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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에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는 남아 있지만, 희극에 대한 부분은 소실되었다. 미학이나 철학 수업 시간에 종종 나오는 이야기인데, 나는 그 사실이 꽤 재밌었다.

 

왜 하필 희극이었을까?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고, 지금 우리는 절대 알 수 없는 사연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대부분의 철학자나 사상가들은 희극보다 비극을 더 ‘고귀한 것’으로 여겼다. 웃기는 것보다 진지한 것이, 가벼움보다는 무거움이, 익살보다 고통이 예술적으로 더 깊다고 생각했던 거다.

 

물론 그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나도 비극을 좋아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비극은 주인공의 고통에 공감하게 만들고,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비극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 유한함, 운명의 아이러니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정말 멋진 일이다.

 

그런데 나는 희극이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희극은 가볍다. 아니, 가벼운 척을 한다. 풍자와 과장, 슬랩스틱과 말장난, 현실을 비트는 뻔뻔한 상상력. 누군가는 그런 희극을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삶의 이면을 본다. 어쩌면 희극은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현실을 비껴서 조명하는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을 보면 늘 비슷한 생각이 든다. 수상자 대부분은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이 눈물 흘리며 수상소감을 말한다. 반면, 희극을 연기한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다. 코미디 쇼에서 개그맨들은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웃음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그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자존감을 지키내려는 시도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진지한 연기는 누구나 멋있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웃기기 위해 망가지는 건, 정말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희극은 겉으로는 가장 가볍지만, 어쩌면 가장 용감한 장르다. 가벼움으로 무거움을 다루는 방식, 슬픔을 가장 유쾌한 방식으로 끌어안는 방식. 희극은 삶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웃음'으로 바꾸어낸다.

 

내가 가장 공감하는 철학자 중 한 명인 알베르 카뮈는 삶이 본질적으로 부조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삶을 긍정하라고 제안한다. 나는 그 말에서, 희극이야말로 삶을 긍정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희극은 부조리를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장하고, 풍자하고, 웃어넘기고, 때로는 코웃음을 친다.

 

그 웃음 속에는 단순한 기분 전환 이상의 것이 있다. 희극은 우리에게 말한다. 인생이 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한번 웃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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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자주 유튜브를 본다. 잘 만든 코미디 영상 하나에 히죽거리다가도, 가끔은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 든다. 그들의 유쾌한 말장난과 뻔뻔한 설정, 과장된 리액션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씁쓸한 한 조각을 본다. 그리고 그걸 보고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진짜 위로라는 생각이 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끝내 우리에게 남기지 못한 '희극론'은 어쩌면 우리가 직접 써야 할지도 모른다. 삶은 언제나 비극과 희극의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나는, 그 경계에서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진지한건 누구나 한다. 하지만 웃기는 건 용기 있는 자만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희극이 더 멋지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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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걸 탐험하며 멋나게 인생을 채워나가고 싶은 폼생폼사 인간, 강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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