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짭짤한 과자를 먹어야지
다들 뭉툭한 형태의 딱딱한 식빵 꼬다리 같은, 바삭한 과자를 아시는가? 갈릭버터맛이랑 치즈맛이 있는 그 과자다. 이상하게 며칠 동안 짭짤한 와작거리가 먹고 싶었는데, 오늘은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보다 일찍 나와 편의점에 들렀다. 태양의 이름을 가진 것과 빨간 세모 모양의 과자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다, 적당한 사이즈의 이걸 골랐다. 결과는 꽤 만족. 지금 딱 원하는 수준의 감칠맛을 줘서 좋다.
너무 강력한 맛은 괜히 안 좋은 결과를 유도하지 않던가. 이를테면 초콜릿이 당긴다든지, 음료수를 먹게 된다든지... 이건 딱, 밍밍한 아이스커피랑 먹기 좋은 '옴냠냠'이겠다.
갈릭버터 시즈닝이 잔뜩 묻은 걸 하나 입에 쏙 넣고,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와그작, 오도독) 벌써 7월의 끝자락이다. 와—6월 30일과 7월 1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며칠 안 남았다. 그래도 이번 달은 꽤 꾹꾹 하루하루를 눌러 담으며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찰나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도 시간이 빠르고, 나름 충실하게 살았는데도 이런 느낌이면, 역시 만족감 있는 삶에 확정적인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솔직히 아등바등 산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게으르게 산다고 해서 인생이 필연적으로 망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우주의 먼지 주제에 나보다 거대한 '형체'를 컨트롤하려는 시도 자체가 오만이다. (과자 맛있다)
명치 위에 꾹-
그러니 굳이 내 인생은 왜 이러는가—를 고민하기보다는, 나름의 정답을 내려가며 소소하게 행복하고 재빠르게 슬퍼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운명까지는 모르겠고,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귀찮고 불가피한 일들이 눈앞에 쾅— 도래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해둬야 한다.
'지루한' 나날이 디폴트인 순간마다 감사해 하며, 세상 몰래 조용히 딴짓해야 한다. 그게 내 글쓰기의 동력이었던 것 같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를 시작하기 전, 대략 4월 초부터 매일 글을 썼다. 대부분 클래식이나, 그날 하고 싶은 이야기, 공연 예습(프리뷰)이나 복습(후일담) 정도겠다. 왜 그리하였느냐고 묻는다면... (일단 과자를 하나 더 먹겠다) 그냥, 내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감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내적 동기였나? 나열해보자. 다름을 인식하고 싶다. 눈앞의 장면을 휘발시키고 싶지 않다.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 일기를 쓰고 싶다. 선물이 되면 좋겠다. 그렇다면, 감정은 왜 이유가 되었나? 공연을 보고 나면 명치 위로 큰 응어리가 생기곤 했다. 그걸 당장 뱉어내지 않으면 할 일을 하지 않은 듯한 답답함에 힘들었다. “어떻게 해결하지?” 고민하다가도 우다다— 그날 보았던 것을 마구 털어내면 마음이 훌훌 가벼워졌다. 그 응어리의 재질 자체가 하나의 '감정 덩어리'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이것. 나와 눈을 맞춰주기 위해 썼다.
나를 가장 내밀하게 아는 사람이 누구일까? 연인, 가족, 절친한 친구? 글쎄, 그 부분에서 조금 회의적이다. 특히 성향 자체가 민감하거나, 생각이 많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꼬리를 무는 사람이라면 더욱, 타인의 어깨에 기대 내 안의 ‘무언가’를 이해받는 일은 여간 쉽지 않고,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부담될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거울 앞에 서면 마주하게 되는 그 사람뿐이다. 결국 의지할 건 나 하나인데, 무엇으로 위로하고 공감해줄 것인가? 그것도 내가 바라는 수준과 감정선에서?
내 세상에서는 그 해답이 다행히 꽤 빨리 도출되었다. '글'이었다. 사실 좋아하는 걸 모두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다. 클래식도, 글도, 그림도, 사진도. 사실은 이 세상에 무언가라도 남기고자 하는 흔적 아닐까? 의도는 “재밌어서”라고 말하지만, 뜯어보면 ‘욕심’ 때문이다.
남기지 않을 이유도 없다. 매일 글을 써낸다는 게 버거운가? 그건 그런 일을 해낼 재량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해버린 상태에서 떠올린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하루에 하나씩 써보는 일도 못 해볼 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그냥, 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못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고자 하는 건 소설도, 문학작품도 아니지 않은가? 그냥, 쓰면 된다! 피곤하고 어렵게 느껴질 땐 그 상태 그대로 툭—툭— 내려놓으면 된다. 타인의 이야기도 아니고, 내 시야에 담긴 일이니 부담도 적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6월이 왔고, 좋아하는 7월의 축제도 예고되었다. 이달에 관람한 공연만 해도 대충 10개가 넘었다. 달력에 체크하면서도 “이거 다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7월의 내가 겪어보니 한 주에 연달아 몇 개씩 보는 건 여간 쉽지 않다.
