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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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애도의 과정을 겪는다. 사전적으로 애도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애도 안에 담긴 슬픔과 울적함으로 인해 대개 애도의 방식은 고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죽음이 가진 무게 때문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정된 애도 방식이 모든 사람의 슬픔을 전부 풀어줄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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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애도를 중심으로 세 편의 작품을 담아낸 소설집이 있다. 소설가 안윤의 『방어가 제철』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표출하고, 망자를 기억하고, 내일을 살아간다. 그 방식이란, 거창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인물들의 태도는 누군가를 잃은 사람보다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지금보다 더 다양한 애도의 방식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이별 방식이 풍부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 편의 소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요리를 하며: 「달밤」


 

「달밤」은 친구 소애의 생일상을 차리는 과정을, 이미 망자가 된 은주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아내는 소설이다. 서간체 형식인 이 작품에서 화자는 소애가 먹고 싶어 했던 육개장을 정성스럽게 만들면서 은주 언니에게 내내 말을 걸고 있다.

 

편지를 쓰면서 화자는 은주 언니와의 추억을 상기하면서 그녀를 그리워한다. 그 추억의 중심에는 나눠 먹은 음식이 있다. 가난해도 각자 번 돈으로 비엔나커피를 마셨던 달콤한 기억, 대패삼겹살 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던 씁쓸한 기억, 해물탕이나 양념 갈비를 먹으며 아프지 말라고 다독여주었던 아련한 기억이 편지 안에 전부 담겨 있다. 때문에 음식을 차리면서도 화자는 은주 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육수를 우리고, 콩나물을 데치고, 애호박전을 부치는 등 상세한 요리 과정을 나열하는 것은 화자가 은주 언니를 애도하는 하나의 과정인 셈이다.

 

작중에서 화자는 정성들여 만든 육개장을 밥상 위에 올려놓고 마주 앉은 소애의 생일을 축하한다. 얼큰한 육개장을 떠먹고 배 향이 나는 술을 마시며 두 사람은 소박한 축하 자리를 마무리하지만, 소애가 잠든 뒤 화자는 한 번 더 상을 차린다. 이번에 차리는 상은 은주 언니를 위한 제사상이다. 소애의 생일이 바로 은주 언니가 세상을 떠난 날이기 때문이다.

 

제사상을 차리는 화자는 소애의 생일상을 차릴 때와 마찬가지로 담담하다. 흰 전지를 깔아둔 상 위에 육개장과 반찬, 은주 언니가 늘 태우던 담배 한 갑, 차가운 소주가 올라가고 화자는 달이 뜬 밤, 은주 언니에게 고백한다. 누군가의 생일이 곧 기일이라는 사실을 말하기가 무서워 여태껏 피해 왔다고. 그건 은주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한때 화자를 고통스럽게 했던 마음 상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 은주 언니의 장례식장에서는 미지근한 육개장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던 화자는 은주 언니를 떠나보내고 일 년이 지난 사이, 얼큰하고 뜨거운 육개장을 제사상에 올리며 하고 싶었던 말을 풀어낼 수 있을 만큼 회복한다. 슬픔의 상징이었던 음식을 다른 감정으로 담아내는 방법을 이제는 안다. 그렇기에 새까만 밤하늘을 은은하게 비추는 달빛을 마치 은주 언니로 여기며 한술 뜨고 가라는 화자의 어투는 마냥 슬프지 않다.

  

 

은주 언니. 거기 있어요? 오늘 언니는 내 얼굴을 볼 텐데 나는 또 못 보겠네요. 왔으면 서 있지만 말고 앉아서 한술 뜨고 가요. 늘 하던 것처럼 곁에서 천천히 담배도 한 대 태워요. 여기 하늘도 좀 올려다보고요. (「달밤」, 32쪽)

 

 

 

식사를 하며: 「방어가 제철」


 

「달밤」이 요리로 떠난 이를 기억한다면 「방어가 제철」은 식사로 애도기간을 채운다. 화자는 친오빠 재영과 그의 친구 정오와 어울리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가 부재하고 어머니가 일을 하느라 바깥에 나가 있는 시간이 길다는 공통점을 가진 세 사람은 책, 영화, 음악을 공유하고 라면과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그저 남매와 친구로 엮여 있는 듯한 이들의 관계는 꽤 돈독하다. 흡사 부모-자식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관계에서 화자는 재영과 정오를 보호자인 엄마보다 든든하게 생각한다. 한 일화로, 미대에 가고 싶었던 화자는 엄마의 반대로 인해 미술 학원조차 다닐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때 도움을 주는 이들이 바로 성인이 된 재영과 정오다. 둘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화자의 미술 학원비를 내주며 화자의 꿈을 응원한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준 것이다. 가장 절실한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재영과 정오 덕에 화자는 두 사람의 지원을 등에 업고 꿈을 향해 나아갈 원동력을 얻게 된다.

