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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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기는 행위  #작은 인간  #책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생각을 이야기와 그림으로 담는 작가 사이다입니다.



‘풀’, ‘고구마’, ‘가래떡’ 등 작가님의 그림책에 등장하는 주요 소재는 다분히 일상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쉽게 지나칠 수도 있을 작고 사소한 소재에서 특별함을 어떻게 발견하시나요?


사소한 소재라도 커다란 의미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저의 첫 그림책 <가래떡>은 새해에 첫날 먹는 음식이죠. 제 인생의 첫 그림책 소재로 삼기에도 적절한 소재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그 단어가 가진 의미가 좋아서 시작하게 된 책입니다. '곧'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직관적으로 책이라는 물성 자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상당히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단어 안에 숨은 뜻과 의미를 발견해 나가며 작업을 진행하는 게 적성에 맞고 재미있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정보일 수 있는데 작가님께는 이야기가 되는군요.


저는 이런 단순함에서 이어지는 사유가 예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단어 안에 숨은 의미들을 알게 될 때 느껴지는 감정은, 어떤 감명 깊은 예술 작품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순간과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렇구나’하고 깨달아지는 순간들이요. 그런 순간이 모여 저의 그림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그러한 가치관이나 작업 방식이 곧 독창성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깊이 들여다보면 매력적인 단어들이 엄청 많을 것 같은데요, 그 많은 단어들 중에서 한 가지를 어떻게 선택하시나요? 그림책은 한 권 만드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소재도 신중하게 골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주요 소재를 선택하는 작가님만의 기준이 있으신가요?


여러 단어 중에서 고민하긴 하는데, 어느 순간 마음에 들어오는 단어를 선택해서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그림책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1년 정도 그림을 그리며 작업을 이어 나간다고 하면 그사이에 또 얼마나 다른 단어들이 눈에 들어오겠어요? 그래도 일단 선택한 단어로 시작했다면 완성까지 하려고 노력해요. 특정한 시점에 제가 그 단어를 만났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시작했고, 함께하기로 약속했다면 다른 소재가 떠올라도 쭉 이어가 보는 거죠.



작업자에게 정말 중요한 태도 같아요.


좋은 주제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작업을 못 해요. 마음에 100퍼센트 들지 않더라도 시작하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이런 조언을 건네는 전문가들이 많아요. 결정적인 주제를 기다리기보다 오늘 하루에 한 장을 그리라고요. 비슷한 맥락인데, 어떤 내용을 처음부터 의도해서 글을 쓰기보다 쓰다 보면 내용이 나온다는 작가도 있잖아요.



신간 <곧 책이 열립니다>는 노래하는 듯한 흐름과 말놀이,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이미지로 그림책을 끌고 가는 느낌은 전작들과 비슷하면서도, 짜임이나 구성은 더 촘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고유한 스타일에서 어떤 부분을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게 돼요. 새로운 그림책을 출판하는 것도 결국엔 계속 배우고 더 좋은 책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라서 그런가 봐요. 특히 이번에는 디테일을 많이 넣으려고 시도했어요. 좀 많은 요소가 들어가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그럼 다음 작업에서는 또 덜어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Keyword 1. 넘기는 행위



이번 그림책에서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단어는 바로 ‘곧’입니다. 이 단어가 이야기에서 때로는 경고로, 때로는 독자를 안심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말씀하셨듯 ‘곧’으로 시작하는 문장은 다음 장면을 예고하는 역할을 해요. 이때 핵심은, 다음 장면이 미래가 되기 위해서는 독자가 반드시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는 점이에요. 다르게 표현하면 이 책은 독자에게 넘기는 행위를 요청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책이 열린다’라는 예고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독자가 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다음 장면이 전개되지 않아요. 그 행위에 관한 책이에요.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이야기에서 독자의 움직임을 예상하며 작업하셨을 것 같은데요, 흐름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 있나요?


