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MBTI는 10년이 넘도록 INFP로 고정되어 있다(바꾸고 싶어 미치겠다). INFP의 특징으로는 이런 표현이 많다.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적 사고를 지닌 이상주의자 유형으로, 예술·문학·음악 분야에 끌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이다.
일부는 확실히 맞는 것 같긴 하다. 나는 종종 회사 옆 건물에서 갑자기 좀비 바이러스가 터져 사회가 혼비백산이 된다거나, 갑자기 하늘에서 녹색 비가 떨어진다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또, 공부하는 것 빼고는 다 좋아해서 그림 그리기, 책 읽기, 음악 듣기 등 여러가지 예술 활동을 즐겨했다. (하지만 예술을 잘 알고 활용하기 위해선 누구보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항목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나한테 창의적인 사고가 있던가?
이 ‘창의성’이라는 단어는 특히 취업 준비를 할 때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약간 이과 느낌 직무(개발이나 통계 같이 숫자 쓰는)에서는 잘 안 보이는데, 광고나 마케팅과 같은 문과 느낌 나는 직무에서는 정말 잘 보인다. 기업 매출 정산을 창의적으로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기업은 재직자가 기존에는 만나보지 못 했던, 엄청나게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하여 매출에 대박을 터뜨릴만한 아이디어를 도출해내길 원한다. 그들에게 창의적인 사람이란 무, 아니 거의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의 도약을 만드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해는 간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성공을 하면 명성이 쌓이고 돈이 들어온다. 뭔가 극단적인 자본주의 느낌이 나긴 하지만, 기업에게는 매출이 전부다. 신박한 광고나 독자를 휘어잡는 미디어를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라는 말이 공통적으로 나오게 된다. 그들의 ‘창의적인’ 결과물을 보면 놀랍고 대단할 뿐이다. 그렇기에 다들 기를 쓰고 창의성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단어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아니, 창의성을 요구하는 ‘사회’가 싫어졌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언제부턴가 지금의 사회는 인간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에 창의성을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계획적이고 리더십 있는 사람들을 찾더니, 이제는 창의성까지 갖추기를 바라고 있다.
나도 창의적이고 싶다. 또한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가지고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해도, 기존에 있던 것을 살짝 변형한 것에 가까워 그들이 이야기하는 창의성을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하물며 초반에 작성한 MBTI에서도, 알파벳에 ‘S’가 들어가는 순간 창의성이란 단어는 모습을 감추게 된다. 규칙과 계획을 중요시하는 ISTJ, 치밀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끝마치는 성격의 ISFJ, 조직적인 성향의 ESTJ 등등. 해당 성향을 가진 사람은 주로 이상보다는 현실적인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창의성이 없는가? 그런 사람들은 창의적이지 못해 우대사항에서 언제나 배제되는가? 아니,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규율과 규칙을 중시하는 회사라는 조직 안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니던가? 물론 여기에는 MBTI에 과몰입하지 않고 비유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분명히 한다.
창의성이라는 게 도대체 언제부터, 왜 이렇게 다들 목매는 단어가 돼버린 걸까?
도서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는 오늘날 범람하는 ‘창의성’에 대한 단어의 시작부터 현시대에는 어떤 식으로 그 단어가 자리 잡고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창의성이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능력이라기 보다, 20세기 중반 냉전 시대의 정치·사회적 요구 속에서 숭배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기존에 존재했던 단어들인 ‘독특함’, ‘상상력’, ‘뛰어남’ 등과는 다르게 세련되고 매력적인 개념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전후의 창의성 숭배는 예술가들이 대체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특성, 즉 획일성 탈피, 일에 대한 열정, 인간적이면서 심지어 도덕적이기까지 한 감수성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선호를 과학, 기술, 소비문화에 적용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책은 또한 창의성이 어떻게 특정한 사회적/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소비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익숙하다 생각했던 ‘창의성’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창의성이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왜 우리가 창의적이기를 바라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짐작 가능하듯이 ‘창의성’은 심리학자들의 각광을 받았다. 그들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창의성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창의성을 측정하며 창의적인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테스트를 고안했다. 엘리트주의적인 관점을 대체하고, 소수의 천재가 아닌 창의적 잠재력을 지닌 다수에게 기회를 열어줄 수 있기를 기대했다.
별개로 학계 외에서는 브레인스토밍과 창의적인 인재를 활용하는 경영 기법들이 확대되었다. 그들에게 있어 창의성이란 개인의 성공을 위해 계발되어야 할 능력으로 본 셈이다. 이에 따라 기업은 개인이 가진 창의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경영 방식을 도입해 매출을 올리고자 했다. 또한 창의성을 활용해 냉전 시대에 무기 개발의 중심에 있던 엔지니어들을 ‘예술가적 면모를 지닌’ 자들로 둔갑시켜 대중의 지지를 얻게끔 하기도 했다.
심리학자들에게는 정의하기 어려운 이 모호하고 문제적인 개념이 왜 그토록 매력적이었을까? 그 답은 창의성이 이미 심리학 전통을 확립한 오래된 개념들, 즉 천재성, 지능, 상상력, 발명성 같은 개념들 사이에서 새로운 공간을 차지했다는 사실에 있다. 창의성은 영웅적이면서도 민주적이고, 낭만적이면서도 실용적이며, 사회적 문제와 심리학 내부의 문제 모두에 대한 해답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이 책은 무작정 창의성을 비난하지 않는다. 창의성은 엄연히 우리에게 있어 가치있는 것이라고 보고, 창의적인 사람은 대단하다고도 본다. 과거에도 이를 숭배하기보다, 사회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지 않았는가. 단지, 창의성 그 하나에만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할 뿐이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언제나 적당한 것이 가장 좋은 법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창의성에는 그 적정선이랄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반드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이 아니라, 기존에는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에서 약간의 변형이나 차이점을 떠올리는 것도 창의성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에서 1.1을 만드는 정도로 말이다. 기존에 사용되고 있던 카피라이팅 문장의 단어나 어구에 조금만 변형을 줬더니 매출이 두 배 올랐다고 하면, 그것도 창의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0에서 10을 만들면 당연히 좋겠지만, 1에서 2로만 올라가도 나는 그 사람이 충분히 뛰어나다고 인정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