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ivt.jpg

우리 학교의 마스코트 동국이

 

 

 

Ⅰ. 들어가며,


 

시간보다 더 빠르다고 느낀 적이 있다. 내 삶의 속도나 방향은 간혹 버겁고, 이것을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닌 듯하다. 그 다음은, 더 느리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시간보다 더 일찍 살아가는 인간이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두려워할 때도 많다. 나는 아직 5월의 포스터 달력을 방문에서 떼지 못하고 있다. 떼어내지 않고 있다. 그 시간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시는 지나간 것을 현재처럼 움켜쥘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잠시 이기적인 마음으로 시를 쓸 수 있고, 또 마음 아픈 순간이더라도 얼마든지 되새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행일까?

 

지나간 시간, 내가 마주할 시간,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나 바나나 우유 등 여러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순간적인 자아. 나는 그것들을 적지 않아도 내 주변에 자리함을 느꼈다. 강보원 시인도 그랬을까?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난 강보원 시인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 2022년 12월에 산문 칼럼이 올라온 것을 제외하고는. 의도인지 혹은 출판사의 사정인지는 몰라도 적은 정보가 오히려 달갑게 느껴진다. 시인의 태생이나 정보에 의해 시를 읽어 나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으로 들렸다. 언제 어떤 상황이든 편하게 보세요. 순간마다 다른 느낌도 괜찮아요. 이런 이야기를 프로필 속 빈 공간에 쪽지를 남긴 것 같았던 기분.

 

이번에 다룰 『완벽한 개업 축하 시』 시집에는 가장 오랫동안 마음에 담은 시 한 편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걸 맨 마지막에 먹는 습관은 없다. 그렇지만 처음과 끝을 이었을 때 하나의 큰 포물선이 이루어지는 건 좋아한다. 그러니 이번에는 맨 마지막에.

 

 

 

Ⅱ. 빌리고 훔쳐서 만든


 

2022년 여름이었다. 나는 이미 대학교를 졸업한 상태였고, 다음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광화문의 교보문고에 들어가 시집 코너에 서 있었고 아스팔트 도로의 아지랑이보다 더 깊이 존재했다. 취직과 대학원, 그 어떤 곳에 들어간다고 한들 내 삶의 지표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였다. 그때 한 시인의 시집을 보았는데,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데 종아리에 불끈 일어선 정맥처럼 혼자 자라 시퍼렇게 빛나는 무 잎사귀’라는 구절을 읽었다. 이미 돌아가신 힘 없는 아버지와 대비되는 종아리의 정맥, 그것을 무 잎사귀와 연관 지은 것이었다. 시를 쓴 시인의 이름과 활동을 본 뒤, 새 대학교 입시를 결심했다.

 

이 시집은 박형준 시인의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였다. 당시 학과장 교수님으로 뵌 술자리에서, 나는 그 시만을 보고 입시를 준비했다 말하며 장수 막걸리를 흔들었고, 교수님은 시는 직접 쓰는 것이 아닌 세상을 빌리는 것이라 하였다. 그때부터 시는 세상, 시인은 세상을 빌리는 것이란 생각이 자리 잡혔다. 그렇게 3년이 지나 본 강보원 시인의 「훔쳐 쓰기로 결심하는 시」.


 

모모는 심술을 부리면 볼이 부풀어 오르고 / 웃음이 많고 손이 매운 / 여자에 대한 시를 서른두 편이나 썼다 모모의 / 문제는 시를 너무 많이 쓴다는 / 것이었다

 

 

모모는 이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여자다. 평면적으로는 그러한데 나는 모모가 감정을 방금 발아한 새싹처럼 날것으로 표현하고, 또 생각을 단순한 방법으로 뱉는 것을 보며 모모는 화자의 감정적인 어린 자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모모는 모모다. 시 속의 이야기로는 시를 자주 발표한 모모는 화자인 ‘나’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였고, 그렇기에 ‘나’도 모모를 훔쳐 써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모모가 시를 많이 쓴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건, 그만큼 훔쳐간 것이 많다는 것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나는 이 시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개념이 떠올랐다. 포보스나 동정 같은 감정이 과다하게 느껴질 때, 그 너머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감정이 정화된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도덕적이든 정신적이든 성장이 유도되며 정서적으로 쌓여 있던 감정이 해소되어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화자의 꿈 속 하이라이트를 본인 시에 기재한 모모에게 화자는 ‘비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우리는 동시에 꿈을 꾼 게 아니었다 / 꿈을 꾼 것은 나였다 (…) // 모모는 점점 더 작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 담요 위에서 / 그리고 조금 더 많아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바게트 빵의 / 부스러기들처럼

 

 

화자는 분명히 혼자만의 꿈이라 하였고, 모모는 본인의 영역이 줄어든 시를 선보이며 점점 작아졌지만, 훔쳐온 것들이 너무 많아 조금 더 많아진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바스러진 바게트 빵의 부스러기들처럼, 결코 뭉칠 수 없고 모으려 할수록 더 작게 바스러지는 것들은 애초에 같은 데서 시작된 가루들일까 의문이 든다.

