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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상하다고 여긴 것이 있었다.

 

왜 사람들은 통통한 체형의 사람을 보고는 무절제하다며 일갈하고, 마른 체형의 사람을 보고는 동경하고 부러워할까. 어쩌면 이것까지는 인간의 기본적인 탐미주의적 성향으로 인한 한계일지도 모르기에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더욱 이상한 점이 있다.

 

누군가 인스타그램에 말도 안 되게 많은 양의 kg을 감량한 자신의 다이어트 성공기를 숏폼 콘텐츠로 업로드한다. 이윽고 댓글 창을 열자마자, 수많은 BEST 댓글들은 모두 하나로 귀결된다. "와, 절제력이 대단하세요. 끈기 대박..."과 같은 류의 내용들.

 

절제력이 있다-라, 필자의 생각에는 아무래도 뒤에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음식 한정'으로. 왜냐하면 그 사람은 '음식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는 데는 성공했어도  '미에 대한 탐욕'에는 절제력이 없는 사람임이 분명할 테니까.

 

 

 

탐욕 vs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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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보면, 모든 일에는 '중용'이 있다.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에 중용이 있으며, 그 지나침과 모자람은 모두 '악덕'이다. 악덕과 악덕 사이에 비로소 추구할 만한 미덕이 존재하기에 늘 양극단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다이어트 또한 그 양극단 중 하나에 속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음식에 대한 탐욕은 참아내지만, 미에 대한 탐욕은 더욱 가속화시키고 키워나가는 것은 결국 또 다른 무절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이어트를 또 다른 무절제라고까지 명하고자 하는 이유는 요즈음의 다이어트는 건강을 위한 목적보다 미용을 위한 목적에 과도히 치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용을 위해 가꾸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문제는 그 마음이 조절되지 못하고 탐욕스럽게 뻗어나가면 어찌 되는가에 있다.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서 식이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굶거나 말도 안 되게 적은 양을 섭취함으로써 살을 빼고, 먹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먹었을 때는 먹은 뒤에 바로 토해내는 방식으로 모면하려고 하다 위가 망가지는 등, 잠깐 떠올리기만 해도 수많은 문제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위고비'와 같은 비만치료제를 '다이어트약'으로 시판함으로써, 사람들의 욕망에 불을 붙이고 있다. 발전된 기술에 올라탄 욕망은 '부작용을 감수하고도 예뻐지려는 마음'을 키운다. '자기 관리'라는 명목하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자라나는 마음들은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왜 우리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걸까? 아름다움을 과도히 추구하는 욕망을 절제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이 질문에서 본 글은 시작되었다. 외모나 몸매에 대한 강박적 스트레스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물었으면 한다. 다이어트는 자기관리이고 살이 찌는 것은 무절제의 상징이라는 식의 흑백논리는 이면의 욕망을 감추고 있다.

 

아름답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제아무리 원초적일지라도 일정 정도 제한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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