 

삼각형을 이루는 모서리 하나가 사라지면 쉽게 무너지는 것처럼, 단단한 끈으로 묶여 있는 듯한 이들의 관계는 재영의 죽음을 기점으로 끊어지게 된다.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재영이 크레인에 깔려 사망하자, 화자는 자신이 받은 미술 학원비가 오빠의 사망원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죄책감에 미술을 포기한다. 정오 역시 갑작스러운 재영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화자와 연락을 끊어 버린다.

 

화자와 정오는 어머니의 장례 이후 17년 만에 재회한다. 간만에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은 겨울 제철 음식인 방어회를 나눠 먹는다. 그리고 3년 동안 화자와 정오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마다 만나며 제철 음식을 먹는 사이가 된다. 봄에는 봄나물과 두릅을, 여름에는 삼계탕을, 가을에는 삼치구이와 대하찜을, 그리고 다시 겨울이 되면 방어회를. 같은 슬픔을 지닌 사람들이 먹는 같은 음식. 이들은 슬픔을 나눠 먹으며 그간 묻어두기만 했던 정서를 비로소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정오와의 만남이 끝이라는 예감이 들 무렵, 화자는 언젠가 갚겠다고 했던 미술 학원비를 정오에게 내민다. 화자가 내민 돈봉투를 받은 정오는 어느새 흐느끼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화자는 조용히 말한다. 정오에게 재영이 단순한 친구가 아닌 연인이었음을 알고 있었다고. 그간 연인관계를 비밀에 부치느라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정오와 사랑하는 오빠를 떠나보낸 화자는 비로소 각자가 가진 아픔을 털어놓고, 길었던 애도 기간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감정을 훌훌 털어버린 화자와 정오는 이제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단절은 마냥 슬프지 않다. 결말에서 화자는 “오롯이 그리워할 수 있게” 된 순간을 떠올린다. 재영와 정오의 사랑을 목격했던 순간을. 그리움을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남겨둘 수 있게 된 화자는, 앞으로 돌아오는 계절마다 쓰라림만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열다섯 살의 여름방학, 뜨거웠던 한낮이었다. (…) 그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이름 옆에 오빠의 이름을 자신의 것보다 더 신중하게 쓰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봤다. (…) 짧은 침묵 속에서 우리 셋의 눈길이 마주쳤다. 그때,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이 돌이킬 수 없이 분명해졌다. 영영 알아차리고 싶지 않을 만큼, 눈이 부셨다. (「방어가 제철」, 72-73쪽)

 

 

 

음식을 나누며: 「만화경」


 

앞선 두 작품이 친밀한 관계에서의 애도를 말한다면,「만화경」은 사적인 친분이 없는 인물들이 그리는 애도에 대해 말한다. 세 번의 유산을 겪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나경은 이혼 후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려던 나경의 바람은 같은 건물에 사는 집주인 숙분으로 인해 깨지고 만다. 숙분이 가지각색의 방식으로 나경에게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나경이 집 밖을 나서는 모습을 보는 일, 대답 없이 빤히 얼굴을 쳐다보는 일, 자신을 ‘302호 아가씨’라 부르는 일, 전세 계약 날 다짜고짜 생시를 물었던 일. 숙분과 교류할 생각이 없었던 나경에게 이러한 관심은 감시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경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회사 컴퓨터에 ‘재말유(재계약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는 폴더까지 만들어 그 이유를 적기도 한다.

 

어느 날, 101호에 숙분의 친구 단심이 새로 들어오고 건물의 분위기가 바뀐다. 적막감이 감도는 건물은 숙분과 단심 또래의 노인들이 수다 떠는 소리와 단심이 전을 부칠 때마다 풍기는 기름 냄새로 가득 차게 된다. 단심이 부친 전은 건물 세입자들은 물론 나경에게도 닿는다. 대나무 채반 위에 올라간 가지각색의 전을 받은 나경은 답례로 쿠키와 초콜릿을 단심에게 건넨다. 이 일을 계기로 언제나 날이 서 있던 나경의 표정은 한층 부드러워지고, 다른 세입자들과도 말을 트게 된다.

