냇물이 삼부아파트 101동, 102동, 103동…… 새를 흐르고
우리는 영원히 발을 담그고.
- 「여자들의 품」 중
「천국의 아이들1」에 등장하는 ‘나’는 「삼십세」에 등장하는 여자나, 「8월의 사랑」에 등장하는 ‘어머니’ 주체와 비슷하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모체’는 아이들을 양육하고 이따금 놓아주고, 그들을 낳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자기자신이 너희의 ‘엄마’라고 명확히 주장하지는 않는다.
「여자들의 품」에서는 “영원히 여자들 품에 안긴 여자애이기를 원했다”는 고백으로 시작된다.
시집을 구성하고 있는 양육과 연대의 뿌리는 ‘여성’을 관통하며 지속되고 있다.
「초콜릿 분쇄기」에서 “여자들의 자장가를 들으며 / 당신은 어른이 되었듯”이, 계속해서 이야기와 자장가 등으로 변주되는 ‘앞선 여자들’은 ‘나’를 어른으로 먹여 키운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내게 피와 살이 되어 자라고, 나는 그 이야기를 다 외워 버린 채 자라 어쩌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파트 단지는 약 1,000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이야기는 아파트 건물 사이사이를 흐르고, ‘나’를 포함한 이들은 그곳에 발을 담그고 있다.
3. 세계
1028개 마루에 동시에 울려 퍼진다. 우리는 곧 停電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후로 이 마이크와 당신들의 스피커에 전류는 끊깁니다. 지금 당신이 딩동,
소리를 들었다면 맨 마지막 초인종입니다. 60호의 어둠 속으로 한 남자가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실루엣은 바야흐로 덩어리입니다.
많은 여자들이 울었고, 더 많은 남자들이 울었고, 아이들이 보챘습니다. 가령, 1104호 여자애의 드라이기에서 더 이상 뜨거운 바람은 나오지 않고, 여자애는 젖은 머리칼을 그냥 베개에 쏟아버렸습니다. 그렇게 누군가 눈감아버리고.
또 당신들은 기어이 촛불을 들고 서서 유령처럼 서로를 확인하고, 동시에 깜짝 놀라고,
동시에 전원이 확, 켜지고,
- 「관리 사무소」 전문
김행숙은 분열적인 화자, 언어로 환원할 수 없는 목소리 등의 평을 받으며 미래파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으로 손꼽히지만, 수많은 미래파 시인들이 ‘폐쇄적이고 분열적인 히키코모리적 시’라고 오해 섞인 비평을 받았듯 그의 시 역시 단순 환상으로만 가득 찬 공간은 아니다.
그의 시 세계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목소리들이 채우고 있기는 하나, 이 목소리들이 경유하고 있는 세계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지 않다. 선일여자고등학교를 달리고, 아파트 한 단지를 한순간에 집어삼킨 정전을 다룰 때, 「초콜릿 분쇄기」에서 다루는 ‘분쇄기’가 은유적으로 여공을 다루듯, 현실의 사건과 현실의 존재 역시 시 속에서 함께 엮어나가고 있다.
정전의 순간, ‘당신’의 실루엣은 덩어리로 변한다. 이때 “많은 여자들이 울고, 더 많은 남자들이 울고, 아이들이 보채”는데, 빛도 전류도 없는 진정한 ‘어둠’의 시간 내에서 솔직한 인간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건 내 존재밖에 없다. 기어이 촛불을 켜 상대를 확인하려는 몸짓은, ‘상대가 명확히 존재하나’에 대해 의문을 갖는 듯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