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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죽음으로부터 빌려온 찰나라고 셸리는 말했다.

 

사실 삶이 더 괴로운 것이라고, 죽은 자가 별천지를 향해 가는 동안 살아남은 이들은 부두에서 죽음의 기운에 벌벌 떤다고 말했다. 산 자는 필연적으로,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며 일생을 보낸다.


영정 속 인위적인 미소를 보며, “아니야, 그 사람은 저렇게 웃지 않았어.” 생각했다. 어른들은 번듯한 예의와 문장으로 형식적 다정함을 나눴지만, 발인의 순간은 모든 의례를 무너뜨렸다. 멍들지도 않은 손톱이 빠져버린 것처럼, 구겨진 주름 사이로 고통이 흘렀다. 어른들의 ‘격조’가 무너지는 날에는 잠에 들지 못했다. 어느 날 나의 손톱이 빠져버린다면 나는 어떡할까. 새살이 돋으려면 얼마만큼의 힘이 필요할까.


10대 때 나에게 어른이란 가뿐히 털어내고 다시 회복하는 버팀목이었다. 엄마는 가끔 웃어줬고, 우린 할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엔 엄마와 할머니가 껴안고 어린아이처럼 우는 걸 보았다. 기분 전환 삼아 떠난 여행에서 그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렸다. 어른들의 회복 속도는 조용했고, 느렸다. 문득 공포가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죽음은 산 자의 삶을 영영 뒤흔드는구나. 삶과 죽음은 필연인데, 이토록 괴로워도 되는 걸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언제나 회복력을 불신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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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고 템플스테이를 가게 되었다. 새벽 4시 명상 후 방에 돌아가기 위해 신발을 신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사람은 남아도 된다는 스님의 말이 들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몸을 돌려 문고리를 잡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이 응어리를 어떻게든 꺼낸다면, 그 무형의 공포를 마주할 수 있겠지, 하고 기대했다. 늦가을의 새벽 4시, 이 산속 사찰에서, 무슨 말이든 끄집어내고 싶었다. 그 순간만큼은 종교로부터 구원을 바랐다. 나조차 모르는 고통을 찾아내어 단숨에 치유해 줬으면 했다.


거대한 금빛 불상 아래 앉아 입을 여는 순간, 엄청난 양의 눈물이 말문을 막았다. 어쩌면, 말이 아니라 눈물이 쌓여있었나? 언어로 형용할 수 없었던 건, 문장의 형태로 쌓여있지 않았기 때문인가? 실체를 거부하며 스스로와 단절했던 순간들이 순식간에 덮쳐왔다. 눈물을 흘리는 나는 나 자체로 통곡이 되어있었다. 꺼내놓음은 그렇게도 아프고 힘든 것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고백했다. 매번 두렵다고. 할머니를 볼 때마다 남은 날들을 주제넘게 세어보곤 했다고. 이따금 지나는 자동차에 치일 것 같았고,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떠날 것만 같았다고. 스님은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삶과 죽음은 호흡지간일 뿐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변화예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불상의 얇은 눈이 촛불에 맞춰 일렁였다. 스님은 죽음에 대한 사유를 지속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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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된 나는 조금 덜 두렵나, 한다면 그건 아니다. 죽음은 매번 우리의 선잠을 괴롭히고 버팀목을 흔들 것이다. 억지로 분리된 삶과 삶 앞에서 그 누구도 완전한 어른일 수 없다. 슬픔과 그리움뿐 아니라, 첨단 같은 공포도 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삶과 죽음을 호흡지간으로 여기는 과정이 유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누구는 죽음을 떠올림으로써 삶에서 죽음을 몰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요즘은 글을 통해 이를 연습한다. 내 안의 두려움을 언어로 치환하다 보면 어느새 삶과 죽음을 똑바로 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셸리는 우리가 삶이라는 꿈으로부터 죽음으로 인해 깨어난다고 말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삶이라면, 틈새로 스며드는 강한 태양 빛은 곧 죽음이다. 삶은 시간과 빛, 그리고 어둠 속에서 서서히 바래고, 언젠가는 깨진다. 그는 말했다. 스쳐가는 색색의 빛, 그 선연한 찰나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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