 

모모와 화자의 사이는 어떠할까? 그들의 관계는 얼마나 멀고 가까운 것인가. 모모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 하는 존재와 감정의 거리감. 시 속에서의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감정의 버거움을 느끼고 나면 그 다음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일까 하는 것. 이러한 생각은 감상문의 제목이 되었다. 마음보다 더 진득하게 감정을 느끼고, 정화 당하기. 그것엔 내 의사와 관계되지 못한다는 이상한 벽이 있다.

 

 

 

Ⅲ. 가장 완벽한


 

나는 이 시집의 제목이나 안에 수록된 시 한 편의 앞에 전부 ‘가장’을 붙이고 있다.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걸 아는데도 고쳐지지 않는다. 가장 완벽한 개업 축하 시라는 시집 제목으로, 가장 완벽한 개업 축하 시라는 시로 읽고 있다. 완벽한 게 있을까? 완벽하다는 건 그것 하나일 뿐인데 ‘가장’을 붙일 수 있을까? 완벽한 때를 알 수 있는지, 그 순간에 ‘지금’이 ‘완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지. 이러한 의문은 「완벽한 개업 축하 시」에서 더욱 증폭됐다.


 

그는 아마추어 / 시인이고 / 문예지에 발표한 시는 / 아직 없지만 / 시에 대해 / 많은 걸 알았고 또 / 많은 걸 / 모르기도 했다

 

 

아마추어와 시인의 행을 나눈 이유는 무엇일까. 4월엔 유튜버 문상훈의 에세이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을 보았는데, 여기엔 이러한 글이 적혀 있었다.

 

직업들을 이야기할 때 운동선수 작가 가수 기자 배우 감독 화가. 그런데 시인은 시 뒤에 사람 인자 하나 붙는다. 시인. 세상의 맨 처음 시인이 시 쓰느라 바빠서 이름 생각할 새도 없이 그냥 시 뒤에 사람 하나 붙였나 보다. 그 다음 시인들도 시 쓰느라 바빠서 그냥 그렇게. 시인들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지 않을까 한다.

 

내가 배운 시인은 세상을 빌리는 사람, 타인의 에세이로 본 시인은 시 쓰느라 바빠 시 뒤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아마추어라는 것과 시인이라는 것. 그리고 시에 대해 많은 걸 안다고 하는 순간 아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봉착하기에 모른다고 하는 것이 엿보였다. 그렇기에 오히려 입체적인 인물로 비춰지는 아이러니함도 있다. 그의 친구에게 개업 축하 시를 보내고자 하였지만 결국 친구가 폐업 후 인생을 다시 살아가고서야 그는 완벽한 개업 축하 시를 떠올린다.


 

대신 / 바람이 부는 저녁 / 벤치에서 / 그는 허공에 던진 / 테니스공을 다시 받으며 / 생각한다 그는 / 지금 / 완벽한 개업 축하 시를 / 떠올렸다고 / 추상적인 / 기쁜 / 반쪽으로 쪼개진 / 흰 / 양파 / 같은

 

 

함께 있었던 시간들을 되짚어보며 그는 완벽한 개업 축하 시를 떠올린다. 그렇지만 독자가 보고 있는 시 이의 제목 역시 「가장 완벽한 개업 축하 시」였다. 나는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하나의 줄기인 것이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개업이라는 것이 단순히 가게를 차렸다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삶을 축하하고 응원한다는 의미로. 반쪽으로 쪼개진 흰 양파처럼 양파여도 반쪽짜리라는 수식어가 있는 상태로. 그만한 응원이 어디 있겠는가. 비록, 앞서서-

 

 

그는 그가 / 생각하지 못한 많은 것들 / 때문에 / 얼굴을 감싸고 / 울음을 터뜨릴 수 있지만 / 그렇게 하지 / 않는다

 

 

라는 이야기가 숨어 있대도. 그 이야기에 많은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은 역시 완벽한 축하를 위해서인 걸까. 삶에 축하가 있는 이유는 이전엔 축하 받을 수 없는 삶을 지냈기 때문인데, 꼭 밝은 것만을 축하로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정도 음영은 있어야 더 밝아지는 거라고. 밝기만 한 것만큼 불완전한 것도 없다는 숨은 마음이 어둡게 돋보인다.

