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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단 한 번뿐이라는 전제는 모든 것을 가볍게 만들지만, 그 가벼움은 때로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밀란 쿤데라는 그 모순적인 감정인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존재가 겪는 혼란을 감정의 결로 풀어낸다. '한 번뿐인 삶'이라는 비가역성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선택과 감정, 관계를 덧없게 만드는 동시에 그것에 무게를 실어버린다. 이 책은 철학적 담론이라고 볼 수 있는 주제를 딱딱한 개념이 아니라 서사와 감정, 구체적인 인물의 삶을 통해 말한다는 점에서 깊이 인상적이다.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따라 헤매보는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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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사랑이란 건 결국 우리가 의미를 부여한 우연의 총합이라는 말이 아닐까. ‘우연’이 계속 겹치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진다.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드는 장면처럼, 설명할 수 없는 질서와 아름다움. 사랑은 필연보다 오히려 이런 ‘우연의 축적’을 통해 기억되고, 우리를 사로잡는다. 사랑은 인과가 아니라 의미의 겹침으로 작동한다는 말이 문득 실감 난다.

 

“그러나 B를 위해 A를 배신했는데, 다시 B를 배신한다고 해서 이 배신이 A와의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혼한 여자 예술가의 삶은 배신당한 그녀 부모의 삶과는 닿지 않았다. 첫 번째 배신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첫 번째 배신은 그 연쇄적 작용으로 인해 또 다른 배신들을 일으키며, 그 하나하나의 배신은 최초의 배신으로부터 우리를 점점 먼 곳으로 이끌게 마련이다.”

 

이 구절은 배신을 단순한 선택의 결과로 보지 않는다. 배신은 일시적인 감정의 오류가 아니라, 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전환점이다. 어떤 관계를 끊고 다른 관계를 선택하는 순간,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궤도에 놓이게 된다. 첫 번째 배신은 본인의 판단, 가치 세계가 변화했다는 선언이다. 그 이후의 행위들은 단순히 과거를 반복하거나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건 속에서 다른 의미가 있다. 따라서 그 선택 이후의 삶은 비슷한 지점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같지 않다.

 

“공포는 하나의 충격, 완벽한 맹목의 순간이다. 공포에는 모든 아름다움의 흔적이 결핍되어 있다. 오로지 우리가 기대하는 미지의 사건이 내뿜는 광폭한 빛만 보일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슬픔이란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을 상정한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그들을 기다리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공포의 광채는 휘장에 가리고, 우리는 전보다 세상을 훨씬 아름답게 만드는 푸르스름하고 부드러운 빛 속에서 세상을 발견한다.”

 

슬픔은 공포와 다르다. 공포는 막연하고 폭력적이다. 예상 불가능한 순간이 모든 판단을 마비시킨다. 하지만 슬픔은 알고 있는 감정이다.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왜 아픈지를 아는 감정. 그래서 더 조용하고, 오래 간다. 토마시와 테레자가 마지막에 도달한 상태는 바로 이 ‘슬픔의 평온함’에 가까웠다. 공포에서 벗어나, 슬픔으로 진입했다는 것. 그리고 그 슬픔 속에는 아름다움이 묻어 있다. 슬픔을 긍정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쿤데라는 분명히 말한다. 슬픔은 우리가 무언가를 정말 이해하게 되는 감정이라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인간 존재를 가볍다고 말하면서도, 그 가벼움이 불러오는 무게를 끝내 외면하지 않는다. 쿤데라는 복잡한 철학적 질문을 삶의 결 안에 녹여낸다. 우리는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앞에서 자신을 정의하며 끝내 어떤 감정 속에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그 모든 과정이 모여 '존재한다'라는 것의 의미를 빛낸다. 이 책은 그 존재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하게 만들고, 그 질문을 안고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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