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특별전’에 다녀왔다.
전시의 제목 그대로, 매우 넓은 시간대와 다양한 작가들을 아우르는 전시였다. "미술관 소장품이 대체 총 몇 점이야?"라는 의문이 절로 들 정도였다. 전시장도 상당히 넓고 또 잘 기획되었다.
추천할 만한 전시다. '서양의 미술사'라는 긴 흐름을 접할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교육적인 의의도 있다. 학교나 책이 아닌 실제 작품들 앞에서, 각 시대가 어떤 분위기였고 당대의 예술가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던 그림과 해설들이 있었다.
모네와 피카소 같은 이름만으로도 익숙한 작가들의 ‘대표작’이 아닌, 그들이 유명세를 얻기 전 실험적이거나 낯선 화풍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던 점 또한 이번 전시의 큰 장점이었다. 하나의 작가도 고정된 스타일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시대에 따라 혹은 내면의 변화를 따라 끊임없이 새로움을 시도해 나간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엎치락뒤치락 바뀌는 시대별 작가들의 화풍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하루에도 유행이 바뀌는 시대의 흐름과, 이에 따라 각자가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현대 미술과의 차이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당대의 흐름이라는 것은 지금과 같이 변칙적이지 않은, 몇십 년으로 이어지는 단단한 기조였을 테다. 그 원칙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기를 들었던 예술가들의 흔적을 보는 것은 단순히 ‘예쁜 그림’을 넘어서 ‘예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늘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또한 예술의 덕목이었지, 참!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픈 역사, 아파르트헤이트를 알고 있었기에 전시에 원주민 작가들의 시선이 담기기를 기대했다. 그런 기대를 충족시킨 작품이 바로 제라드 세코토의 오렌지와 소녀였다. 따뜻한 불빛을 받으며 서 있는 소녀의 표정엔 어딘가 서늘함이 느껴졌고, 그 속엔 설명하기 어려운 깊이가 있었다. 그림의 정확한 맥락은 알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전시를 보며 새삼 ‘필립스 부인’이라고 불렸던 요하네스버그 미술관의 설립자, 도로시 사라 플로렌스 알렉산드리아가 참 멋진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식민주의의 수혜자였고, 그의 부와 명성 역시 수많은 원주민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민자로서 고국의 문화를 소개하고,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존중하며 요하네스버그라는 도시의 문화적 다양성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분명 주목할 만하다.
그의 유산은 오늘날 요하네스버그 미술관의 방향성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미술관은 단순히 유럽식 예술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아공 원주민 작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소개함으로써, 한 사회 안에서의 다양한 삶과 그림의 방식, 이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대채로이 문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서양 미술사를 잘 모르는 관람객이라도 이 전시를 통해 그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남아공이라는 지역의 복합적 문화 배경까지 함께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예술이란 결국 그 시대와 장소의 공기를 품고 있는 것이기에, 이처럼 다양한 시선이 축적되어 한자리에 놓인 전시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