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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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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뿐인 책 


 

전역이 두 달 정도 남았을 무렵, 남은 병 자기 개발비를 쓰려고 인터넷 서점을 헤매고 있었다. 그때, 김영하 작가님의 신작 『단 한 번의 삶』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고,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모든 것이 제한됐던 훈련병 시절,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잠시나마 자유를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현실을 위로받았던 그때처럼 이번에는 삶의 의미를 다시 깨닫고 싶었다. 막상 이 책을 읽은 건 시간이 꽤 지나서였지만 다 읽고 난 후에도 여운이 남았다.

 

 

다른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때로 어떤 예감을 받을 때가 있다. 아, 이건 이 작가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구나.

 

내겐 이 책이 그런 것 같다. 그런 책을 너무 일찍 쓴 것은 아닌가 두렵기도 하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다.

 

(『단 한 번의 삶』, "후기와 감사 그리고 인생 사용법" 中)

 

 

이 책은 작가의 내면 구석구석을 모두 모아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책이라고 한 것 같다. 젊은 시절부터 50대가 된 지금까지, 사유와 성찰을 압축해 담은 기록이다. 사실, 너무 가감없이 드러나 있어서 놀라기도 했다.

 

책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회용으로 주어진 삶의 유한성에서 비롯된 고민들을 이야기한다. 다 읽고 나니  깊은 생각에 빠졌고, 단 한 번뿐인 군 생활이 단 한 번의 삶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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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터미널에서


 

마지막 휴가의 마지막 날, 부대로 복귀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서울터미널은 올 때마다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곳은 나에게 휴가 첫날의 설렘과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에어팟을 끼고 노이즈 캔슬링을 켠 채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헤엄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나를 그곳에서 건져 올렸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군복을 보고 고생한다며 말을 걸었다. 평소 같으면 “네. 하하...”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슬금슬금 피했겠지만, 할아버지의 무언가 살아 있는 듯한 눈빛이 대화를 이끌었다.

 

 

 

타인이기에 공감할 수 없는 지점


 

할아버지는 퇴역군인이자 두 아들을 모두 군인으로 키우신 분이었다. 아들 둘이 모두 주임원사라면서 이놈들 이놈들 하시는데, 부대에서 제일 높은 주임원사님들도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점이 새삼스러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군대 이야기가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군 생활의 끝에 다다른 나에게 정말 수고했다며 격려해 주셨다.

 

나는 요즘은 그 시절보다는 군 복무가 덜 힘들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군 생활의 힘든 점은 고충을 어디에도 털어놓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말씀하셨다. 민간인이 되고 나면 그 시간을 알아주는 이도 없다고 하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는 자식 자랑과 손주 자랑을 더 듣다가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해 헤어졌다.

 

나 역시 주변 친구들에게 군대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기란 망설여진다. 나만 아는 세계를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겪어 보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지점이 분명 있다. 집에 주임원사 아들들이 있음에도 처음 본 군복 입은 청년에게 말을 걸었던 행위는,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의 비밀


 

 

나는 오래 궁금했던 것을 그분들에게 물었다.

“저희 어머니, 결혼 전에 무슨 일 하셨어요?”

친구분들이 내 질문에 약간 놀라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너 몰라?”

“얘기 안 하셨어요.”

“너네 엄마...”

잠깐의 짧은 침묵

 

“...여군이었잖아.”  

 

(『단 한 번의 삶』, "엄마의 비밀" 中)

 

 

어머니의 빈소에서, 작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엄마를, 사실은 별로 알고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마치 제한된 정보만으로 독자가 적극적으로 상상해 내야 하는, 소설 속 인물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만 아는, 다른 이가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작가의 어머니가 여군이었던 사실을 끝까지 자식에게 숨겼듯, 내 삶에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잘 알기에 타인에게 말을 꺼내도 완전한 이해를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작가의 어머님도 아마 그래서 그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기억의 반감기


 

전역 후, 나는 마치 중요한 무언가를 두고 온 듯한 공허함이 느껴졌다. 매일 오르내리던 PX 가는 길, 잠을 청하던 작은 침대, 한겨울 내내 지겹게 쏟아지던 함박눈을 치우던 도로들, 그리고 그럼에도 아름다웠던 화천의 하늘까지. 이제 돌아갈 순 없고 정말 내 추억 속에만 남아 점점 흐려진다.


군대에서의 시간은 이제 오롯이 내 머릿속에만 있다. 하지만 그 순간들도 시간이 흐르면 점점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누구도 대신 기억해 줄 수 없고, 결국 나조차도 언젠가는 잊는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은 더욱 희미해지고 상상과 뒤섞일 것이다. 무엇이, 누가 실제로 어떻게 존재했는가는 모호해질 것이다. 기억에도 반감기가 있다면 그것은 언제일까.

 

그날의 빈소에서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삶』, "엄마의 비밀" 中)

 

 

 

결국 남는 건


 

누군가의 삶을, 심지어 스스로의 삶조차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아무도 내 지난 시간을 완전히 알아주지 못한다. 혼자서 애써 붙잡아봐도 모든 것은 서서히 옅어져 간다. 사람은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끝없이 변하고, 지난 일은 머릿속에서 조금씩 각색된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옅어지고, 마지막에는 몇 장면만이 남는다.

 

쓸쓸하지만, 그래서일까 그 덧없음이 오히려 가장 완전한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 사실이 ‘단 한 번의 삶’에서 내가 가져갈 만한 유일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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