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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SPC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지난 22년,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은 이후에도 사고는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 당시 SPC 그룹 회장이 안전한 일터가 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음에도 25년 또다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현장에는 여전히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채 노동하는 이들이 있다. 비단 SPC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발표하는 ‘이달의 기업 살인’시리즈를 보면 지난 5월만 하더라도 53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 글을 쓰는 날에도 한 노동자가 더위 속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계속되는 산재 소식을 지켜보며 이들의 죽음이 온전히 애도 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2년 SPC 사고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고, 많은 시민과 함께 불매 운동에 동참했다. 노동자의 피 묻은 빵을 먹지 않고, 산재 뉴스에 귀 기울였다. 더 이상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것,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내가 바라는 애도였다. 하지만 지금도 산재 사고는 현재진행형인 이야기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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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극단Y 공식 X(@theatre_Y_play)

 

 

<로비 : 기어코 그 손을 잡고>(이하 <로비>)에서는 착실하게 ’노동’과 ‘산재’라는 동시대 주제를 다룬다. 연극은 시대와 함께 살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서, 언젠가는 누군가가 꼭 산재에 대해 연극에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던 찰나 만난 <로비>는 참 반가운 작품이었다.

 

<로비>의 이야기는 동시대 관객으로서 모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공장에서 근무하다 사고로 사망한 희서, 그리고 그런 희서를 위해 매일 회사 로비에 ‘노동자의 피묻은 빵은 더 이상 먹지 않겠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는 희수. 그 기업의 빵을 보면서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다는 인선, 그리고 정애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동시에 <로비>에서는 많은 동시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희수와 연대하는 복희는 청소 노동자로 부정적인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다, 갑작스럽게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는다. 동시에 지금은 사별한 애인 강인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복희의 곁에 서 있는 인선 역시도 비정규직 노동자로 어떻게든 자리를 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연극에서 이들의 삶은 로비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겹치고 겹치며 결국 연대에 이르게 된다. 함께 피켓을 들고 서 있는 희수와 복희, 그 곁에 함께해주는 인선. 이들을 위해 매일 꽃을 준비하는 정애, 그리고 그 곁을 맴도는 죽은 자인 희서와 강인까지. 여전히 희수와 복희는 투쟁 중이지만, 그럼에도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극 중 등장인물의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이들의 마음은 바뀌었다. 함께 연대를 다지는 이들의 모습은 관객에게도 그 손을 잡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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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이 손을 내밀기까지, 내가 그 손을 잡기까지 아쉬움과 망설임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연극의 이야기는 앞서 언급했듯 동시대 관객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산재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며, 관객 모두가 이 문제의 중요성을 알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산재 소식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했다.

 

동시대 관객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소재를 다룬다면, 적어도 연극은 우리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생각에서 한층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산재에 대한 깊은 고찰과 논의 후에 이야기를 만들어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비>에서 산재를 다루는 방식은 지금 당장 우리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나열 같았다. 이 연극의 이야기에 대해 깊이 공감했으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산재, 연극에서 요청하는 연대에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극장에서 분명 관객들, 그리고 배우들과 함께 같은 감정을 느꼈으나 더 생각의 진전을 느끼지는 못했다.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무기력함과 사건에 대한 정보의 나열 속에서, 나는 선뜻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로비>라는 작품이 정말 반가웠고, 산재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는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산재란 너무나도 거대한 사회 구조가 얽혀있는 갈등이었으며,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불확실해 무기력했다. 그 무기력감을 이겨낼 방법을 찾기 쉽지 않았다. 그런 시점에 <로비>를 만났고, 작가는 어떤 해답을 제시하고 있을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극장에서 마주한 이야기는 기존의 감정과 생각에서 크게 나아가지는 못한 이야기여서 아쉬웠다.

 

소재가 가진 힘이 크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에. 그러나 소재 자체의 감정에만 기대어 충분한 고찰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연대의 메시지는 흐려질지도 모른다. 예술은 삶의 문제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산재에 대해 관객이 함께 더 깊이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으면 더 의미 있는 연극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산재란 깊고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꾸준히 이야기해 주기를 바란다.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끌어와 들려줄 수 있는 매체가 예술, 그리고 연극이라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산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세상이 변하지 않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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