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향수
자아를 형성하던 시기를 기억하시나요?
저는 어렴풋이, 정말이지 희끄무레할 정도로 그 시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다르고자 몸부림치고, 동시에 ‘단체’에 동화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중학생의 제가 A4 종이 위 그려진 수묵화처럼 흐리게 남아있습니다. 써두고 보니, 지금의 저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요.
우리가 과거를 반추할 때 노상 그렇듯, 저 또한 과거의 장면 장면을 짧은 영상처럼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주 듣던 노래, 친구들과 도란도란 하교하던 거리, 함께 급식을 먹던 맛 같은 것들이 일상을 살아가다 문득 떠오르곤 해요. 아 맞다, 예전에도 이 맛을 먹었었지! 이 거리를 정말 많이 걸었는데, 하고요.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함께 생각나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크고 나서는 잘 듣지 않게 된 노래들이 특히 짙은 향수를 가져다주죠.
이번에 다녀온 사운드베리 페스타 2025는 마음속 어딘가에 두고 온 그런 장면을 덧칠해 준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에 듣던 가수들의 노래를 밴드 라이브와 함께 다시 들으니,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그렇다고 과거의 기억만 돌아보고 온 것은 아닙니다. 캐스팅 자체가 과거와 현재의 균형감 있는 조화를 노린 것 같았어요. 기대하지 않은 채로 F & B 구역에서 듣다가 오,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무대도, 다음 순서인 가수를 위해 대기하던 중 공연 태도가 좋아 다시 보게 된 밴드도 있었습니다.

KK와 돌아온 골목길
제가 정말 기대했던 순서는 카미키타 켄과 아마자라시의 순서였습니다. KK라는 이름으로 사실 더 익숙한 켄 씨의 무대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는데, 첫 VCR부터 그때 그 감성이라 설레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 음악은 나와 너를 위한 음악이다.’, ‘내 음악은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다.’ 같은 문구부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역시, 그 시절 내가 느꼈던 사람 그대로구나! 싶은 안도감이 들었어요.
KK 씨는 외국인 관객들에게 일본어로 오래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주어진 50분 내내 거의 1분도 쉬지 않고 노래만 부르다 가셨습니다. 곡에 관해 조금 더 말해줬으면 싶은 마음과 덕분에 모르던 음악, 듣고 싶었던 음악으로 꽉 채운 50분을 즐기게 되어 고마운 마음이 교차했어요.
공연이 시작하고도 꼬박 하루, 노래를 곱씹는 내내 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창법이 어쩜 저리도 변하지 않았을까요? 첫 곡인 笑って咲いて(웃으며 피어나 줘)부터 꽤 많은 곡이 제가 모르는 노래였는데도 어딘가 익숙했습니다. 카미키타 켄 씨의 노래를 들으면 꼭 햇살이 똑바르게 들어오는 골목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복잡한 마음도 멈춰 있는 것 같은 인생도 그대로지만, 그래도 해가 드는 곳에 있다는 따뜻함. 툭 터지는 발성과 온기 가득한 멜로디가 이제는 굳어버린 입술을 어찌저찌 움직여서, 오래 기다렸던 ミスト(미스트)와 DIARY(다이어리)는 관객들과 함께 가사를 따라 불러보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여름은 지금의 한국보다도 더 덥고 습하다는데, 어떻게 이런 환상 속 여름의 느낌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그 숨 막히는 공기가 감정까지 벅차게 만드는 것일까요? 신기한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에, 꽃무니 자켓이라니! DIARY가 생각나는 최고의 착장이었습니다.
새로운 즐거움
다음으로 정해뒀던 아마자라시의 공연 순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중간에 공연 장소인 KINTEX를 구경하거나 F & B 구역에서 다른 공연자들의 음악을 듣기도 했습니다. 처음 공연장에 입장했을 때 무대 중이었던 REDOOR와 중간의 ONEWE가 기억에 남습니다. 두 밴드 모두 최근에 데뷔한 밴드로 알고 있는데, 관객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모든 무대를 보았던 ONEWE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보컬이 셋 이상으로 들렸는데, 그래서 그런지 긴 공연 시간에도 귀가 지루하거나 밴드가 먼저 지치는 일이 없다는 게 전략적으로 굉장히 똑똑한 선택인 것 같아요. 곡 사이사이마다 팬들, 관객들과 가깝게 소통하려는 열정과 공연했던 노래의 가사들이 참 좋았습니다. 보컬 중 키보드를 연주하시는 분 음색이 특히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비음이 탁 들어오는 색이 무언가 비장한 중국 미인 느낌이었습니다.
여러 아티스트가 모이는 음악 페스티벌의 특징이 이래서 좋은 것 같습니다. 보고 싶은 가수를 집어서 오더라도 새로운 음악을 알아갈 수 있으니까요!

하늘에 닿을 마음
오래 기다린 아마자라시의 공연은 역시나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사실 대단한 밴드라는 것과 노래 몇 곡만 알뿐 아주 잘 아는 밴드는 아니었던 터라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관람했는데, 추억을 덧칠한 것에 더해 새로운 짜릿함을 얻고 왔어요. 첫 곡이었던 KIMINO BEST LIFE도, 팬들과 함께 떼창을 했던 空に歌えば(하늘에 노래하면)도 모르던 곡들이었는데, 이제는 제 재생목록에 단단히 자리 잡았습니다.
얼굴 없는 밴드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무대 앞에 두른 얇은 휘장을 스크린 삼아 띄워준 가사 덕에 모르는 노래도 쉽게 알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카미키타 켄 씨의 무대도 정말 좋았지만, 가사를 화면 밑부분에 띄운 터라 사람에 가려져 볼 수 없었거든요. 아마자라시의 한국어 가사들은 전부 영상의 윗부분에 있어 뜻을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시절 제가 좋아했던 노래들은 대부분 어찌 보면 철학적이고 또 어떻게 보면 상당히 오글거리는 가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나라고 부르기 불확실한 반투명한 그림자가 살고 있는 모양이야,” 같은 추상적인 노랫말부터 “아뢰옵건대 꺼림칙한 과거에 고하는 절연의 시,” “고뇌투성이가 되어 한탄하는 슬픔” 같은 우울하고 서정적인 노랫말이죠.
그래도 우리에겐 이런 노래가 필요한 때가 있지 않나요?
괜히 외로웠던 사춘기 시절, 반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들었던 노래들이요.
어느새 훌쩍 커버린 저는 이제 변덕을 좀 부립니다. 우직하게 한 가수나 밴드만 듣지 않고, 장르까지 바꿔가며 이리저리 떠돌아요. 저에게 있어서 ‘어른이 된다’라는 건 하나에 깊은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워진다는 것 같아요. 이걸 들었을 때의 감동이 다시 들었을 때 얼마나 될는지, 지금은 내 가슴을 울리는 이 영화가 다음번엔 얼마나 시시해질지 감도 오지 않아 막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2025년 사운드베리 페스타에서의 기억을 좀 곱씹어보려고 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햇살이 사뿐히 내려앉은 골목길을 걸으며 그날의 곡 목록을 들어야지요. 그럼, 중학생 때의 내가 마음 어디서 다시 설레기 시작할 터입니다.

마지막은 자랑하기 위한 성규의 사진입니다. 데뷔 1집을 많이 불러줘서 행복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