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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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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은 ‘즐거움을 위한 독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읽고 싶은 마음’보다는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는 동안 독서는 순전히 즐거운 것이 되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펼쳐 들었고 그러면 곧장 저녁기도를 드리는 수도원의 수사들 틈으로, 추수가 한창인 들판으로, 약초 항아리가 가득한 방 안으로, 촛불이 일렁이는 아치형 복도로 갈 수 있었다.

 

소설은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12세기 중세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끊이지 않는 전쟁의 여파는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흔들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을 떠나 ‘슈루즈베리 수도원’에 찾아온 이들은 주인공 캐드펠 수사가 풀어야 할 각자의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캐드펠 수사는 단순히 사건을 추리한다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바탕으로 진실에 접근해 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삶과 죽음, 선과 악, 종교, 사랑, 자비, 정의에 관한 다양한 철학적 질문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시리즈가 단순한 중세 미스터리를 넘어서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운명에 대한 깊은 사색, 대상을 향한 섬세하고 애정 어린 시선은 이 시리즈의 특별함이다.

 

후견인을 찾아 길을 떠나는 음유시인, 노예로 팔려 온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가수, 자신의 주인을 헌신적으로 섬기는 벙어리 수사, 한때 십자군 전쟁에서 활약했던 용맹한 수사, 과묵하지만 진실한 교회지기···. 작가의 섬세한 시선을 통해 묘사되는 다양한 인물들은 서사를 위한 하나의 장치가 아닌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지닌 ‘한 사람’이며, 그래서 독자는 모든 인물에게 마음을 열 수밖에 없다.

 

자비심은 없지만 칼날과 같은 정의감을 가지고 있는 남자, 폐허가 된 수도원을 위해 성물을 훔치려는 수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줄 모르는 헤픈 여자와 같이 단순한 선악 구조로 나뉠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 존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그 어떤 인물도 단죄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불완전한 인물들을 둘러싼 자연은 단순히 묘사되는 배경을 넘어서 시리즈의 중요한 사건에서 인간 존재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한다.

 

<위대한 미스터리>의 휘밀리스와 피데일리아를 휩쓰는 강물, <어둠 속의 갈까마귀>의 에르노스 수사가 죽음을 맞이하는 저수지, <성스러운 도둑>의 수도원을 덮치는 홍수로 등장하는 '물'은 인간의 운명과 맞닿아 있는 자연의 모습을 극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자연은 파괴적인 힘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끝내 다시 회복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인간이 잃은 것의 이상의 것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인간도 그런 자연을 닮아 결국 자신의 질서를 찾아간다.

 

중세의 운명론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세계와 인간 운명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놓치지 않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중세의 어둠보다는 약초 정원의 따듯한 빛을 마음속에 남기는 책이다. 아마 한 권의 책을 덮을 때마다 그 빛의 여운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어질 것이다.

 

이번 '로열 골드 컴플리트 에디션'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이 다채로운 이야기를 음미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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