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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집착하는 시대_표1.JPG

 

 

"창의적이어야 해."

 

참 익숙한 말이다.

어릴 때는 왜 그런 말을 듣는지도 몰랐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그 말에 스스로를 맞추고 있었다. 나만의 색깔을 가져야 하고,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해야 하며, 평범하면 안 되는 것 같았다.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고, 그 말이 마치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를 읽는 내내 마음 한쪽이 찌릿했다. 이 책의 저자, 새뮤얼 W. 프랭클린은 우리가 지금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역사와 사회가 만든 산물이라고 말한다. 타고난 재능이나 인간 본연의 능력이 아니라, 전쟁과 경쟁, 자본주의와 교육제도의 필요 속에서 조립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특히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의 흐름 속에서 창의성이 어떻게 지금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은 꽤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예술, 기업, 학교, 심지어 자기계발서까지... 창의성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정답처럼 여겨졌고, 그것 없이는 도태될 것만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문득 나 자신에게 물어보게 됐다.

"나는 왜 그렇게 창의적이고 싶었을까?"

순수한 이유였을까? 정말 무언가 새롭고 재밌는 걸 만들고 싶어서였을까?


솔직히 말하면, 사회의 기준 안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책의 결론 부분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예술과 창의성을 동등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예술의 핵심이 새로움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창의성을 예술의 근원으로 단정 짓는다면, 인정을 받거나 소통하거나 전통적인 지혜를 전수하는 것과 같은 다른 동기들에 대한 생각은 차단된다."


 

나는 이 문장을 여러 번 곱씹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창의성을 예술의 본질로 여기곤 하지만, 사실 예술은 소통하고, 기억하고, 나누고,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런 마음들이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창의성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건 아닐까?

 

가끔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진짜 창의적인 사람은 늘 창의성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느긋하게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햇빛이 드는 창가에서 혼자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정해진 틀을 깨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지금 내 자리에서 진심을 다하는 사람.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더 이상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말에 조급해지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내가 사랑하는 것들, 관계, 평화, 감사 같은 것들을 더 많이 곁에 두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지금보다 조금 더 내 안의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피어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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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걸 탐험하며 멋나게 인생을 채워나가고 싶은 폼생폼사 인간, 강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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