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만하다'라는 말은 대부분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닌다. 집중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흐트러진 상태. 그동안 살면서 '산만함'은 추구해야 될 가치라기보다는 지양하고 경계해야하는 형용사였던 것 같다. 하지만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는 산만한 사람들을 대변하며, 산만해도 괜찮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 책이 말하는 유익한 산만함이란 과연 무엇일지에 초점을 맞추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산만함을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때때로
정신을 느슨하게 하지 않으면 집중력은 지속되기 어렵다(p.56)
산만함에 대한 인상깊은 재해석으로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많이 남았던 문구이다. 우리는 흔히 '집중'과 '산만함'을 반대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지만, 이 문장은 오히려 둘이 순환하고 상호작용하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늘 몰입 상태로만 존재할 수는 없고, 오히려 순간의 일탈, 멍때림, 잡생각, 정신의 유랑이 집중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책은 단순히 정신이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진 상태를 옹호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산만함’은 무질서한 주의력 산만이 아니라, 오히려 ‘몽상’에 가깝다. 고요한 상태에서 사색에 잠기거나, 자기 내면과 대화를 나누며 사고를 확장시켜가는 모습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나, 몽테뉴의 저서들도 그렇게 탄생하지 않았는가.
이 책은 우리가 효율성만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속도를 높이려 할 때, 그 속도를 늦추고 사유의 리듬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하는 ‘산만함’은 오히려 ‘비움’에 가깝고, 때로는 ‘명상’에 닿아 있다.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깊은 몰입과 창조를 위한 토대가 되는 시간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한국 사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쓸모없는 일은 시간 낭비라고 간주하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명확한 결과 없이 예술을 감상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그저 생각에 잠겨 있는 시간은 무가치하게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무용(無用)’의 시간이야말로 오히려 우리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고 말한다. 산만한 사유는 게으름이나 나태가 아니라, 내면을 리셋하고 창조적 감각을 되살리는 귀중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산만함을 훈련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언뜻 들으면 엉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만히 있는 훈련, 지루함을 견디는 습관, 목적 없이 현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몽상’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과정에서 오히려 통찰이 피어나는 경우가 있다.
니체가 그의 대표적 사상인 ‘영원회귀’의 아이디어를 스위스의 어느 호숫가를 산책하며 떠올렸다는 일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책상 앞에서 고심한 끝이 아니라, 목적 없이 걷는 동안 떠오른 귀중한 사유.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니체의 철학을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자주 멈추고, 천천히 흘러가며, 아무 목적 없이 사유하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책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는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는 풍경,
그저 취향에 맞아서 듣고 있는 음악,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정처 없이 걷는 산책,
그 모든 것이 정말 ‘무의미’한 것일까?
오히려 그런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고, 생각의 흐름을 되살리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순간 속에서 우리는 종종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의 시작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책은 그 조용한 출발의 가능성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