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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들, <여름이 지나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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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시선으로 비춰지는 영화 속 사회는 가장 무섭고 솔직하다. <파수꾼>에서 느꼈던 또래 집단 사이의 소통과 계급, 폭력에 대한 시선은 초등학생으로 연령대가 낮아지며 더 날 것이 되었다. 어른에 가까워 이미 알 거 다 알고, 서열과 계급을 본능과 경험으로 체득한 고등학생들의 표정과는 확연히 다르다. 처음으로 폭력과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마주한 소년의 얼굴은 더 솔직하게 찡그려져 있다.


<여름이 지나가면>은,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갔고,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뒤바뀐 이야기로 남는다. 농어촌 전형으로 혜택을 받기 위해 시골로 이사를 온 ‘기준’은 전학을 위해 학교에 찾아간 ‘비공식 전학 첫날’부터 자신의 아디다스 신발을 도둑맞는다. 선생님에게 용의자는 이미 ‘영준’이란 아이로 특정되어 있고, ‘영준’은 형인 ‘영문’과 단둘이 사는 소년이다. (이 부분에서는 부모로부터 방치된 아이들에 대한 영화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그래도 <여름이 지나가면>은 <아무도 모른다>보다는 숨쉴 틈이 있다. 주위의 어른들이 영문과 영준의 사정을 알아서 식당에서 밥도 챙겨주며, 영준은 학교를 다니고 물도 나오는 집에 살고 있으니까. <아무도 모른다>보다는 방치의 수위가 낮아 ‘쟤들 어떡하지?’ 라는 심란한 마음도 조금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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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은 약한 아이들에게 삥을 뜯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옆학교에 다니는 동갑내기 남자아이에게 이른바 ‘서열질’을 하면서 동네에서의 위치를 굳혀 나간다. 부모님 없이 살아가며 동생을 지키고, 생계도 책임져야 하는 형이자 아빠의 역할을 하며 동네 아이들 위에 군림한다. ‘영준’은 습관적으로 도둑질을 하며 매일 같은 파란색의 옷을 입고 다닌다. 이들의 동네에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기준’은 이들이 만들어 둔 세계의 규칙에 편입한다. 운동화를 도둑맞고 잔뜩 기분이 나빠져 있었지만, ‘영문’의 눈빛에 굴복하여 자신의 신발을 신고 있는 ‘영문’을 보면서도 자신의 것이니 돌려 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사전정보 몇 가지 없이도 들리는 소문과 ‘영문’의 행색, 눈빛만으로 ‘기준’은 ‘영문’이 ‘센 사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플레이 스테이션을 하며 집에서 ‘석호’와 놀던 ‘기준’은 축구를 같이하며 어느새 ‘영문’ 형제와 친구가 된다. 어쩐지 ‘석호’보다 더 친한 것도 같다. 자신의 플레이 스테이션을 ‘영문’의 집에 가져가서 하고, 그들에게 언제든 해도 된다는 듯 그 집에 그걸 두고 나온다. 매일 그 집에 가서 놀고, 반장인 ‘석호’가 ‘영준’과 자신에게 하는 조용히 하라는 경고를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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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은 나중에 ‘영문’이 시키지 않아도 ‘영준’과 함께 돈을 훔치고, 망가져버린 플레이 스테이션을 새로 사기 위해 자전거를 훔친다. ‘영문’과 ‘영준’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저지르는 범죄들은 기준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있다. 처음 경험하는 폭력의 세계에 눈을 뜬 ‘기준’의 여름이 ‘영문’과 ‘영준’을 닮아가는 동안, ‘기준’에게 ‘힘’의 여름을 체험하게 만든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대학진학을 위해 이사를 추진하여 ‘기준’을 낯선 곳의 여름에 던져 버렸지만, 그 여름에 기준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는 짐작하지 못한다. ‘기준’이 전학 온 학교를 낮잡아보며 거지같다고 생각한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고, ‘영준’ ‘영문’과 친해진 모습을 보며 언제 친해졌냐고 의아해 하며 그들을 동정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영문’의 신발이 도둑맞은 기준의 것임을 알게 된 후에는 ‘영문’에게 밥을 사주며 기준을 불러내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늘 그렇듯, 엄마들은 모른다. 처음으로 폭력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를 맛보게 되면 그 세계를 선망하는 것은 그 나이대의 남자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들이 만든 질서에 편입하고자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기준을 불러낸 건 영문이 아니라, 기준이 스스로 그들의 세계에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것이라고. 엄마는 ‘기준’이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다’ 라는 말이 ‘기준’의 진심이라는 건 알지만, 그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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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폭력의 세계에 편입하는 것은 흔하고, 어쩌면 ‘기준’은 ‘영문’을 동경하고 있을 것 이라는 사실을 엄마는 모른다. 차에서 대판 싸우고 나서야, ‘기준’이 경찰서에 가고 나서야, 엄마는 일부러 외면한 것인지, 정말 몰랐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준’의 본성을 마주하며 ‘네가 쟤들이랑 같냐’고 말한다. 결국 ‘영문’과 ‘영준’을 안쓰럽게 보던 마음은 ‘기준’과 한발짝 멀어진 상태에서만 작동하는 마음이다. ‘질이 좋지 않은’, ‘불쌍한’, ‘부모가 없어 둘이 사는’ 아이들을 멀리서는 불쌍해 할 수 있지만 내 자식과 친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기준’이 ‘영문’을 선망하는 마음, 폭력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은 십대소년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보이기도, 보이지 않기도 하는 힘의 논리를 배워가며, 더 높은 층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들은 자연스럽지만, 그 시기를 이미 지나서 힘의 위계가 결국 소용없음을 알고 있는 어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비슷한 시절을 겪었을 아빠는 ‘영문’이 자신의 차에 오토바이 사고를 냈지만, ‘영문’을 다그치지 않고 괜찮냐 물으며 돈을 쥐어준다. 폭력의 세계와 힘의 논리에 대해 알고 있고, 이미 경험해본 사람은 가장 쉽고 안전하게 그 세계의 아이를 다루기 위한 방법으로 거절할 수 없는 ‘돈’을 선택한다. 아빠는 알고 있지만,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엄마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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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나가면>은 지나가지 않고 남겨진 여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영문’과 ‘영준’이 새로운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탄 채, 축구대회로 향하는 길에 버려진 플레이스테이션을 발견하는 것. 영준이 ‘나 안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 결말의 이러한 장면들은 외부인이 흔들어 놓은 이들의 여름이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문’과 ‘영준’은 보호소로 갔고, ‘영준’이 여름 내내 입고 다니던 파란색의 카라티셔츠는 위아래 회색의 깨끗한 반팔과 반바지로 바뀌었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동생을 지키며 나름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던 ‘영문’에게 남은 계절은 예측할 수 없는 것 뿐이다.


‘기준’은 이들의 여름을 뒤흔들고 다시 서울로 가버린다. ‘기준’에게 이 여름은 해프닝으로 지나갔겠지만, 이 여름으로 남은 인생이 뒤바뀐 아이들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다. 여름은 지나갔지만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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