 

 

 

Ⅳ. 레몬 빵 레시피


 

나는 베이킹을 좋아한다. 디저트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도시락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이미 있던 철이 더 들고 나니 출근 시간에 맞추어 어머니의 도시락을 만들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싫고, 그것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변화하는 것도 싫다.

 

좋다고 하거나 싫다고 하는 것들은 너무 포괄적이라 맹목적으로 하나로서 존재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두려울 때도 있고 보기 싫은 마음에 혐오스러울 적도 있으며 그들의 표정을 보는 내게 변화가 있을까 우울해지기도 한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살고 있네요- 하는 흔한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숨기는 게 더 낫다고 느낀다. 어른들에게 어른스럽다는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하얀 거짓말까지는 아니어도 그렇게 숨기는 게 더 나을 때가 있으니까.

 

 

메모. 레몬 마들렌을 만들기 위한 간단한 레시피: 박력분 200그램, 베이킹파우더 4그램, 설탕 200그램, 달걀 4개, 레몬 껍질 2그램, 소금 1그램, 버터 200그램.

 

 

처음 이 시를 보았을 땐, 이 재료들로 직접 빵을 만들어 보세요, 하고 빈 종이를 주는 것 같았다. 그 밑에 독자가 이것저것 정말 노트처럼, 메모해도 된다는 의미로 느껴지기도 했고, 직접 레몬 마들렌을 만들어 사진을 붙이고 싶기도 했다. 재료 준비를 했지만 레시피라고 하는 것, 단순히 메모라는 단어로 시의 시작점을 끊은 것. 마들렌을 만들기 위한 재료의 순서를 거꾸로 나열한 것. 이 뒤에 적혀 있던 메모는 레몬 마들렌의 레시피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의미심장한 여백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마들렌은 사실… 만들기 쉽다. 정말로. 이 문장에 뜸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저 재료들을 섞고 그대로 굽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꼭 오븐일 필요도 없고 에어프라이어로도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친구들에게 ‘마들렌 틀’만 있다면 재료를 대충 섞어서라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성수의 유명한 마들렌 빵집이나, 경복궁역 근처의 마들렌 맛집 같은 데서 파는 2500원에서 3800원의 한 조각짜리 마들렌은 마음이 조금 아프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있으면 종종 이런 케이크 같은 빵을 사서 선물한다. 직접 만들 수 있어도 빵을 사 온 브랜드와 포장을 사람들이 더욱 좋아하기에. 이 사이에 들어가 있는 빈칸은 「레몬 빵 레시피」 같았다.

 

 

 

완벽한 개업 축하 시


 

삶의 좁은 영역 중 하나는 이 시집과 맞닿는다. 빈칸 가득한 「레몬 빵 레시피」, 제시간에 맞추어 선물하지 못한 「완벽한 개업 축하 시」. 그리고 다운된 감정 너머의 것의 유대를 얽은 「훔쳐 쓰기로 결심하는 시」. 이 시들이 보여주는 인물의 사고 속 간극은 너무 넓고, 또 행동은 너무나 가깝다. 사람들이 잘 지키자고 결심한 ‘퍼스널 스페이스’가 존재하더라도 그러지 못한 직장 문화나 성숙하지 못한 친구 관계처럼.

 

가끔 시집 속 존재하는 ‘모모’가 되고 싶고, 될 때도 있다.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싶었던 기차 속 모모처럼 옆 취객의 술냄새에 좋아하는 단순함을 잃을까 두렵다. 그의 삶 속 생각이나 꿈 따위를 훔쳐 시를 낸 모모처럼 잘못을 인지하지 않고 뻔뻔하게 자신의 삶을 쪼개며 모른 척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은가? 솔직하게 괜찮지 않더라도 한 명의 사람으로서는 너무 큰 일이지만 세상에게는 너무 작은 일로 보인다. 그러한 ‘작아진’ 지점들을 강보원 시인은 이 시집이란 단지에 담아두었다. 한 명으로서 알고 있는 세상을 한 명의 개인으로서 타자화하여 다시 보고, 지난 시간 속 감정을 뒤늦게 느끼며 보듬거나 다시 흘릴 수 있는 기회로.

 

 

 

KakaoTalk_20250328_191846354.jpg


 

구예원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어느 나라에서는 남의 말을 시라고 한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