 

단심과 숙분은 왜 굳이 타인에게 관심을 두고 음식까지 나누는 걸까. 그 이유는 단심과 나경이 집 안에서 사고를 당한 숙분을 발견하고, 병원까지 동행하게 되는 사건에서 드러난다. 숙분의 수술을 기다리던 단심은 옆에 앉은 나경에게 과거 이야기를 꺼낸다.

 

나경이 302호로 오기 전, 이미리내라는 여성이 세입자로 지낸 적 있었다. 세입자인 이미리내와 집주인 숙분은 서로 이름과 얼굴만 알 뿐, 별다른 친밀함을 쌓지 않는다. 그러던 중 이미리내가 갑작스럽게 집에서 돌연사한 채 발견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미리내가 무연고자라는 사실을 그녀의 사망 후에 알게 된 숙분은 마음이 쓰인다. “미안하잖아. 그렇게 혼자 가게 한 게.” 비록 2년 남짓 살다 간 세입자지만 숙분은 이미리내의 유품을 직접 정리하고 장례까지 챙겨준다.

 

이후에도 숙분은 이미리내의 사십구재가 되는 날까지 302호 안방에 제사상을 마련하고 향을 피우며 그녀의 영혼을 달랜다. 식당을 운영하던 단심도 따로 전을 부쳐서 제사상에 올리고 건물의 다른 세입자들도 찾아와 애도를 표한다. 숙분과 단심이 타인에게 허물없이 다가가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나눠 먹는 행위는 외롭게 떠난 이미리내를 잘 보내기 위한 그들만의 애도 방식이자, 같은 경험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따스함을 건네는 숙분과 단심의 행동은 세 번이나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나경의 지친 마음까지 어루만져준다. 자신의 상흔을 직시하게 된 나경은 소설 말미에 친분이 없는 사이에서도 애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도 숙분과 단심이 그랬듯이,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애도를 표한다. 이미리내의 이름을 부르면서.


 

전화를 끊고 회사 옥상 난간 앞에 서서 한낮의 오피스 타운을 굽어보았다. 아마도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 바쁘게 인도를 오가는 근처 직장인들의 정수리가 작은 점처럼 보였다. 길 위에서 무수한 점들이 모이고 흩어지고 흘러갔다. 오랜만이었다. 이유도 모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웃은 것이. (「만화경」,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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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작품은 모두 ‘음식’이라는 일상적 소재로 애도를 표한다. 인물들이 저마다 실행에 옮긴 이 애도 방식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방법들이 애도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요리하고, 먹고, 나누는 것으로. 이처럼 간단한 일은 왜 하필 죽음이 당도할 때만 어려워지는 걸까. 어쩌면 슬픔에 압도되어 죽음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잊고 있는 건 아닐까.

 

실제로 9년 전, 언니이자 엄마였던 막내 이모가 병마와 싸우고 있을 때, 나는 언젠가 이모에게 다가올 낯선 죽음이 싫어 자주 책으로 도망쳤다.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내가 집은 책은 대부분 아픔과 이별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활자 속에 잠겨 있으면서도 죄책감이 나를 건드렸다. 사랑하는 사람은 지독한 병으로 몸부림치는데, 나는 한가하게 책이나 읽는 게 맞는가. 그만큼 죽음은 당사자에게도, 지켜보는 나에게도 어떻게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 몰라 두려운 존재였다. 이 시기에 읽었던 『백의 그림자』, 『소년이 온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은 괴로운 시절의 상징으로 남고 말았다.

 

장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시점에 나는 내가 읽었던 책들을 순서대로 다시 펼쳤다. 매끈한 종이를 피부로 느끼고 서사를 읽어 나가면서 나는 장례식에서 그랬던 것처럼 실컷 울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행동은 나도 몰랐던, 나만의 애도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작별을 말한 덕분에 나는 상흔으로 기억했던 책을 다른 의미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막내 이모를 병들고 안타까운 사람으로만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죽음은 여전히 두렵지만, 잘 보내주는 법과 이승에 남은 나와 주변 사람들을 돌보는 법을 배웠기에.

 

가지각색의 사랑을 퍼부어주었던 막내 이모가 떠오르면 나는 항상 같은 말을 한다. 굿바이. 꼭 다시 만날 거란 믿음에서 나오는 인사. 다음 생에서 우리는 반드시 재회할 것이다. 그 믿음을 꼭 쥔 채, 사랑이라는 단어로 그녀를 기억할 내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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