게다가 본 것 중 무게가 가벼운 것은 또 몇 개 되지도 않는다. 공연 보기 전엔 늘 “이건 그냥 가볍게 보고 흘려보내야지” 하면서도, 막상 무대의 행위자들이 "감히 우리를 그렇게 날려버리겠다고?"라고 말하며 (그런 적 없다) 내 외피를 꽝꽝 두들긴다. 결국, 하루 이틀은 한숨만 푹푹 쉬다가 키보드 앞에 앉는 요즘이다.
쓸 때는 그냥 무의식적으로 우다다— 적는데, 늘 시작이 어렵다. 응어리 둘레에 약간 맛보기 홍삼 맛이 붙어 있는 것 같다. 으엑—먹기 싫어. “뭘 안다고...” 이런 느낌으로 한숨을 한 30개쯤 세고 나면, 이제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왔음을 느낀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쓰다 보면, 뭉쳐 있던 게 어느새 조용히 사라져 있다.
우다다- 휘발되기 전에!
그리고 한참 뒤, 멀지 않은 시점에 뱉어낸 걸 되돌아보면 글과 내가 서로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솔직히 3일 전 점심 메뉴, 생각나시는가? 일주일 전 간식은? 생각나겠나! 그런 느낌이다.
하얀색 화면에 감정들과 방을 나눠 가진 뒤에는 새삼 낯설다. “이런 말을 했다고? 잘 모르겠는데.." 한 달 전, 몇 달 전의 글은 거의 남 일 같다.
그러니까 재밌는 거다. 나랑 생각이나 취향이 비슷한 이름 아는 J씨가, 꽤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관람했던 공연을 회상해주고, 거닐었던 길목을 되짚어준다. “이거 재밌네.” 혼자 장구치고 손뼉 치며 논다. 내 과거가 오늘의 나를 이해해줄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포물선이 좋은 이유
근래의 생각은 이쯤 접어두고, 이제 이 글의 카테고리에 맞는 내용을 서술해보자. [Project 당신]의 [자기소개]다. 흠, 자기소개? 늘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다가 갑자기 내 얘기를 하려니까 흥미가 뚝 떨어지는 기분, 아시는가? 생각보다 스스로를 응시하는 일에는 시큰둥해진다. 누가 날 궁금해하나? 보는 이도 시선이 메말라지고, 나도 그렇게 흥미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다.
이럴 땐 방법이 있다. 화살표를 돌리면 된다. 자기소개가 무엇인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기의 이름, 경력, 직업 따위를 말하여 알리는 일이다. 셋 다 안 궁금하실 테니 그냥 줄곧 좋아해 온 것들을 말해보고 싶다. 결국, 사람은 자신과 닮은 것, 혹은 비슷해지고 싶은 대상에 고개가 돌아가지 않던가? (일단 우겨)
일단 나는 '긴 것'이 좋다. 장편 소설. 긴 악장. 기다란 문장. 긴 시선.. 나열하면 되게 여러가지 겠다. 놀랍게도 초등학교 때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문학 말고 '재밌는' 소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재밌는 케미스트리나, 내 환경과 전혀 다른 상황을 지켜보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 그 시절 내 생일 선물은 서점에 가서 직접 고른 책 한 권일 때가 있었다. (나도 믿기지 않는다)
절대 사전 정보를 미리 알아가지 않고, 책의 표지와 뒷면의 간단한 요약 글만 읽은 채 서가 사이를 한참 헤맨다. 그 재미가 아마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 누가 떠먹여 주면 괜히 시니컬 해지고, 이미 너무 유명하게 알려졌으면 흥이 가라앉는다. 직접 내 취향에 맞는 걸 ‘픽’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공명’하듯 딱 끌리는 게 튀어나온다. 한 번의 호기심에 깊게 발을 들여놨다가,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쿵’ 하고 내 앞에 떨어진다. 그러면 한동안 그것만 바라보는 거다.
그때는 책이었고, 한때는 외국어, 언젠가는 글도 있었으며, 지금은 클래식이겠다. 이러니 인생이 재밌는 거다. 자꾸 스스로 앞에 흥미로운 걸 가져다 놓으니까 예측불허다. 그런데 그걸 누가 가져다준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셀프로 내려놓는다. (내돈내산)
같이 웃어준다면?
책을 좋아했던 조숙한 아이는, 음악 취향도 이상했다. 꽂히는 곡 속엔 반드시, 상공을 부드럽게 가르는 '포물선'이 있었다. 지금이야 클래식 선율을 통해 충분히 이해받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왜 나는 아래에서 시작해 위로 곡선을 그리는, 선이 있는 소리를 좋아하는지 의문이었다.
