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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종종 문득 떠나고 싶어 한다. 뜨겁고도 투명한 공기, 눈부신 도로 위로 번지는 아지랑이. 도피를 부정하고 견디는 것이 최선처럼 여겨지지만, 어쩌면 도피가 해방의 시발점이 될 수는 없는 걸까. 아니, 도피가 해방의 다른 얼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백만엔걸 스즈코>(百万円と苦虫女, One Million Yen and the Nigamushi Woman)는 떠남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떠남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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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코는 떠나는 사람이다. 도피가 아닌 해방을 위해서라고 말하듯, 여름빛에 번들거리는 도로를 지나 마을을 옮기고, 이름을 숨기고, 사람들과 얕게만 스쳐 가며 살아간다. 그녀는 작은 방에서 백만 엔을 모은다. 그리고 그 돈이 모이면 아무 미련 없이 떠나버린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혹은 그 누구도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듯. 스즈코의 여정은 조용하지만, 잔혹할 정도로 단호하다.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인가요?”

 

“아니요. 오히려 찾고 싶지 않아요. 찾지 않아도 내가 한 행동에 따라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무리 싫어도 여기 있으니까요. 도망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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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마을,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공기.

 

떠나는 발걸음 뒤에 숨은 건 결국 자기 자신이다. 낯선 동네에서도 사람들은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무슨 사연을 지녔는지, 왜 혼자인지에 관해 묻는다. 그러한 시선은 끝내 그녀를 다시 익숙한 자기혐오에 빠트린다. 자신에게서 비롯된 수치와 두려움은 그녀가 선 곳마다 스며들었다. 그래서인지 스즈코는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새로운 직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동료들의 술자리에서도 웃음만 흘리며 중심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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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코에게도 한때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지만, 스즈코는 끝내 머물지 못했다. 스즈코는 나카지마를 사랑했고, 나카지마 역시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나카지마가 그녀에게 돈을 빌린 건,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그의 발버둥이자 소심한 표현이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을 숨긴 채 지속된 관계는 오해가 쌓여 결국 상처가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카지마는 뒤늦게 스즈코를 찾아 헤매지만, 길은 자꾸만 엇갈린다. 캐리어를 끌고 육교 위에 선 스즈코는 “올 리가 없지”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다른 마을로 향한다. 이제는 상처를 받고도 스스로 떠나기를 선택한, 그녀의 단단하고 당찬 발걸음을 비춘다. 영화에서 스즈코의 여정은 도피에서 시작되었지만, 어쩐지 해방을 향해 가는 듯 보인다.


그녀는 새로운 공간에서 자신을 이방인으로 세운다. 어느 곳에서도 중심에 서지 않고, 사람들의 친밀한 관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서 있다. 조금 웃고, 조금 이야기하다가, 누군가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 조용히 도망친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은 어쩐지 가볍고도 처연하다.


홀로 떠나는 여행에서는 주로 자신을 소거했다. 익숙했던 태도와 말투를 버리고, 낯선 공기 속에 몸을 섞으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 드러나면, 그것이 나였음을 깨닫게 된다. 소거할수록 나의 원초적 흔적은 짙어진다. 자신을 지우고자 했던 여정에서, 결국 소거되지 못한 자신을 만난다. 스즈코에게는 회피하고자 할 때마다 온 힘을 다해 다른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내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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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와 자유의 경계는 모호하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도피가 해방의 일부일 수는 없는 것일까?


백만 엔은 스즈코에게 물리적 도피 비용이자, 감정의 선 그음이었다. 사람들과 깊이 엮이지 않는 한계선. 과거를 끊어내는 절박하고도 단순한 방법이다. 그러나 자기혐오로 점철된 과거는 체내에 남은 금속 조각처럼, 문득 아프게 들러붙어 고통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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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코의 여정은 어쩌면 도피 역시 해방으로 가는 길일 수 있다는 희미한 가능성을 남긴다. 스즈코의 동생 타쿠야는 누나와 달리 머묾을 선택한 사람이다. 학교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지나가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쿠야는 전과자가 되었음에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떳떳하게 나아가는 누나를 보며 머묾을 선택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타쿠야가 자신을 괴롭히는 애들과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비로소 스즈코가 도망친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사람은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거라고 생각해. 그 헤어짐이 두려우니까 누나는 무리를 하고 있었어. 그렇지만 만나기 위해 헤어지는 거라고 방금 깨달았어.”

 

 

도피는 결국 하나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

 

 

“누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도망쳐왔지만, 이번에야말로 다음 마을에서 제대로 자기 다리로 일어서서 살아가려고 해. 타쿠야에게 용기를 얻었어. 고마워.”

 

 

스즈코가 떠나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 아니다. 떠난 끝에서도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남아 있다. 그녀가 다시 일어서려고 한다는 이 한 줄의 고백에서 그녀의 자아가 느껴진다. 그녀의 떠남은 그녀를 끝없이 소거하면서 스즈코를 남겼다.


스즈코의 발걸음은 해방을 향해 닿을 듯하지만, 여전히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서성인다.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 무엇도 아직은 그녀의 손에 없다. 그녀는 자아도 찾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아 그보다 깊은 속에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만은 분명하다. 그녀의 떠남은 자신을 지우기 위한 몸부림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다리로 다시 서보려는 결의이기도 하다.


낙원은 도망친 곳에 없을지 몰라도, 도망친 끝에는 때론 진정한 내가 남을 수도 있다. 도피에 장황한 이유도, 원대한 목적도 필요 없다. <백만엔걸 스즈코>의 필름처럼 푸르름이 번지는 계절, 무작정 떠나 페르소나를 벗어 던질 때, 사람은 어쩌면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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