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레자식 매일같이 무위도식, 내가 바로 조선에서 제일 씩씩?!”
등장하자마자 ‘조선수액’을 부르며 능청스럽게 씩 웃는 모습에서 '단'에게 매료된 관객이 많을 것이다. 천둥벌거숭이 같던 단이 골빈당에 들어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조선의 자유를 되찾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고, 시조대판서에 맞서는 인물로 성장해가는 과정은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보는 큰 즐거움이다. 지금까지 여러 배우가 자기만의 매력적인 단을 보여줬지만 역시 ‘단’ 하면 쇼케이스를 포함해 모든 시즌에 참여한 배우 양희준이 떠오른다. 이 작품으로 뮤지컬 데뷔를 한 그는 "신인답지 않은 무대장악력"이라는 평과 함께 이야기 속 단처럼 차근차근 성장해 왔다.
학생들의 졸업작품으로 시작한 작품이 사연에 이르는 동안, 신인상을 받고 울음을 참으며 수상소감을 말하던 배우도 어느덧 7년차가 되었다. 무대에서 단으로 웃고 운 날들이 쌓여가며 이제는 단이 곧 자기 자신인 것처럼 익숙해졌지만, 이제는 또 다른 책임감이 함께 따른다. 지금의 양희준에게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그리고 단이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일까. 무대 밖에서 만난 그는 차분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인터뷰는 앞으로 계속될 그의 이야기의 작은 이정표다.
우리의 방향성은 고급스러운 B급
쇼케이스를 포함해 지금까지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매 시즌 빠짐없이 참여하셨어요. 시작부터 함께하신 만큼 이 작품에 애정이 깊을 것 같은데, 이번 공연은 어떤 마음으로 참여하고 계신가요?
저에겐 둥지 같은 작품이라 편안하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많이 느껴요. 새로운 시즌을 맞이할 때마다 새로운 배우, 스태프분들과 함께 저희 작품의 방향성을 지키면서 좋은 공연을 만들려 여러 방면으로 노력합니다. 이번 시즌도 그래요.
그 방향성이란 무엇인지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고급스러운 B급’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듯해요.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거든요. 그렇다고 너무 헤프거나 가벼워져서는 안 돼요. 연습할 때면 다들 웃기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데, 그럴 때 우리가 너무 나가면 완전히 개그가 되어버린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하죠. 웃는 건 관객의 몫이니 우리가 너무 강요할 필요 없고, 대본 자체에 이미 충분한 에너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균형을 잡아갑니다.
모든 시즌에 참여하신 만큼 다른 배우들에게 많은 의지가 될 것 같습니다.
보통 배우는 나무를 보고 창작진은 숲을 본다고 하는데, 저는 초연이 올라가기 전부터 함께하다 보니 자연스레 숲도 보는 입장이 된 것 같아요. 인물을 연구할 때 감정 전달 같은 부분 말고도 이 인물이 극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줘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도 생각하거든요. 이런 식의 접근이 다른 배우들에게 도움이 될 때도 있는 듯해요.
다른 배우들과 어떻게 호흡을 맞춰가는지, 평소 공연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도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저희 공연에서 데뷔한 배우들은 어딜 가든 늘 잘하고 사랑받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안 좋은 습관이 보이거나 할 때는 선배로서, 형으로서 이야기를 해주려는 편이에요. 또 무대에서 감정이 증폭될 수 있게끔 텍스트에는 없는 내용에 관해서도 자주 이야기해요. 뮤지컬은 2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내에 여러 가지를 압축해 표현하기에 생략된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대본에는 없지만 이 인물은 이때 이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 상상해보는 거죠.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최근에는 골빈당 멤버들과 함께 이 작품이 뮤지컬이 아니라 영화였다면 ‘기선’과 ‘순수’는 마지막 장면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쳤을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 내용을 전제로 하고 극의 끝에 나오는 ‘운명’ 장면에 들어가니까 모두의 감정이 훨씬 더 선명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단과 양희준 사이에서
단이 이제는 또 다른 나처럼 익숙할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인물에게서 새롭게 발견하는 모습이 있나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기보다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단과 양희준의 싱크로율이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한다기보다 단으로서 기쁘고 단으로서 슬픈 느낌이랄까요. 처음엔 ‘단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런 전제 없이 무대에서 제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표현합니다. 물론 최근에는 인물에게 너무 깊이 이입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고,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배우고 있어요. 그걸 잘하는 사람이 진정한 프로인 것 같아요.