누군가에게 "이 음악이 왜 좋은지" 말할 때마다, 퍽 난감해서 입을 다물었다. "그게 예쁜 포물선이 있어서요..." (이상한 사람이다)
그때 들었던 게 보통 리베라 합창단의 노래나 팝페라 계열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중에 말년쯤 되었을 때, 내 기준으로 ‘토토가’가 열린다면, “저 할머니 이상해.” 소리를 들을 것이다. (분명히) 이래저래 내 주위에선 내가 ‘특이한 취향’을 가진 아이 중 하나여서 기본적으로 같은 취향을 누려줄 친구나 지인이 없었다. (파고드느라 찾을 생각도 못 했다)
자유롭게 말을 퍼뜨리기보다는, 내 안에서 질문을 중첩해가며 요상한 취향의 디테일을 쌓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클래식이 ‘두둥’ 나타나 말했다. "사실 너의 취향, 모든 근원은 나다!" 그렇게 크게 바이올린으로 외쳐주시는 바람에, 지금은 이렇게 말이 많아졌다.
사실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냐고 누군가 물으면, 이상하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단순히 이 음악을 좋아한다 말하기엔 듣는 방향이 편협하고, 이론적인 내용엔 관심이 부족하며, 듣는 작곡가도 난해하거나 뒤죽박죽이다. 쓰는 후기만 봐도 딱히 작곡가를 따라 듣기보다는, 당장 궁금한 연주가나 레퍼토리를 따라 손을 뻗는다.
아무래도 이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소리에 조금 더 시선이 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냥, 좋아하는 걸 너무 예쁘게 그려주는 화가가 무대 위에 있는데 어찌 마음에 담지 않을 수 있을까? 색연필과 물감이 저 활 끝에 있고, 투명하게 빛을 담아내는 소리는 저 건반 위에 떠 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적엔, 거의 대관령 양떼목장에 놀러 온 기분이다. (이러니 여행을 안 가지)
입으로 당장 뱉어내면 허황되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이 안에선 ‘당연’하고 누구보다 ‘훌륭히’ 해내야 하는 미적 요소다. 그 지점이 내 심장을 쿵쿵 뛰게 한 것 같다.
사실 한 사람이 무언가를 좋다고 크게 선언한다는 건 그만큼의 상당한 책임감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일인 것 같다. 내가 스스로 이것을 '좋아한다'라고 직접 인정하였으니, 그 앞에 부끄럼 없이 서 있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저곳을 다니게 된다. 조금이라도 흥미로워 보이면 기꺼이 발을 들인다. 굳이 엄청 끌리진 않더라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으면 간다. 어떤 때는 기대를 한껏 높였는데 지하 6층까지 실망할 때도 있었고, 심드렁하게 발을 들였다가 마음이 콩콩 뛸 만큼 좋은 한 문장을 받은 적도 있다.
이러니 중독적인 거다. 발전하는 재미, 발견의 기쁨, 해석의 다양성, 이방인과의 첫인사, 남몰래 쌓는 라포(Rapport), 나랑 같은 높이로 신나 있는 다른 관객과 조용히 느끼는 동질감, 의자에 앉아 뚝뚝 울어보기, 방긋 웃어보기, 시니컬 해지기, 잊고 싶지 않은 단어를 반복해 외우기… 나열하다 보니 끝이 없다.
보통 ‘새로운 경험’이라 함은, 어딘가로 향하겠다는 다짐 아래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그저 약소한 의지 하나로, 잠시 내 자리로 예정된 임시석에 슬쩍 앉았을 뿐인데, 나 혼자 감정선 아이맥스 위에 올라선 기분이다. 이런 재미가 있으니 가끔은 친구들을 꼬드기기도 한다. “같이 가서 보자—.”
다행히 선량한 나의 전우들은 한 번씩 내 곁을 동행해 주었고, 무슨 순회 돌 듯 한 명씩 클래식 공연을 관람했다. (음하하) 재밌는 일이다. 다 손을 뻗었기에 얻어진 것이고, 이곳도 그러하지 않던가? 아— 7월의 남은 공연도 이제 30일 하나다. (최애 나온다)
글을 써왔기에, 또 다른 글이 나타났다. 그 안에 담아낸 것이 ‘사람’이기에, 매 순간 나를 돌아본다. 그려진 것은 무엇인가? 대체로 ‘미소’겠다. 타인의 웃는 얼굴, 올라간 입꼬리를 보고 같이 웃을 줄 몰랐다. (그렇게 착한 사람도 아닌데)
이런 희한한 삶을 사는 와중에, 내면 소통으로 유명하신 김주환 교수님의 영상을 하나 봤다. 교수님이 뭐라 하셨던가? “인간이 뇌과학적으로 정말 행복하려면,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수밖에 없다—.”
어?
맞네. 저 말, 맞는 것 같다. (와그작, 오도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