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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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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사람 많은 곳은 질색이다. 다리가 간지러운데 긁지 못할 정도로 밀집하여 모여 서 있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나 서서 관람해야 하는 공연장, 축제장에 가기를 꺼린 것은 다 그 때문이다. 몇 명인지 모를 인파와 엉겨 붙는 것이 싫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밴드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페스티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유튜브에서 화면 너머로 들은 밴드 사운드나 떼창을 현장에서 들어보고 싶었다. 집이랑 멀어서, 일이 있어서, 이번에는 힘들어서 등의 이유로 미뤄오던 페스티벌 현장을 이번 < SOUNDBERRY FESTA'25(사운드베리 페스타2025) >로 처음 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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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사운드베리 페스타는 고양시에 위치한 킨텍스에서 19일(토), 20일(일) 이틀간 진행되었다.

 

며칠 전까지 비가 왔다는 것이 무색하게 하늘이 뜨거웠다. 그 아래에 조금만 서 있어도 피부가 익어버릴 듯했다. 나는 비교적 오후에 갔는데도 그 열기를 자랑하던 것을 보면 가장 뜨겁던 시간에는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그와 상반되게 건물은 서늘한 편이었다. 날씨 자체가 더웠다기보다는 햇빛이 뜨거운 것이었고, 햇빛이 들지 않는 킨텍스 건물은 서늘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말 동안 킨텍스에서는 페스티벌만이 아니라 <코믹월드 SUMMER 2025>도 함께 진행되었다. 뽀로로파크도 있는 곳이라 다양한 복장을 한 다양한 사람이 있었고, 강아지도 있었다.


티켓 부스는 티켓 예매가 가능했던 곳(무신사, 인터파크, 네이버 등)마다 부스를 설치해 사람이 지나치게 몰리지 않도록 정돈되어 있었다. 입장 시간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그 덕에 나는 티켓 수령과 입장까지 하는 데 오 분이 채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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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하여 공연장 오른쪽으로는 먹거리를 파는 곳이 있고, 왼쪽으로는 무대가 있었다. 금일 출연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이 전광판에 나왔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일요일 공연은 11시 20분 '프랭클리'가 문을 열었고, 내가 갔을 때는 '오월오일'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공간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무대와 멀리 서서 오월오일의 공연을 보다가 최예나의 무대부터는 가까이서 관람했다.(무대가 COOL STAGE와 FRESH STAGE로 나뉘어 있었는데 COOL STAGE 앞에 서 있어서 이 무대에 오른 출연자들만 가까이서 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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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있는 곳은 정식으로 'Standing Zone'이라 부른다. 직역하면 '서 있는 곳'인 이 공간이 오랜 시간 서 있다 보면 "열심히 서 있어 보세요~"로 느껴진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도 사람이 있고, 오른쪽으로 돌려도 사람이 있다. 커다란 노래 소리 때문에 심장이 쿵쿵 뛴다. 발을 옮기고 싶어져 다른 사람 발을 밟지 않도록 (자리를) 확인하고 싶은데 영화관처럼 무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을 어둡게 해 두어 그럴 수 없다.(방금 내 앞자리에서 플레쉬를 잘못 터트린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그것을 끄더라.) 빠져나가는 것은 어디 쉬운가? 자세를 낮춘 뒤 감금된 곳에서 탈출구를 찾듯 살금살금 빠져 나가야 한다. 멀리서 편하게 보는 그들이 일류다. 멀리서 보면 좀 어때? 가까이서 보겠다고 앞자리 차지하고 서 있던 걸 집에 돌아와서도 후회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는 것은 어느 명절 차 막히는 도로 위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어디서부터 차가 막혔는지 모르는 것처럼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를 파동이 나를 밀어 온다. 사람 하나 빠져나갔다고 바로 그 자리를 채우려는 작은 움직임이 큰 변동을 일으킨다. 어디선가 "밀지 마세요!"라고 말하지만 쉐도우 복싱을 한 것과 다름 없다. 와중에 가수는 뛰라고 한다. 평소에 해맑고 즐거워 보이는 사람이라 좋게 봤는데 이 순간만큼은 원망스럽다. 뒷사람이 손을 흔들 때마다 그 사람 팔에 있는 무언가가 자꾸 내 머리를 치고 있는 걸 저 가수는 모르겠지. 저 사람의 무대가 끝나면 나가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 순간을 고대하게 된다.

 

페스티벌은 처음 간 사교 모임에서 누군가 튼 노래를 듣거나 카페에 앉아 노래를 듣는 것과 같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온다고 해서 다시 들을 수 없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노래가 나온다고 해서 노래를 넘길 수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하나의 아티스트만을 기다릴지 모르지만 관객의 앙코르 요청에 몇 곡째 화답 중인 저 가수에게 언제 들어가느냐고 야유하지 않는다. 보고 싶으면 보고 보기 싫으면 보지 않는 유튜브와는 다르다. 무슨 노래인지 모르지만 내 스타일도 아니라서 적당히 호응을 하기도 하지만, 뜻하지 않게 마음이 가는 노래를 발견하기도 한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검색해보거나 며칠 후 올라오는 영상을 보며 그 가수의 노래를 다시 듣는다. 페스티벌은 잃은만큼 얻어가는 곳인가 보다.

 

페스티벌은 모든 것이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리허설을 한다고 하지만 공연 당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쉬지 않고 발생한다. 사람들이 많은 것도, 예상 못 하고 발생하는 사고도 좋아하지 않는데 그 두 가지가 결집되어 있는 곳에 다녀왔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모르지만 즐기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그들은 그곳에 모였다. 작은 무대 하나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환호하고, '유일한 지금'을 바라보다 끝에는 기분 좋은 아쉬움을 나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날 때까지도 사람들의 호응은 작아질 줄을 모른다.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완벽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유일한 지금'이라는 말은 루시(LUCY)의 <내버려>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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