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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립극단이 처음 선보이는 창작 신작 ‘삼매경’이 지난주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이번 공연은 국내 연극사를 대표하며 그 태동기를 함께 만들어간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원작으로 한다. 34년 전, ‘동승’이 처음 무대화 된 작품에서 주인공 동자승 ‘도념’역을 맡았던 배우 지춘성이 세월의 흐름을 온 몸으로 입고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 만큼 의미가 남다르다.


‘춘성’은 자신이 연기했던 ‘도념’역을 온전하게 완성하지 못했다는 미련 속에서 과거와 현재, 연극과 현실이 모두 뒤섞인 채 자신을 매혹하는 삼매경 속으로 기꺼이 뛰어든다. 그 안에서 그는 ‘도념’이라는 배역에 온전히 분(粉)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보지만 그럴 수록 깊은 무력감과 혼란 속으로 가라 앉는다.

 

 

 

배역 속에서 사는 배우의 삶을 곱씹다


 

[국립극단] 삼매경(2025) 공연사진02.jpg

 


극 중 춘성이 회귀한 1991년의 연습실에서 토해낸 감독의 열변이 유독 뇌리에 남는다. 배역 그 자체가 되기 위해 온 몸의 장기를 비워낼 만큼 자아를 버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 지기까지 하는 표현 속에서 새삼 배우의 당위성에 대해, 그 무거운 의무를 지고 사는 삶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배우란 ‘직업’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정체성에 가까워 보인다. 근무 시간 이후에는 ‘퇴근’이라는 개념 속에서 작업하던 파일을 망설임 없이 꺼 버릴 수 있는(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겠지만)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게 배우는 한 배역을 맡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그 배역이라는 껍데기 속에서 사는 애벌레가 된다.


그럼에도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비우고 배역과 자신을 합일한다는 것은 가능의 영역에 있지도, 그것 만이 바람직함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 껍데기 속에서 자신의 형체를 녹여내고 사는 애벌레가 종래에는 가지 각양의 나비로 재생(再生)하는 것처럼 배우의 당위성은 배역의 분신이 되는 것보다는 자신의 해석 대로 배역을 이해하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영원한 동승’으로 불린 ‘지춘성’이라는 배우의 삶 또한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작 중에서 그는 완벽한 도념으로 분(扮)하기를 소원하던 초반과 다르게 자신만의 은밀한 방으로 연극을 끌어 들인 후 연극의 모든 요소를 해체하고 균열 내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하기에 이른다.


이를 통해 관객은 작 중 사이 사이에서 34년 동안 도념이라는 껍데기의 흔적을 두른 채 살 수밖에 없던 인간 ‘지춘성’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배역과 합일하기 보다 배역을 품어 냄으로써 춘성은 비로소 자신과 도념의 서사를 무대 위에서, 연극 속에서 풀어내지 않았나.

 

 

 

삼도천을 건너는 순간에도 뒤돌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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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비단 배우의 삶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한 배우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그 이면에 심겨 있던 연극의 존재 가치, 그리고 그것이 전하고자 하는 우리네 삶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춘성은 삼도천을 건너는 순간, 그러니까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만난 상황에서도 자신이 생(生)의 모든 순간 몰입해 있던 연극을 홀연히 떠나지 못한다. 다시 한번만 ‘도념’이 되어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그의 집념은 자신을 괴롭게 할 것이 훤한 삼매경 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는 이유가 된다.


현실과 연극의 경계가 모호한 혼란스러운 장면들 속에서 그는 매 순간 미완성의 ‘도념’으로 남게 된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해 마지 않던 ‘도념’이라는 배역을 잔인하게 제거하면서 아이러니하게 스스로를 구원하는 춘성의 모습에서 우리는 ‘미완’의 의미를 재탐색 하게 될 것이다.

 

[“그저 연극밖에 몰랐던 아둔한 작은 배우가 이 극장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시어, 언젠가. 긴긴밤 잠이 안 오실 때, 오늘 보신 장면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깨무십시오.”]


혼란스럽고도 매혹적이던 삼매경이 막을 내리던 순간, 배우이자 한 인간인 ‘지춘성’이 내뱉는 담담한 이 대사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매 장면 치열하게 고뇌하고 갈등하였기에 매 순간 미완의 도념으로 남을 수밖에 없던 춘성의 삶과, 그것이 보여주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우리는 똑똑히 목도하였다.


어쩌면 삶의 의미란 그처럼 완성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살아있는 매 순간, 죽음을 앞둔 그 순간까지도 집념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완성을 향해 갔지만 끝내 닿지 않았어도 관객의 뇌리 어딘가에 자리 잡아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 문득 떠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춘성의 삶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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