우선 ‘아이가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다’라는 시작과 결말은 정해놓은 상태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그림책은 펼침면을 기준으로 16장면 정도거든요. 그러니 처음과 끝을 뺀 나머지 14장면은 작가의 놀음 안에 있다고 생각해서 자유롭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가 시작되고 나비를 보고, 나비가 아이의 실수임을 깨닫게 되고, 이미지를 따라가면서 이야기가 이어지는 방식으로 스토리보드를 구성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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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만, 문득 이렇게 주인공이 정면을 바라보는 장면을 넣어서 흐름을 한 번 끊는 재미를 주기도 했어요. 마치 영화에서 주인공이 문득 카메라를 바라보는 씬이 일반적이지 않은 것처럼, 이 책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하도록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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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관련해 모험이나 루프(회귀)와 같은 키워드를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넘기는 행위’를 요청하는 그림책이라니, 책 읽기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시에 의문도 생겨요. 책을 보는 독자가 책장을 넘긴다는 건 당연한 행위가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결과로 이해하시면 더 공감되실 거예요. 여러 권의 그림책을 출간하며 독자분들께 많은 사랑도 받았지만, 그만큼 그림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쉬이 외면받는지도 동시에 체감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이런 이야기도 태어난 것 같아요. 이 그림책에서 어떻게 보면 저는 독자에게 애걸복걸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제발 넘겨달라”고요.

 

 


Keyword 2. 책 



왜 이렇게까지 독자에게 간절하게 요청하나요?


제가 책이란 매체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곳저곳 강의를 나가다 보니 더 잘 보이기도 할 텐데요, 주말에 놀고 싶은데 강연장에 억지로 끌려온 아이들을 본 적 있어요. 그런 아이들 손에는 핸드폰이 꼭 쥐어져 있죠.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 같은 영상 매체에 훨씬 익숙해요. 책을 보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더더욱 그런 아이들에게 책이라는 매체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영상과 책의 차이는 역시 독자의 적극성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책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을 독려하고 싶으셨군요.


맞습니다. 영상은 한 번 틀면 그대로 보기만 하면 되지만 책은 독자의 행위 없이 볼 수 없다는 점이 특별한 것 같아요. 요즘 가끔 챗지피티에 물어보기도 해요. ‘책이라는 매체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 이 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하고요.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저에게 중요한 문제예요. 책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그냥 슬퍼요. 물론 영상도 너무 좋은 매체이지만 책만이 전달하는 온전한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고, 제게는 그게 굉장히 소중해요. 책이 영상에 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광범위한 책 분야에서도 특히 그림책이 갖는 힘은 무엇인지 궁금해져요.


아무래도 그림책은 여러 책 분야 가운데서도 ‘짧은 이야기’의 표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림책만큼 압축된 형식에 힘있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독특한 매체는 없다고 생각해요. 시에 비유할 수 있겠어요. 단순하니까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역할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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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는 이렇게 또 작은 ‘책’이 추가로 삽입되었네요. 책 속의 책으로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작가님의 언어로 들어보고 싶어요.


이 그림책에 관해 본문과는 다른 방식으로 더 설명해 줄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친절한 안내서처럼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귀여운 이야기나 장치를 넣었어요. 작가가 무인도에 산다는 유쾌한 기본 설정도 그렇고,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두 사람 이상이 만나야 한다는 연결된다는 세계관도 만들었죠. 독자와 조금 더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자세히 보시면 이 책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뿌리가 실은 전통 설화에서 비롯했다는 점도 깨알 같은 각주로 확인하실 수 있어요.

 

 


Keyword 3. 작은 인간



세 번째 키워드는 ‘작은 인간’이에요. 어떤 뜻인가요?


원래는 ‘어린이’라고 할지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작은 인간’으로 바꾸었어요. 저는 어른과 어린이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 편이에요. 다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분명히 차이는 있죠. 예를 들어 ‘농부가 밭에서 아주 작은 고구마를 캐면 어떻게 할까?’란 질문에 거의 모든 어른들은 대부분 ‘버린다’라고 답해요. 쓸모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어린이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귀여울 것 같아요’ 라거나 ‘다시 심어줘요’라고 답해요. 참 아름다운 대답이죠. 어린이의 마음은 어른과 달리 아름다워서 그래요. 반짝반짝하죠. 