단을 표현할 때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매 순간 단이 살아 있는 인물로 보이게끔 노력을 많이 해요. 예를 들어 단의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도 인물들의 대화에 세심하게 반응하는 식으로요. 관객의 시선을 빼앗아 갈 정도로 과하지는 않되, 마음과 생각이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미세한 표정으로 드러나도록 장면마다 집중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 관객들은 몰라줄지 몰라도 가까이 있는 배우들에게는 큰 영항을 주는 것 같아요. 지금 이 대사를 단이도 듣고 있다, 공감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 생겨나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런 에너지가 계속되면 결과적으로 극 전체가 더 좋아진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 유독 잘 우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어떤 장면에서 감정이 가장 많이 벅차오르는지 궁금해요.
스토리 외적으로는 ‘시조의 나라’요. 이 작품을 처음 시작해 여기까지 온 과정이 다 떠오르거든요. 함께한 배우, 고생한 창작진들이 생각나면서 벅차오르는 장면이죠. 스토리와 관련해서는 그날그날 달라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큰 날에는 1막의 ‘새로운 세상’에서, 백성들의 아픔에 크게 공감하는 날에는 2막 ‘새로운 세상(Reprise)’에서 울컥하죠. 한 가지만 꼽기는 어렵더라고요.
예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상태에 따라 단의 모습이 달라진다고 하신 것과도 연결이 되네요. 요즘 배우님의 상태나 모습 중 단에게 반영되는 것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특히 비 오는 날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비가 내리면 감각이 더 예민해지고 감성도 풍부해져서 무대에 설 때도 표현이 한층 다양해지더라고요. 오늘도 비가 내려서 깊은 감성의 단이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인물은 이야기 속에 머물러 있는데 배우는 흐르는 시간에 따라 나이 들어갈 때 묘한 기분이 들 것 같아요. 단이에게 배우님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단이 저보다 어린 나이였지만 동생으로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제가 나이를 먹을수록 배울 점이 많은 인물로 느껴져요.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씩씩하게 개척하는 모습이 특히 그렇죠. 저는 점점 겁이 많아지거든요. 예전엔 단처럼 무엇이든 부딪혀보자,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컸다면 이제는 잘하는 사람도 많고 무서운 것도 많아서 위축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더 단을 존경하게 됩니다. 제가 해줄 말이 있다기보다 오히려 제 꿈에라도 나와서 뭔가 필요한 말을 해주면 좋겠어요. (웃음)
작품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른 인터뷰에서 신인상을 받고 달라지는 것보다 계속 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초연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많은 것이 변했는데,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저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고 느끼는데, 특히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듯해요. 한 작품 한 작품을 소중히 집중해서 하겠다는 마음이요.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있어요. 저는 되게 느린 사람이에요. 연습하며 뭔가 잘 안 풀릴 때 제가 느려서 그러니 많이 알려달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다른 작품 때문에 바빠서 그렇다고 말하기는 싫거든요. 그게 제가 작품을 하며 지키려는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합니다.
원래 30대 중반쯤 주연을 맡는 것이 목표였는데 꿈을 일찍 이뤘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30대 중반인 지금은 어떤 새로운 꿈이나 목표를 갖고 계신가요?
지금은 구체적인 목표보다는 부족한 저 자신을 파악하고 그걸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니 잘하는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나요. 아직 데뷔하지 않은 친구들 중에도 뛰어난 사람이 많고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스스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 하고요.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나답게 살기 위한 이들의 이야기, 나만의 ‘스웨그’를 갖기 위한 고군분투의 이야기로 느껴지는데요. 배우님만의 스웨그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느리고 부족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잃을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그러다 보니 연습실에서도 잘하는 척을 안 하려 해요. 처음부터 부족한 부분을 솔직하게 드러내서 오히려 거기서부터 도약을 하려는 타입이죠. 그렇게 하니 내가 못 하는 걸 들키면 어쩌나 걱정을 안 해요. 그게 제 스웨그인 것 같아요.
시간이 더 흘러 돌아봤을 때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배우님께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요?
저희 작품이 ‘신인등용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요, 저 역시 이 작품으로 뮤지컬 데뷔를 한 만큼 앞으로도 둥지 같은 느낌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분들에게도 이 작품이 시작이자 둥지가 되기를, 그리고 여기서 출발한 사람들이 계속 좋은 배우로서 관객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관객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지금 저희 멤버들이 ‘황금세대’라 불릴 만큼 정말 출중한 분들, 앞으로 대성할 분들이 많아요. 새로 오신 분들은 눈빛부터 다르거든요. 직접 오셔서 그 원석들을 미리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또, 새로운 배우들과 기존에 계시던 배우들이 서로에게 자극받고 배워가며 정말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거기서 나오는 밝은 에너지를 관객분들에게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