저도 요즘 1~2학년 학생들과 그림책 읽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종종 깨닫는데요, 아이들은 그림책을 대하는 태도가 어른들과 다르더라고요. 어른 시야에서는 사소해서 당연히 지나치는 이야기를 꺼내게 만든달까요. 천연덕스럽게 질문하면서요. 가령 너무 단순해서 어떻게 읽어줘야 할지 모르겠는 장면을 갖고 아이들은 그 장면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를 묘사하며 즐거워한 적이 있어요. 망아지가 하늘의 비에게 '안녕'하는 장면을 두고는 '어떻게 비와 얘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들어와서 5분 동안 토론한 적도 있죠. 작가님도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나요?


아이들에게 <고구마구마>를 읽어 줄 때였어요. 한 아이가 왜 사람들이 고구마들을 죽이냐고 물었어요. 찐 고구마, 군고구마가 되면 고구마는 죽잖아요. 그 질문을 받고 대답을 줘야 하는 작가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한 적 있어요. 고구마를 죽이는 일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니 ‘나는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살아가는 일 또한 자신을 죽이는 일과 매한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우리의 목숨은 시간이랑 같은 말이잖아요. 분초 단위로 흐르는 시간을 남김없이 쓰는 모습에서, ‘우리도 마치 목숨을 바치듯 살아가는 게 아닌가? 어쩌면 우리가 삶을 사는 일은 고구마처럼 무언가가 되기 위해 늘 목숨을 바치는 일이구나, 그래서 나는 고구마의 스스로 요리하는 일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렸구나’  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메멘토 모리인거죠. 그 아이의 질문 덕분에 저의 생각이 더 깊고 명확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그림책에서 특별히 어린이를 의식한 장치나 요소가 있을까요?


어린이를 특별히 의식해서 작업하진 않았어요. 제가 생각할 때 어린이들은 그림책을 볼 때 마치 비를 맞듯, 온몸으로 받아들이지 않나 생각해요. 그게 또 아이들이 가진 힘이죠. 그래서 다시 세 번째 키워드인 ‘작은 인간’으로 돌아오면, 제가 집중하고 싶은 건 어린이 자체보다 ‘어린이성’이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린이성’이란 무엇인가요?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매체’라는 말이 이제는 그래도 많이 보편화된 문장인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림책은 아이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아까 언급했던 ‘어린이성’을 잃지 않는 것이요.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아이의 언어로 말하는 예술 책인 거죠. 



작가들이 그림책을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책’이라 열심히 외쳐 온 배경에는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림책의 예술성을 간과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이번 신간의 제작 측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사용된 후가공이나 별색 그리고 삽입된 별지는 ‘zine’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저는 이 그림책의 만듦새가 아트북 못지않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맞아요. 그래서 실제로 원화 작업 데이터와 별색 인쇄를 위한 데이터는 따로 있어요. 별색 인쇄하기 위해서 이번 책에서는 흑백으로 작업을 했어요. 양산형 그림책에도 인쇄와 후가공, 제작 면에서 이렇듯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림책 한 권의 결과물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기까지 작가와 편집자, 출판사, 인쇄소까지 모두 협업하죠. 이게 예술이 아니면 무엇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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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 작가


 

그림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이 있나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곧 호랑이가 나타납니다’ 다음 장면이요. 이 다음 장면은 독자의 예상과 좀 다를 거예요. ‘곧’ 확인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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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그림책 한 권이 있으신가요?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다시마 세이조의 <뛰어라 메뚜기>를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이 그림책을 보고 저도 그림책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힘있는 그림과 보잘 것없는 메뚜기에게 숨겨진 위대한 힘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그 뒤로 이수지 작가님의 <동물원>, <파도야 놀자>등의 그림책을 만나면서 그림책의 예술성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요.

 


나에게 그림책이란?


읽어주면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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